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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 엄마표 도넛

by 정가을

초콜릿과 견과류를 듬뿍 넣고 쿠키를 구웠다. 아주 오래 전 복지회관에서 처음으로 초콜릿 쿠키 굽는 법을 배웠고, 그 후엔 유튜브를 찾아보며 연습하다 나만의 레시피가 생겼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종종 구워줬는데, 그때마다 쿠키 가게를 차리라는 얘기를 몇 번이나 들었으니 맛은 검증된 샘이다. 모든 재료를 계량하고, 밀가루는 채에 곱게 친다. 그 다음이 나만의 비법이다. 보통은 버터를 실온에 꺼내놓고 부드러운 상태로 밀가루와 섞는데, 나는 아예 전자레인지에 돌려 액체상태로 만든다. 녹인 버터를 흑설탕과 백설탕을 반반 넣은 넓은 그릇에 붓고 섞으면 약간 카라멜같은 상태가 되는데, 그것과 푼 달걀, 밀가루를 섞는다. 그 후 초콜릿과 견과류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섞으면 반죽이 완성된다.

내가 만든 쿠키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역시나 나의 다섯 살배기 아들이다. 치아가 약해 어릴 때부터 충치가 많아 고생했던 나는, 아들의 치아 관리를 위해 단 음식을 늦게 준 편이다. 그래서 다섯 살이 되고 처음 초콜릿 쿠키를 만들어 줬을 때 우리 아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요즘은 반죽할 때면 꼭 함께 만들고 싶어 해서, 초콜릿 잘게 자르기는 아들에게 맡긴다. 아이와 함께 다정하게 쿠키를 굽는 것은 나의 오랜 로망이었으나, 현실은 굽지도 않은 반죽을 입에 넣으려고 하는 아들을 막느라 바쁘다. 이렇게 아들과 함께 조몰락거리며 쿠키를 만들고 있으면, 자연스레 나의 어린 시절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도너스’가 생각난다.

엄마는 종종 우리에게 직접 도너스를 만들어주셨다. 어릴 때 엄마가 부엌에서 기름에 도넛을 튀기고 계실 때면, 그 옆에 서서 기름 냄새를 맡으며 갓 튀겨진 도넛을 하나씩 집어 먹는 것은 엄청난 행복이었다. 깨끗한 기름을 한껏 머금은, 적당히 짭짤하고 달콤한 맛이 나는 그 도넛은 한 번 먹으면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만든 도넛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그란 모양에 가운데 구멍이 뚫린 모습이 아니었다. 도넛 반죽을 적당히 손으로 떼어내 기름에 튀겼으니, 좀 큰 수제비 같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울퉁불퉁한 모양의 도넛이었다. 이렇게 엄마가 도넛을 만들어 주시는 날은, 어린 나에겐 맛있는 것을 먹는 신나는 날이었다. 하지만 크면서 슈퍼에서 파는 빵과 과자 맛을 알게 된 후론, 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간식보다 사먹는 간식을 더 좋아하게 된 건 어쩔 수 없었다.


한 번은 유치원에서 간식을 싸오는 날이었다. 나는 엄마가 만들어 주신 도넛을 싸갔는데, 옆 친구가 싸온 칸초와 두유를 보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초코가 들어간 그 과자가 더 맛있어 보였다. 하지만 아들과 초콜릿 쿠키를 만들며 그 시절의 엄마를 떠올려 보니,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건강한 간식을 먹이고자 했던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느껴진다. 엄마는 맞벌이를 하셨는데, 직장생활과 집안일로 바쁘신 중에도 도넛뿐 아니라 프라이팬에 구운 빵과 약식 등 우리가 먹을 간식을 항상 준비해 놓으셨다. 지금은 내가 워킹 맘이 되어 출근 전 아이의 간식을 챙겨보니, 그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성인이 된 후로는 엄마의 도너스를 먹어본 기억이 없다. 요즘은 워낙 맛있는 빵집이 많다보니 엄마도 직접 도넛을 만드실 생각은 하지 않으셨나보다. 오늘은 왠지 오랜만에 엄마의 그 도넛을 맛보고 싶다. 엄마 옆에 서서 기름에 튀겨지는 그 도넛을 하나씩 집어먹으며, 그때는 알지 못했던 엄마의 사랑을 듬뿍 느끼고 싶은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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