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답게 피우리라

글 쓰는 공간을 얻은 큰 부자가 되어 글로 피워가렵니다

리는 무엇을 남기기 위해

이렇게 열광하며 글을 써내려 갈까?

수많은 글과 정보의 홍수 속에

나의 글은 어떻게 빛을 낼까

그 빛의 여로는 언제 발아가 될지

-아다나 글 쓰는 공작소 -


브런치라는 세상을 늘 동경하고 그리다 이 세상 안에 들어온 기쁨과 설레는 마음을 열어봅니다.

문득 기록을 좋아한 나의 글쓰기는 언제부터 일까? 살포시 떠오르는 조각조각 퍼즐을 맞춰봅니다.


나의 글쓰기 근원의 여행을 떠나보니 유구한 시간의 흐름을 발견합니다.

2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아버지 존재를 알게 된 나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한 이후 9살 때 죽음이라는 단어도 모르는 철부지가 소풍날 온 세상이던 어머니 마저 나의 우주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2남 4녀의 언니 오빠 형부들 덕분에 우주를 잃었지만 격동의 시절 사랑의 힘 덕분에 고아원 가지 않고 성장한 행운아입니다.


이후 늘 공허한 마음을 채우려 했었는지 끄적끄적 글쓰기를 좋아하던 소녀는 언니랑 조선일보백일장에서

장려상을 시작으로 일기장을 열심히 잘 적어서 방학 때마다 상을 받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여고시절 문학소녀들의 순수한 낭만을 그리던 문예지를 만들고 한창 꿈을 좇던 시절도 있었고요.


그리고 잊혔던 글쓰기는 서울 -부산 옆지기와 연애시절 4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고 전화가 없던 시절 1만 원짜리 전화카드를 한 달에 몇 장씩 사주었던 옆 지기한테 늘 고마워 자기 계발서를 읽고 격려글 좋은 글 명언 등을 1주일 편지를 3통씩 보냈습니다.


결혼 이후 매월 1일 엔 손글씨로 옆 지기 양복 호주머니에 한 달을 열심히 살아내자는 응원 글을 보냈지만

물론 언제나 답은 읽씹이었습니다.

T와 F의 성향을 모르던 때라 다행히 콩깍지가 안 버겨졌기에 우주의 선물 신기하던 우리의 분신을 잉태한 감동을 남기기 위해 태아 일기를 365일 적었던 기억도 흔적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일기장을 보며 두 아들이 얼마나 고맙고 행복해하였던지 , 우리 집 며느리도 그 기록을 보며 아들을 깊이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글쓰기를 좋아했던 이유의 근원은 뭘까?


9살 때 돌아가신 제대로 기억도 없던 친정 엄마를 보고 싶어 사춘기 방황으로 태종대 유해를 뿌린 곳을 그렇게 다녔고 예순의 지금까지 이사를 12번 넘게 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숙명론 앞에 생로병사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깊은 기저부의 밑바닥에서 늘 어떤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이 일렁거렸습니다.


모두를 껴안고 살아왔고 살아내었습니다. 희망이라는 보물은 언제나 새로운 희망을 창출해 냈기에

엄마는 그리고 여성은 이겨냈습니다.


글을 쓰면서 울화를 풀어내었고 삶의 굴곡진 질퍽임의 보따리는 어깨에 둘러맨 현실을 마주하며 밀레니엄 시대 컴퓨터의 등장으로 메일에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고파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격려의 글이 소복소복 흰 눈처럼 50대를 바라보는 미래일기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잘 버티고 나 자신을 많이 위로하면서 억척스럽게 이겨 냈고 버텨냈다는 말이 적확한 표현입니다.


30대 후반 나의 존재보다 한 가문의 여인으로 잘 나가던 강남에서 부산으로 효자 아들 옆지기를 꼬셔서

나 하나도 버티기 힘든 상황에 연령생 두 아들과 함께 부산으로 이사를 가서 시부모님을 모시며 차츰 어른이 되어 갔습니다.


소설책 두권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낯선 이방인 같은 인연들은 전생의 무슨 빚이 남아서일까? 공중으로 늘 떠돌게 했던 불평과 불만들은 나를 진정한 단련을 시켜줬던 때문에 가 덕분에로 바뀌어갔습니다.


언제나 글은 나의 치유이자 나의 버팀목으로 희망의 메신저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금융기관 잘 다니던 옆 지기의 IMF의 명퇴로 3채의 집은 순식간에 넘어가고 수수께끼 같은 마음의 밑바닥에 대심이라는 무한한 힘을 보고선 눈을 뜨며 누구에게도 말 못 하는 가슴앓이가 지금도 파묻혀 있는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의 여행을 갈망하고 살아온 시간이었습니다.


아무 죄 없던 아역 연예인 하던 아들에게 빚을 안겨줘 꿈을 저버리게 했던 일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빚이 되어버렸고 두 아들이 힘든 상황에도 아르바이트하며 부모를 돕던 그 많은 빚을 어떻게든 가슴 아픈 속을 달래면서 기록을 남겼던 글도 아직도 바래지지 않고 있습니다.


잠시 다니던 은행을 나도 퇴사를 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낯선 용어들을 열공하며 겁 없이 덤벼들고 인테리어 사업과 동시 옆지기의 수술로 혼자 감내했던 시간, 상대적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부서지는 물보라처럼 결국 인생 최고의 밑바닥에서 깨달았던 깊고 깊었던 나의 업장을 마음 수행으로 얻은 신념과 인내는 불혹을 지나 지천명을 맞이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얻은 인생 최고의 재산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마음을 풀어헤친 문장들은 지금도 유치 찬란하게 남아 있지만 그 기억의 조각들이 참 아름답게 느껴지며 진정한 나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열심히 산 자의 보상일까 죽으라는 법은 없었고 이타의 삶을 만들고 남에게 이유 없이 마음을 내어 주었던 봉사를 하며 보상의 결과는 내가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농장이 생기고 50대 후반전 처음 농사에 접하며 새로운 빛을 발견하였고 자연의 위대함에 늘 자연에 글을 그리고 자연에 시를 더하며 씨앗 한 톨의 발아와 열매까지 직접 보고 키우며 수확한 농작물을 신세 진 분들께 나눌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코로나는 또 새로운 영역에 과감히 도전을 해주었고 처음으로 동인지도 만들어 보고 흔적을 남겼지만

그 동인지는 부끄러워 아직도 그대로 책장 한구석에 꽂혀 있지만 나의 글쓰기 흘러간 역사가 되었습니다.


지금 마주한 블로그에 기록한 시간과 스레드는 늘 행복한 기억 부자로 남아 있지만 이제 브런치 작가로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읽어주는 단 한 사람의 격려와 위로의 힘으로 그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함 속에 더 큰 목표를 향해 이제 더 큰 글 바다로 나온 느낌입니다.


우주의 선물 울 손녀의 탄생으로 새로운 생명의 경이함으로 기록을 남기고 미래 우리 손녀와 3대가 함께 추억을 꺼내볼 수 있겠지요.


하하 호호 할머니가 되어도 계속 나의 글은 누군가가에게 내 글이 읽히고 누군가가 기대도 되는 마음을 주고 싶습니다.


마음의 재보가 차곡차곡 창고에 쌓이는 무상의 힘을 믿습니다.


단 한 줄이라도 누군가에게 이 글이 닿아 마음에게 지지 마라고 위로의 한 줄이 된다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는 나날이 더 아름다운

나날로 장식이 되겠지요.


글쓰기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었지만 민생고 해결이 더 중요했으니 그 꿈은 접지 않고

그 언젠가가 언제가 가 될지 모르지만 나의 글쓰기 도전은 무한 계속되어 책을 발간하는 게 목표입니다.

응원부탁드립니다!




일신우 일신

나는 나답게 피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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