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으로
살다 보면 유독 '싫어하는 것'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비 오는 날씨가 싫고, 줄 서서 먹는 식당이 싫고, 유행하는 음악이 싫고, 타인의 사소한 습관이 싫다는 이야기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싫어하는 것을 잔뜩 늘어놓는 그들의 얼굴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미간을 찌푸린 채 세상과 불화하고 있는 듯한 피로감이 느껴질 뿐이다.
반면, 눈을 반짝이며 "나 그거 좋아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들은 갓 구운 빵 냄새를 좋아하고, 퇴근길의 노을을 좋아하며, 낡은 서점의 종이 냄새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은 세상 곳곳에 자신을 기쁘게 할 '행복의 지뢰'를 심어둔 것과 같다. 어딜 가나 즐거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싫어하는 게 많다는 건 그만큼 내 세상의 문을 닫아거는 일이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거슬린다면 내가 발 딛고 서 있을 공간은 점점 좁아진다. 세상은 온통 피해야 할 장애물로 가득 찬 전쟁터가 되어버린다. 그런 긴장 상태에서 행복이 깃들 자리는 없다.
반대로 좋아하는 게 많다는 건 내 세상의 영토를 넓히는 일이다. 좋아하는 노래가 하나 늘어나면 출근길 3분이 즐거워지고, 좋아하는 식당이 하나 늘어나면 주말 점심이 기다려진다. 취향이 섬세해질수록, 좋아하는 대상이 늘어날수록 삶은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진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은 그 빈도를 스스로 만들어낼 줄 아는 능력자다.
물론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좋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대화의 주제를, 생각의 방향을 '싫음'에서 '좋음'으로 돌릴 수는 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이건 별로야"라는 말 대신 "이건 참 좋다"라는 말로 시작해 보는 것이다.
과거에 나는 '싫어함'으로 나를 정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빠가 돌아가시고난 후 부터 사소한 것에도 감탄하며 좋아하는 목록을 늘려가는 사람이 되었다. 팍팍한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 마음속에 '좋아함'이라는 든든한 아군을 많이 만들어두고 채워가는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싫어하는 이유를 찾기보다 좋아하는 마음을 발견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