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칩(Memory Chip) - PART 15
금발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혜정은 민수를 보고 놀란 채 그대로 멈춰 섰다.
민수도 당황하여 굳어있었다. 그때, 혜정이 갑자기 뛰어올라 민수의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그의 목을 조르며 소리쳤다.
“박사님! 깼어요! 어서요!”
민수는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어 영문도 모른 채 혜정에게 목졸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대로 가만히 숨을 헐떡이다가 얼굴이 점점 벌겋게 변하던 민수는 목을 움켜쥔 혜정의 손을 힘으로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잔뜩 일그러진 혜정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혜정아,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민수는 힘으로 몸을 뒤집어 반대 포지션이 되었다. 민수는 그녀의 팔을 한 손으로 구속했다. 그리고 분노에 찬 표정의 혜정을 의아한 표정으로 보며 말했다.
“혜정아, 근데 나를 왜.. “
그때, 혜정이 발로 민수의 급소를 걷어찼다. 민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병원침대에서 떨어졌다.
우당탕 소리가 나고 고통으로 엎드려있는 민수에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 깨어났구먼.”
그리고 앙칼진 혜정의 목소리도 들렸다.
“박사님!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민수가 엎드린 채 고개를 들고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박사 K가 있었다. 그리고 혜정은 박사 K에게 안겨 아양을 떨고 있었다.
민수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몸을 떨며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하지만 고통으로 몸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이게.. 어떻게..”
박사 K는 천천히 민수에게 다가가 주사를 놓으며 말했다.
“신경안정제라네. 일단 자네는 안정이 좀 필요할 것 같구먼.”
민수는 몸을 부르르 떨다가 이내 곧 엎드린 채 정신을 잃었다.
민수는 오랜만에 다시 꿈을 꾸었다. 금발의 여성이 자신에게 칼을 들고 뛰어오는 악몽이었다. 이제는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내, 혜정이었다. 또다시 그녀가 자신의 앞까지 다가와 칼을 찌르려고 할 때, 꿈에서 깼다.
‘으윽’
민수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손목과 발목 양쪽에는 수갑이 침대에 결박되어 있었다. 그리고 손목에는 여러 종류의 링거가 꽂혀있었다. 그 옆에 원형의자에 앉아있는 박사 K가 보였다. 민수는 포기한 듯 고개만 박사 K를 향한 채 무표정하게 쳐다보았다.
박사 K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궁금한 게 있나? “
민수는 눈을 꿈뻑이며 박사 K를 보다가 말했다.
“너 내가 죽였는데.. “
박사 K는 너털웃음을 치며 말했다.
“허허, 즐거운 꿈을 꾼 것 같구먼? 자네처럼 나약한 성격에 그런 폭력적인 말은 어울리지 않다네. “
민수는 박사 K의 웃음소리가 듣기 싫어 눈을 찡그렸다. 민수는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내가 연구소도 들어가서 다 죽였는데.. “
박사 K는 그의 말을 듣더니 또다시 크게 웃으며 말했다.
“호호, 이번 꿈은 꽤나 구체적이군? 재밌는데 계속 말해보게.”
그때, 병실문이 벌컥 열리며 혜정이 들어왔다. 그리고 박사의 무릎에 앉아 관찰하듯 민수를 바라봤다.
혜정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박사 K에게 말했다.
“나랑은 언제 놀아줘? “
박사 K가 무릎에 앉은 혜정의 엉덩이를 톡톡 치며 나오라는 듯
말했다.
“어허, 일할 땐 방해하지 말라 했거늘. “
혜정이 토라진 표정으로 일어섰다. 민수는 혜정과 박사 K가 같이 있는 모습이 나이차 때문인지 아빠와 딸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비현실적이라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박사 K는 얼빠진 민수를 보며 말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기억을 지우고 다시 자네가 원한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지. “
박사 K는 링거의 약물이 투여되도록 하였다. 민수는 점점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혜정은 또다시 박사 K의 무릎에 앉아 말했다.
“그럼 나 또 역할극 해야 돼?”
박사 K는 혜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이번 한 번은 빼줬잖아. 우리 혜정이 착하니까 계속 역할극 해야지?”
혜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환각 보는 약도 맨날 몰래 먹이고?”
“그래, 맞아.”
박사 K는 혜정의 물음에 대답한 뒤, 박사 K와 혜정에게 진한 키스를 했다. 민수는 두 눈을 뜨려고 애썼지만 결국 눈이 스르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