K

메모리 칩(Memory Chip) - PART 9

by 폴린






민수가 이전에 박사 K를 만난 것은 혜정의 죽음 이후였다.

민수는 집에 도착했을 때 온통 피칠갑이 되어있는 방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늘 집에 있던 혜정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경찰에 신고한 그는 실종신고까지 하게 되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용의자는 추려졌다. 민수는 가슴속이 분노로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으나 그보다 더 크게 느꼈던 감정은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이었다. 민수는 몽타주 속 인물에게 복수하고 싶었지만 그만큼의 용기가 나질 않았다. 본인이 직접 복수할 용기가 나질 않았던 민수는 혜정의 사망으로 받은 사망 보험금을 그들의 청부살해로 사용했다. 하지만 그들은 돈을 받았으나 잠적했다. 민수는 아마 그들이 실패했으리라 짐작했다. 여러 번의 청부를 했지만 반복된 실패 끝에 그는 좌절했다. 그러다 펄센코와 관련된 인맥을 활용해 박사 K의 연락처를 알아내고 찾아갔다. 그리고 결국은 도망치기 위해 혜정에 대한 기억을 잊는 선택을 하였다.


민수처럼 혜정도 어릴 적 부모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민수가 결혼한 이후에도 그녀의 주변에 대하여 신경 쓸 일이 별로 없었다. 친구도 많지 않았던 혜정은 집에만 있었다. 민수는 혜정의 죽음 이후에 본인만 마음을 정리하면 되는 일이라는 생각에 편해졌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약간의 혐오감을 느꼈다. 민수는 혜정을 잃었다는 상실감도 컸지만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그녀의 복수를 해주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큰 스트레스로 남았다. 민수는 그걸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으로부터 도망쳤다. 새로운 메모리 칩으로 리셋하기 위해 펄센코에 예약을 했다. 그는 기억을 지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민수는 새로운 메모리 칩으로 리셋한 직후, 박사 K의 연락처로 연락을 했다. 민수는 박사 K와 약속을 잡고 그의 저택에서 만났다.

그는 전화를 통해 민수의 사정을 어느 정도 듣고 알고 있었다.

안아주며 민수에게 위로를 건넸다. 메모리 칩 리셋 이후 기억을 지우면 그녀에 대한 모든 기억들을 없애게 된다고 설명했고, 괜찮은지에 대해 물었다.

민수는 이미 집안에 있는 그녀와 관련된 모든 물건을 정리한 뒤였기에 괜찮다고 대답하였다.

박사 K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네만, 옳은 선택인지는 모르겠군. “

“많은 고민 끝에 결정한 일입니다.”

민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한 가지 더 주의사항이 있다네. “

박사는 기억을 부분적으로 잃게 만드는 기계를 작동시키면, 희박한 확률로 다른 기억까지 잃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민수는 개의치 않고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박사는 프린트기 같이 생긴 기계에서 선을 연결했다. 민수의 메모리 칩에도 선이 연결되었고 곧이어 박사는 빨간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민수는 약간의 발작을 일으켰고 눈이 감겼다. 떠졌다를 반복했다. 이후 민수의 몸이 떨림을 멈추자 박사는 밖에 대기 중이던 남자들을 불렀다.

그리고 민수를 들것으로 이동시켰다. 민수가 박사에게 미리 부탁을 했었는데, 기억을 잃은 이후 집에서 깰 수 있게 집주소와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줬었다.

그렇게 민수는 혜정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은 채 본인의 집에서 깰 수 있었다.






모든 기억이 돌아온 민수는 은정을 살해한 이후에 박사의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 대문이 열렸고 거칠게 차를 주차했다. 민수는 총기는 그대로 차에 두고, 단검만 허리춤에 챙긴 채 저택 현관으로 갔다.

박사 K가 보였다. 거실 소파에 앉아 차를 음미하던 박사 K는 민수를 보고 천천히 일어섰다. 민수가 고개를 꾸벅 인사하며 말했다.

“다시 뵙네요, 박사님.”

박사 K는 약간의 미소를 지은 채 민수에게 물었다.

“표정이 한결 밝아졌구먼, 옳은 선택을 하였는가?”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원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민수도 박사 K를 보며 싱긋 웃고는 말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다시 왔는가?”

박사 K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민수는 박사 K가 있던 원목 테이블로 다가가 옆쪽 자리에 앉고는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박사 K는 민수의 표정을 보더니 부엌 쪽으로 가며 얘기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구먼, 차를 좀 내오겠네.”

민수는 부엌으로 가는 박사 K를 보다가 생각에 잠겼다.

‘박사님은 메모리 칩 개발자의 정체를 알고 계실까?‘


잠시 뒤, 박사 K는 하얀 티팟과 찻잔을 가져왔다. 민수에게 하얀 찻잔을 건네며 티팟을 들어 차를 따라주었다. 찻잔에 불그스름한 물이 또르륵 하고 채워졌다. 향을 맡던 민수가 물었다.

“향이 좋네요. “

“그렇지? 얼그레이 차인데, 나도 좋아한다네. “

민수는 차를 천천히 음미했다. 박사 K는 하얀색 티팟을 민수 자리에 놓아주고 다시 본인이 마시던 초록색 찻잔의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 민수가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박사님은 메모리 칩 개발자가 누군지 알고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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