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습 이대로

대체 왜 닮는 거니..?

by 패밀리즈하이

가족으로 살아가면서 신기한 것 중 하나가 있다.

그것은 ‘서로 닮음'이다.


8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아내를 보고 있자면, 표정과 제스처 등은 물론 서로의 외모까지도 비슷해진 것 같다.

심지어 외적인 부분 외에 취향과 사고방식 등의 내적인 요소들에서도 어느 정도 동질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서로 닮음'의 신기한 현상은 자녀를 볼 때 부정할 수 없는 실제로 다가온다. 무려 우리 부부의 축소판이 우리 삶 곳곳을 헤집고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외모와 식성은 물론이고 어떻게 자는 모습까지도 똑같은지 판박이가 따로 없다.

유전자 코드에 그런 것도 들어있을까? 아무튼 우리를 똑 닮은 자녀에게서 귀여움과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 찾아보는 ‘서로 닮음’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사고로 나아갈 때도 많다.

그리고 그것은 왜곡된 나의 기준이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인재'이다.


가족들이 나를 닮아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그 모방의 원래 주체라는 생각에 쓸데없는 우월감을 느끼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그렇게 높아진 나의 자의식 가운데 ‘서로 닮음'이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면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스멀스멀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얼마 전 아이가 식사 중 물을 엎질렀다. 사전에 주의를 주었음에도 기어코 높이 1미터(1m)의 인공 폭포를 식탁과 바닥 사이에 만들었다. 나는 그 폭포를 절대로 아름답게 볼 수 없었다.

짧은 침묵도 잠시 분노와 짜증, 원망의 목소리가 되려 내 입에서 폭포수 같이 쏟아졌다.


꾸중으로 인해 의기소침해진 아이였지만 나와는 다르게 감정을 빠르게 추스르는 능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 눈치를 보던 아이가 그 와중에도 갑자기 질문을 한다.

‘아빠, 미안해요. 그런데... 아까 화낼 때 아빠가 말한 대참사가 뭐야?’

나는 아이가 실수할 때마다 비참하고 끔찍한 일을 가리키는 이 말을 은연중에 많이 썼던 모양이다.


사실 아이의 실수는 뉴스에 나올 만큼 대참사 정도는 절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말을 쓸 만큼 화를 냈던 걸까? 그것은 나를 닮은 아이가 나의 높은 자의식을 대변할 수 있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오히려 나의 안 좋은 모습을 똑같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반복적으로 음식을 흘리거나 물을 쏟는 것에 대해 나는 화가 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광경이 또한 익숙하게 다가온다. 내 어린 시절의 모습과 똑같기 때문이다.

꾸지람은 아이가 좋은 습관을 들이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솔직한 내면의 동기를 보면 그것은 허울 좋은 '분노'인 경우가 많다. ‘나의 안 좋은 부분’을 닮은 것에 대한 분노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내 모습 그대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집어삼키는 것이다.


소극적이고 부끄러움으로 인해 아이가 사람들에게 인사를 잘하지 못할 때에도 나는 잔소리와 함께 꾸중을 늘어놓았다.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하고 예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훈장 선생님으로 변하던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도 어렸을 때 남들 앞에 잘 나서지 못했었다.


결국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못하기에 아이는 그러한 내 모습을 닮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다 보니 실망하고, 화를 냈던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인내하고 잘 가르쳐주기만 하면 되는 것을, 나는 기어코 ‘대참사’의 분위기로 만들어 버리니 아직 한 참 부족한 아비임이 틀림없다.


물론 아내도 아이에게 화를 낼 때가 있다. 다행인 것은 화가 나는 포인트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만약 부부가 동시에 화를 냈다면 아이는 아마 숨이 막혔을 것이다.


지켜본 바로는 아내는 자신의 말과는 반대로 행동하는 아이에게 감정이 상하는 듯하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고 하라는 것은 잘 안 하려고 하는 청개구리 같은 아이를 보면 이내 아내의 족대질이 시작된다. 서서히 범위를 좁혀가며 청개구리 같은 녀석을 잡아간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라는 위안을 받으면서도 궁금했다.

과연 아내가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커피 한 잔과 함께 털어놓은 이유는 나의 경우와 비슷했다. 아내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심히 청개구리 같았다고 한다. 한 가지 예로, 중학생 시절을 캐나다에서 보낸 아내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급하게 고등학교 입학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당시 선생님이셨던 장모님은, 캐나다에서 학기를 마쳤지만 한국 고등학교 입학 조건으로는 한 학기가 부족했던 아내가 들어갈 학교를 알아보셨고 직접 찾아가 학교 측에 양해도 구해놓으셨다.


그런데 입국한 아내는 단순히 교복이 이쁘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했고 그로 인해 적잖은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우리 집에 청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대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분노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아내는 나와 확연히 다르다.

내가 본 바로, 아내는 ‘서로 닮음'에서 날아드는 예상치 못한 부정적인 파편의 내상에서도 곧잘 회복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자신을 닮은 가족들의 모습에서 발견되는 부정적인 면을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지 않는다.

오히려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고 그것으로 인해 행복을 느낀다.


아이가 자신처럼 담요에 애착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그렇다. 아내 자신도 어린 시절에 부들부들한 담요의 촉감을 좋아했고 학령기 전까지는 가는 곳마다 챙겨 다녔다는데, 아이도 똑같이 담요를 좋아하며 그런 행동을 보인다. 아내는 청개구리 같은 아이 때문에 가끔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아이가 담요를 가져와 엄마를 함께 덮어주면 그 모습에 귀여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함께 헤헤 거린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나에게는 저러한 인정과 가벼움과 경쾌함이 부족했음을 깨닫는다. 돌이켜보면 인정하기 싫은 나의 여러 모습들을 재현하는 아이에게 화내면서 무겁게 시작했던 나의 하루가 얼마나 많았던가.

내 감정에 갇혀 뾰로통하게 세면대 앞에 선채로 진한 샴푸향과 상쾌한 치약으로 옹졸한 마음을 씻어보려고 했던 적이 몇 번이었던가.


그렇다. 작은 일을 대참사로 키우는 원인은 바로 나에게 있었다.

그동안 나 자신을 사랑하기보다는 엄격과 근엄 그리고 완벽이라는 라벨지를 붙이고 살아왔던 것이다.

새삼 아내와 아이가 이런 나를 받아주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고마움을 느낀다.


앞으로는 부족한 나의 본모습조차도 인정하고 더욱 사랑하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그렇게 내가 먼저 변화하고 나아가 가족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 가족은 분명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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