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정리

2024년 01월 06일

by 로벨리아

오늘은 엄마와 부엌 정리를 했다.

언제부턴가 우리 집 주말은 정리하는 날이 되어버렸다.


아빠가 김치를 좋아하셔서 김치냉장고가 두 대나 있었는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김치 냉장고 하나를 정리할 겸

김치통을 전부 꺼내 세척하고, 김치냉장고 코드는 뽑아버렸다.


아빠의 수저와 젓가락만 버리기 미안해서

엄마와 내 것도 함께 버렸다.

우리는 그동안 아껴두기만 했던 새 수저와 젓가락을 꺼내

사용하기로 했다.


이참에 분위기 전환도 할 겸, 전에 쓰던 그릇들은 전부 버리고

보관만 해두었던 새 그릇들을 꺼내 진열했다.


수저, 젓가락, 포크, 접시, 컵, 냄비 등

안 쓰고 보관만 해두었던 식기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았다.

정리를 하다 보니 버릴 게 끝도 없어서,

다음 주 재활용을 혼자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게다가 무거운 뚝배기들과 솥까지 있어서,

'집에서 4-5번은 왔다 갔다 하며 재활용해야겠구나...'


싶은 마음에, 텅 빈 눈으로 버릴 집기들을 바라봤다.


엄마는 미안하셨는지 같이 하자고 하셨고,

나는


"어두울 때 하면 더 힘들어서 낮에 하는 게 나아요."


라고 말씀드렸다.


정신없던 부엌은 정리가 끝나고 나니 엄청나게 깨끗해졌고,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리 좀 하고 살아야겠다. 힘들어도 이참에 나눠서

필요 없는 건 버리고, 쓸 건 최소화하자"


그래서 내가 물었다.


"찻장에 있는 찻잔이랑 컵들은 그냥 두는 거야?"


"응. 예전에 아빠가 사준 것도 있고, 지금은 다 구할 수 없는 것들이야.

이런 거 이제는 못 사. 지금 이런 데 쓸 돈도 없고. 있는 거 아껴 써야지."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찻장 안에 진열되어 있는

예쁜 찻잔들과 컵, 접시 세트를 바라보셨다.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별로 쓰지도 않고 그냥 진열만 해두는 걸 왜 안 버리시나 싶었는데,

뭔가 '내가 아끼는 물건이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엄마의 말이 바로 이해됐다.


나는 찻잔이나 컵, 집기들에 흥미가 없어서

그런 건 그냥 버려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하시니까,

그런 것들을 아끼는 게 당연했다.


마치 내가 일기 쓰는 걸 좋아해서

만년필을 사 모아두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재활용할 물건들을 전부 한 곳에 몰아놓고,

저녁을 먹으며 바뀐 내 수저를 바라보다가 엄마에게 말했다.


"아빠가 자꾸 내 수저 말고 다른 수저 놔서,

아빠한테 항상 '이 수저'라고 말했었는데...

그렇게 여러 번 말해도 기억 못 하시다가,

그때 돌아가시기 전에 딱 한 번 내 수저 제대로 놔주셨었다?"


엄마는 그러냐며 웃으셨고,

우리는 마지막 남은 육개장 칼국수를 먹으며

아빠를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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