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칩(Memory Chip) - PART 11
민수는 두통에 잔뜩 표정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몸은 가위에 눌린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민수가 주위를 보니 침대에 꽁꽁 묶여있었고, 옆에는 박사 K의 프린터기 같은 기계 - 기억조절장치 - 가 놓여있었다. 박사 K는 눈을 뜬 민수를 보더니 말했다.
“잘 잤나? 차에 넣었던 약효가 아직 남아있으니 가만히 있게나.”
민수는 박사 K를 향해 침을 퉤 하고 뱉고는 혼잣말을 했다.
“아오, SM도 아니고 요즘 계속 결박당하네.. “
박사 K는 민수의 침이 튄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다가 민수의 오른쪽 뺨을 강하게 손바닥으로 때렸다.
짝!
민수의 뺨이 금방 빨갛게 상기되었다.
박사 K는 잠시 흥분했지만 이내 가라앉히며 말했다.
“기억이 좀 났는가? “
민수는 흥분해 씩씩대며 말했다.
“노인네 예전부터 그 X같은 말투 좀 안 쓰면 안 될까?”
박사 K는 얼굴이 벌게져서 또 한 번 민수의 오른쪽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짝!
민수의 우측뺨에 핏기가 올라왔다. 고통에 신음하며 말했다.
“아오, 치사하게 같은데 또 때리냐..”
박사 K는 비웃으며 말했다.
“자네 성격이 좀 바뀐 것 같구먼. “
민수가 박사 K를 노려보며 말했다.
“난 지금 내 아내를 죽인 살인마이기도 하니까. 하, 기억이 다 돌아오니 혼란스럽네. “
“혼란스러워? 내가 도와주지.”
박사 K는 그의 우측뺨을 또 한 번 때렸다.
짝!
박사 K가 즐기는 듯 해맑게 웃었다. 민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외쳤다.
“그만하고 당장 풀어! ”
박사 K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민수의 오른쪽 뺨을 때렸다. 여러 번 맞은 민수의 뺨에서는 곧 상처가 나 선홍빛 피가 맺혔다.
민수는 여전히 박사 K를 노려봤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박사 K는 손바닥을 보니 민수의 피가 묻어있었다. 더러운 것이라도 본 것처럼 그는 재빨리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손 씻는 소리가 들렸다.
민수는 박사 K에게 맞는 동안 조심스럽게 밧줄을 풀고 있었기에 조금은 헐렁해졌다. 민수는 결박한 밧줄틈으로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단검을 쥐었다. 그리고 밧줄을 끊어내기 시작했다. 박사 K가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는 동안 민수는 결박된 밧줄을 다 풀었다.
밧줄은 다 풀었지만 민수는 그대로 묶인 것처럼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느새 수전소리가 멈추고 박사 K가 오는 발소리가 드렸다.
박사 K는 민수가 있는 방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장난은 여기까지, 이제 다시 기억을 없애야지?”
박사 K는 기억조절장치에 달린 선을 민수에게 연결하기 시작했다. 민수의 메모리 칩에도 연결하려던 때, 민수가 단검을 재빠르게 박사 K의 목에 댔다. 날카로운 칼날이 박사 K의 목을 살짝 베어 피가 맺혔다. 박사 K는 목에 칼이 닿자 덜덜 떨었다. 민수가 그런 K를 보며 말했다.
“그만 떨어. 목에 칼 들어가? “
박사 K가 너무 떨어서 목으로부터 칼을 조금 떼어내니 떨림이 멈추기 시작했다.
민수는 기특한 듯 말했다.
“옳지, 말 잘 듣네. 묻는 말에 대답만 잘해. 그렇지 않으면.. “
다시 박사의 K의 목에 칼을 가까이 댔다.
“알지?”
“아.. 알겠네. “
박사 K는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 죽기 싫으면 진실만 말해야 될 거야. 내 기억 속 종현이란 놈은 거짓말도 바로 알아내거든? “
박사 K가 말없이 손으로 OK 사인을 했다.
“내가 당신에게 기억을 지운 게 몇 번째지? “
“2번째라네.”
“확실해?”
칼을 다시 박사 K 목에 가까이 대자 박사 K는 떨면서 말했다.
“화.. 확실하네.”
“맞아, 합격! 나도 알고 있는 거 한 번 시험해 본 거였어.”
민수는 칼을 그대로 박사 K의 목에 둔 채 천천히 박사의 뒤로 이동했다. 마치 껴안은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민수는 그의 뒤에서 한결 편해진 자세로 물었다.
“두 번째 질문, 다른 이들에게 협박전화를 할 때 왜 본인을 개발자라고 속였지?”
“자.. 자네가 나에게 공을 돌렸으니 내가 개발자인 것과 다름없지 않나.. “
민수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씁, 그것도 그렇긴 한데, 끝까지 내 명예를 실추시킨 행동이야. 아무튼 그건 넘어가고.”
민수가 칼을 쥔 반대 손으로 K의 어깨를 툭툭 토닥이며 말했다.
“그럼 중요한 마지막 질문, 종현.. 그니까 이 살인마한테 우리 집 털라고 협박해서 받은 돈! 그거 어디 있어?”
박사 K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 나도 돈이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네.”
“오케이 접수, 그럼 우리 집 털라고 협박은 했다는 거네?”
박사 K는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민수는 그대로 뒤에서 박사 K의 목을 칼로 그었다.
박사 K의 목에서 피가 앞으로 솟구쳤다. 박사 K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곧 쓰러졌다.
과거, 민수는 자신이 했던 수많은 연구결과가 오로지 좋은 영향만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그는 본인의 본명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성씨인 ‘정’에서 J라는 닉네임을 만들었다. J를 시기했던 K는 그를 따라 만든 김충헌 박사의 닉네임이었다.
J는 앞에서 늘 챙겨주는 박사 K를 많이 따랐다. 하지만 박사 K는 뒤에선 J를 욕하고 있었다. J가 펄센코에 입사하기 전부터 이미 오랜 기간 다니고 있었던 K는 여론을 다루는데 더욱 도가 터있는 사람이었다. 점점 J는 사내에서 고립되어 K를 더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K는 그런 J를 더욱 압박하여 연구결과를 본인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K는 실적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관심 있게 지켜보던 J의 뇌칩인간 연구가 점점 성공적으로 완성되기 시작했다. K는 뇌칩인간 연구도 뺏을 생각이었지만 J 없이는 도저히 연구를 성공해 낼 수 없었다.
결국 J가 뇌칩인간 연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K는 옆에서 기뻐하는 척 연기하였다. 하지만 J는 자신의 연구를 포기하고 앞으로는 다른 인생을 살겠다며, 은퇴를 발표했다. 박사 K의 입장에선 황금거위였던 J가 은퇴를 한다고 하자 그를 강하게 말렸다. 하지만 J의 결정은 확고했다. 본인은 펄센코사에 질릴 대로 질렸으니 회사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새롭게 살도록 도와달라고 K에게 요청했다. K는 처음엔 거절했지만 J가 뇌칩인간 연구결과의 공까지 그에게 돌리겠다고 말하자 결국은 수긍했다. 박사 K는 그렇게 펄센코에서 있었던 J의 기억을 지웠다. 그리고 더 많은 돈을 받으며 저택에서 호화롭게 살 수 있었다.
돈이 넘침에도 더욱 악독해진 그는 더 많은 돈을 원했다. 그래서 임상실험한 돈 없는 자들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다 박사 K는 일석이조의 기발한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살인병기로 불리는 종현이란 뇌칩인간을 협박하여 돈도 벌고, 눈엣가시였던 민수까지 손 안 대고 없앨 수 있는 방법. 종현을 이용해 J를 죽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