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1월 07일
어제 부엌정리를 하고 난 후,
오늘은 냉장고를 정리하기로 했다.
먹으려고 사놓았던 재료들 뒤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해 사용하지 않은 채 상한 채소들,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소스류,
최근에 해 먹은 음식과 반찬들 등
모든 것이 다 뒤섞여 있는 냉장고였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엄마는
우리에게 맛있는 걸 해주고 싶어
이것저것 재료를 사다 두셨었다.
그러다 아빠나 내가
"이거 먹고 싶어" 하고 말을 하면,
장을 봐 오셔서 그 음식을 바로 해주시곤 했다.
그렇게 새 재료들이 계속 들어오면서
엄마가 해주고 싶었던 음식들의 재료는
자연스레 냉장고 뒤쪽으로 밀려났고,
결국 상하거나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소스류들이 쌓이게 된 것이다.
버릴 게 너무 많아, 우선 냉장 칸부터 정리했다.
"엄마, 이건 8년이나 지났어. 버리자. 이런 걸 왜 갖고 있었대."
"있는 줄도 몰랐지. 다 안쪽에 처박혀 있으니까."
"아빠가 예전에 냉장고 열어보고서 유통기한 지난 것들 보고
정신없다고 했었는데, 진짜 대박이네..."
예전에 아빠가 요리를 하시려고 냉장고를 열었다가
너무 정신이 없다고 하셨던 걸 들은 적이 있다.
냉장고는 엄마 관할이라
우리가 건드리면 안 되는 구역이었기에
아무도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그저 엄마가 미리 해두신 반찬이나 국만 꺼내 먹고,
정리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엄마는 일하시고 돌아오시면
밤에도 집안일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냉장고 내부 사정을 알 수 없는 게 당연했고,
아빠도 엄마가 집안일까지 하느라 피곤할 걸 아니까
굳이 말을 안 하셨던 것 같다.
냉장 칸을 정리한 후,
우리는 앞으로 사다 놓은 야채나 각종 재료들을
버리는 일 없이 다 먹자고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먹은 음식들을 기록하고
앞으로 해 먹을 음식도 미리 적어두어야 했다.
주말을 제외하면, 아무래도 둘이서 같이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은
평일 저녁뿐이라, 한 번 해 먹은 음식은
적어도 두세 번은 나눠 먹게 된다.
그리고 해 먹을 음식들을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남은 음식만 먹다가 냉장고에 있던 재료들을 잊어버리고
같은 걸 또 사 오는 경우가 있어
기록은 꼭 필요했다.
그렇게 하면 불필요한 낭비도 줄고,
냉장고 속이 다시 어지럽혀지는 일도 막을 수 있으니까.
정리가 반쯤 끝난 냉장고를 다시 열어보니,
마음이 후련했고, 새 냉장고를 산 기분이었다.
어지럽게 뒤엉켜 있던 재료들처럼
우리의 시간과 마음도 그 안에서 조금씩 얽혀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냉장고 속 음식뿐 아니라,
우리의 식탁과 하루하루도
조금 더 소중히, 계획적으로 채워가기로 했다.
작은 정리 하나가
이렇게 큰 다짐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