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낯선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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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민수는 심각한 악몽에 눈을 떴다.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잠옷이 온통 젖어 찝찝한 느낌이 싫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축축해진 잠옷을 거칠게 벗어던졌다. 민수는 멍하니 앉아서 생각했다. 최근에 계속 같은 꿈을 꾸는 게 이상했다.
꿈에서 처음 보는 긴 머리카락의 여자가 달려오는 꿈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잠을 못 잤는지 퀭한 눈이었고 급박한 상황이기에 제대로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꽤나 미인이었다. 화난 표정의 그녀는 손에 칼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늘 눈앞까지 다가왔을 때 꿈에서 깼다. 그 여자의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이라 잠에서 깨고 나서도 한동안 멍한 기분이 들었다. 민수는 뒷목에 울퉁불퉁한 부분을 어루만졌다. 최근에 ‘메모리 칩’을 삽입한 부분이었다.
“이거 부작용인가?”
민수는 뒷목에 메모리 칩을 삽입한 이후에 계속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펄센코 - 메모리 칩을 개발한 회사 - 에 연락하여 증상을 얘기하였으나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해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다는 형식적인 답변뿐이었다.
‘일주일을 일시적이라고 할 수 있나?’
민수는 침대 옆에 놓인 야광전자시계를 봤다. 새벽 5시였다. 아직 한 시간은 더 잘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기에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거울로 얼굴을 봤다. 피부가 깨끗하고 잘생긴 외모였지만 최근에 잠을 못 자서 눈이 퀭해 보였다. 면도를 하고 샤워를 했다. 머리카락을 위로 올리며 말렸다.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은 뒤 집을 나섰다.
6시 33분, 회사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회사로 가기 전에 1층으로 먼저 갔다. 출근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었다. 늘 점심시간에 가던 회사 맞은편 24시 무인카페로 향했다. 맛은 없지만 가성비가 좋아 자주 방문하곤 했었다. 카페에 들어가니 이른 시간인데 사람이 있었다. 바바리코트를 입은 긴 머리카락의 여성이 연필을 손에 쥔 채 엎드려 자고 있었다. 민수는 조용히 키오스크 앞으로 가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로봇이 팔을 휘적이며 음료 만드는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커피 좋아하시나 봐요?”
쿵!
민수는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앞 유리에 코를 부딪쳤다.
“아으.. 놀랐잖아요.”
민수는 자신의 코를 쓰다듬으며 말소리가 들린 옆을 바라봤다. 바바리코트를 입은 긴 머리카락의 여성이 어느새 옆에 와있었다.
여자는 미안한 표정이면서도 약간 웃긴 듯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는 새하얀 얼굴에 쌍꺼풀이 짙었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민수는 여자를 어처구니없게 보고 있다가 립스틱이 번져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
민수는 자신의 입 주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여자는 황급히 본인의 바바리코트 주머니에서 손거울을 꺼내 봤다.
“어머”
여자는 뒤돌아서 번진 립스틱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거울을 주머니에 넣고는 민수를 보며 손을 내밀었다.
“저는 은정이에요. 김은정.”
“아, 네.”
성격이 특이한 여자라고 생각한 민수는 그녀의 손을 피해 옆에 있는 기계에서 완성된 아메리카노를 꺼내 마셨다. 확실히 로봇은 아직 사람이 만드는 커피맛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은정은 손을 내민 채 그대로 다시 말했다.
“그쪽은 정민수 씨 맞죠? “
민수는 놀란 채 은정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는 여자인가 싶어서 계속 봤지만 아무리 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저를 아세요?”
“그럼요.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은정은 내민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는 말했다.
“누구신데 저를 기다려요?”
민수는 계속해서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도저히 은정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계속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은정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일단 앉아서 얘기해요. 다리 아픈데. “
구두를 신은 은정은 다리를 톡톡 두드리며 자리에 앉았다. 민수도 맞은편에 앉았다.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거예요? 저를 알 텐데.. “
은정은 손으로 턱을 괴고는 말했다.
민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말 미안해요. 우리가 어디서 봤었나요? 정말 기억나질 않아서.. “
“괜찮아요. 이렇게 본 적은 없어요.”
“네?”
“이렇게 실제로 본 적은 없다고요. “
“이봐요.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식으로 장난치지 마세요. 재미없으니까.”
민수는 표정을 잔뜩 찡그린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목시계를 보니 7시였다. 민수는 카페를 나와 빠른 걸음으로 회사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