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만사성] 이혼·상속 전문 변호사 친족법 상담일지 #4
박상홍 변호사
법무법인(유) 로고스 가사/상속팀
유책배우자도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나요?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에서 상대방이 이혼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다시 부부 관계를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는 않을 때에는 어떻게 되나요?
2008년 늦가을, 차가운 바람이 불던 어느 날 증권사 트레이딩룸에서 A씨는 새로 들어온 인턴 B씨를 처음 마주했습니다.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업무를 배우는 B씨의 모습에 A씨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자주 머물렀고, 봄이 오기도 전에 둘은 연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꽃피우기도 전인 2009년 3월, 예상치 못한 임신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소식을 듣고 조용한 카페에서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던 가운데, B씨의 떨리는 목소리가 공기를 울렸습니다. "어떡하지... 우리..." 그 한마디에 담긴 불안과 두려움이 오랫동안 A씨의 마음에 울려 퍼졌습니다. 고민 끝에 그들은 서둘러 혼인신고를 하고, 5월에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A씨와 B씨는 하객들의 축하 속에 새 출발을 다짐했습니다. B씨는 임신과 함께 일을 그만두고 가정에 전념했고, A씨는 더 큰 책임감을 안고 직장생활에 매진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결혼생활은 초창기부터 그리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2013년, 평화로워 보였던 부부의 일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B씨 가족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난 것입니다. B씨와 B씨의 통화를 우연히 듣게 된 A씨는, 상견례 과정에서 B씨가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숨기고, 어머니와 동거하던 남자를 친부로 소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A 씨의 부모님은 B씨를 추궁하여 사실관계를 다그쳤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부부는 크게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감정의 골이 깊어지며 A씨는 B씨에게 이혼을 요구하기까지 하였는데, 당시 B씨 어머니께서 직접 사돈댁을 찾아가 사과를 올리기도 하며 갈등이 일단락되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번 균열이 생긴 부부 간의 금슬은 좀처럼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A씨는 점점 야근과 회식을 핑계로 집을 멀리했고, 돈을 버느라 힘들다는 둥 변명하며 집에 돌아와서도 집안일과 아이를 키우는 일에 무관심해졌습니다. B씨는 혼자서 모든 것을 도맡아 해결해 나가는 심정으로 너무 힘이 들었지만 꾹 참고 A씨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하루하루를 버텨냈습니다.
그러던 중 2017년 봄, 명절 모임에서 B씨 집안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한번 불거지며 A씨는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더 이상은 못 참겠어. 당신 집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창피한 줄 알아?" 상처뿐인 말을 남기며 A씨는 봄바람이 다 가기도 전인 5월 말, 짐을 싸서 집을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A씨는 B씨를 상대로 이혼 및 위자료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가사조사 및 부부 상담을 진행하였음에도 더 이상 이견을 좁힐 수는 없었습니다.
이혼 소송에서 법원의 판결은 A씨에게는 의외로 다가왔습니다. 법원에서는 “원고가 주장하는 피고의 귀책사유로 혼인관계가 파탄되었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원고에게 혼인관계 파탄에 대한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A씨를 유책배우자로 단정 짓는 듯한 문구를 남기며 A씨의 이혼 청구를 기각하였던 것입니다. A씨는 자신이 유책배우자라는 판단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소송을 진행하며 지쳐있었기 때문에 항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B씨 또한 이혼에 반대하는 의사를 밝히며 굳이 반소를 제기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위 판결이 확정되며 소송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혼 소송은 끝났지만, 부부의 생활이 실제로 다시 봉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A씨는 이혼 소송이 기각된 이후에도 B씨와 별거를 선택하였습니다. 게다가, A씨는 양육비와 생활비 지급을 한동안 중단하기도 하였습니다. A씨가 별거 후 B씨를 통하지 않고 딸아이와 직접 연락하려고 하면, B씨는 딸아이를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연락하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요구하며 연락을 차단하였습니다. B씨는 아파트의 잠금장치를 변경한 후, A씨에게 열쇠 교부를 거절하면서 A씨가 먼저 그간의 일을 사과하고 집으로 들어와 살겠다고 각서를 써야 한다는 입장을 강경하게 유지하였습니다. B씨는 무조건적인 사과와 각서를 요구했고, A씨는 상대방의 태도 변화가 먼저라며 맞섰습니다.
법적으로 부부인 상태로 1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지만, 사랑은 점점 불신의 미궁으로만 치닫고 있었습니다. 작은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걷잡을 수 없는 불신이 되었고, 그 불신은 결국 한 가정을 무너뜨리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A씨는 2019년 6월, 다시 한 번 이혼 소장을 접수했습니다. 하지만, B씨는 이번에도 자신은 이혼할 생각이 없고, 예전 이혼 소송에서 오히려 A씨가 유책배우자로 인정되었는데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는 답변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이에 A씨는 고민 끝에 가화만사성 팀의 이혼 상속 전문 변호사들로부터 보다 전문적인 상담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책배우자도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나요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에서 상대방이 이혼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다시 부부 관계를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는 않을 때에는 어떻게 되나요
Q1) 유책배우자도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나요?
A1)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원칙적으로 불허되지만,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판단 기준입니다.
즉, 재판상 이혼 원인에 관한 민법 제840조는 원칙적으로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므로, 민법 제840조 제6호의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라는 이혼사유에 관하여도 혼인생활의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그 파탄을 사유로 하여 이혼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이혼 청구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세월의 경과에 따라 파탄 당시 현저하였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약화되어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 혼인 파탄의 책임이 반드시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있지 않은 경우 그러한 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씨의 경우 기존 판결에서 자신이 유책배우자로 판단된 지점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반박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령 A씨가 다시금 유책배우자로 판단된다고 하더라도, 유책배우자의 책임의 태양․정도,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의사 및 유책배우자에 대한 감정, 당사자의 나이, 혼인기간과 혼인 후의 구체적인 생활관계, 별거기간, 별거 후에 형성된 부부의 생활관계, 혼인생활의 파탄 후 여러 사정의 변경 여부, 이혼이 인정될 경우 상대방 배우자의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의 정도, 미성년 자녀의 양육․교육․복지의 상황, 그 밖의 혼인관계의 여러 측면에서 A씨로 인한 혼인 파탄의 책임이 그다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설득할 필요가 있습니다(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한편, 이혼을 원하지 않는 B씨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경제적․사회적으로 매우 취약한 지위에 있어 보호의 필요성이 크다거나, 이혼거절의사가 이혼 후 자신 및 미성년 자녀의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에 대한 우려에서 기인한 것으로서, 미성년자인 자녀의 경우에는 혼인의 유지가 경제적․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양육환경을 조성하여 자녀의 복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측면 등에 초점을 맞추어, 혼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입장이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 기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Q2)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에서 상대방이 이혼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다시 부부 관계를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는 않을 때에는 어떻게 되나요?
A2) 우선, 이혼 소송에서 상대방 배우자가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변할 경우,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의사를 인정하려면 소송 과정에서 그 배우자가 표명하는 주관적 의사만을 가지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혼인생활의 전 과정 및 이혼소송이 진행되는 중 드러난 상대방 배우자의 언행 및 태도를 종합하여 그 배우자가 악화된 혼인관계를 회복하여 원만한 공동생활을 영위하려는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혼인유지에 협조할 의무를 이행할 의사가 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 일관된 판단 기준이 됩니다(대법원 2022. 6. 16. 선고 2021므14258 판결).
따라서 일방 배우자의 성격적 결함이나 언행으로 인하여 혼인관계가 악화된 경우에도, 상대방 배우자 또한 원만한 혼인관계로의 복원을 위하여 협조하지 않은 채 오로지 일방 배우자에게만 혼인관계 악화에 대한 잘못이 있다고 비난하고 대화와 소통을 거부하는 경우, 이혼소송 중 가정법원이 권유하는 부부상담 등 혼인관계의 회복을 위하여 실시하는 조정조치에 정당한 이유 없이 불응하면서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경우에는 혼인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있어, 설령 그 배우자가 혼인계속의사를 표명하더라도 이를 인정함에 신중하여야 한다.
특히, 과거에 A씨가 청구한 이혼청구가 기각되었더라도, 그 후로 B씨 역시 혼인관계의 회복을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혼인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반면 B씨 및 딸아이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충분히 이루어짐으로써 유책배우자의 유책성이 희석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A씨와 B씨의 분쟁상황을 고려할 때 그 혼인관계의 유지가 미성년자인 자녀의 정서적 상태와 복리를 오히려 저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하여 구체적인 입장을 진술한다면, 과거 유책배우자로 판단받은 A씨의 이혼청구가 허용되는 특별한 사정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