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신경 쓰이는 그녀
그날 밤 감은 두 눈 사이로 그녀가 아른거렸다.
문득 강의동 옆 연못 벤치에 앉아있던 그녀의 모습이 물안개처럼 떠오른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중앙계단에서 마주친 그녀가 스치듯 지나간다.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해맑게 발표하던 그녀가 머릿속에 맴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느덧 내 마음속에 스크랩된 단편적인 그녀의 모습들 때문이다.
그날 밤 내 신경은 온통 그녀를 향하고 있었고 나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전공수업의 중요한 과제는 ‘그녀를 향한 나의 고백’이라는 또 다른 과제의 연결점이 되어주었다. 물론 나는 후자가 훨씬 더 중요했으며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고대 그리스어를 그렇게도 열심히 공부했다.
죽은 언어와의 씨름은 실로 따분했으나 그녀와의 시간은 너무 흥미로웠고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한편 순수하고 착한 그녀는 내게 받은 도움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보답하기를 원했고 나는 그 호의를 놓치지 않았다.
밤을 새우며 공부했던 나의 노력은 그녀와의 만남으로 돌아왔다. 철저히 나의 기준에서 볼 때 그것은 캠퍼스 밖에서의 공식적인 첫 데이트였다.
기대하고 기다리던 약속의 날이 다가왔고 우리는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잊지 못할 첫 데이트의 장소는 바로 분식집이었다.
대학가에서 조금 떨어진 초등학교 앞 분식집은 학원가의 어린이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좋아하는 떡볶이 앞에, 나는 좋아하는 그녀 앞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졸업 후 미래에 대한 청사진들을 하나씩 펼치며 나름 진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꽃가루 향기가 은은한 5월의 밤공기를 맡으며 함께 걷기도 하였다. 비록 그녀에게 겉옷을 내어준 채로 발을 동동 굴렀지만 낭만으로 채워진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따듯했다.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우리는 공원 벤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을 자랑하고 내세우기보다는 서로의 약점과 부족한 점을 드러내고 공감해 주면서
우리는 점차 한 우산 아래에서 밀착되어 갔다.
서로를 갈라놓는 마지막 횡단보도 앞,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초록신호등이 유난히 야속했던 그날,
우리는 마침내 사귀기로 했다.
그렇게 본인들만 모를 뿐 주위는 다 알고 있다는 캠퍼스 커플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동기들의 눈을 피해 시간 차를 두고 약속 장소에 갈 때의 그 긴장감, 강의실에서 몰래 잡은 두 손을 타고 흐르던 짜릿함, 무리 안에서 둘만의 언어와 경험을 공유할 때의 특별함, 사소한 것에도 통제가 되지 않던 질투심 등이 우리 사이를 수놓았다.
나는 그녀에게로, 그녀는 나의 인생으로 조금씩 발을 들여놓고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걸음은 점점 서로를 보완하고 채워주는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설픈 피아노 반주에 맞춘 나의 노래와 작은 선물을 곁들인 초대장에 그녀는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말해주었으며 우리를 존중해 주는 양가부모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
열 평 남짓한 신혼집에 그녀는 감사하게도 나의 아내로 와주었다. 비록 작은 공간이었지만 우리가 그토록 바라 왔던 ‘함께함’을 실현하는 곳이기에 행복의 밀도는 높았다. 매일 함께 눈을 뜨고 함께 요리하며 알콩달콩 지냈던 그곳은 마치 ‘새로운 가족’이란 미지의 영역을 향해 유영할 준비를 하는 작은 우주정거장과도 같았다.
그리고 머잖아 우리를 꼭 빼닮은 새로운 탑승자가 문을 두드렸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리 가족은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맞이했고 이전보다 넓은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겨갔다.
아이와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이 처음이었고 그만큼 우리는 서툴렀다. 처음 목욕을 시키던 날 아이는 따듯하고 쾌적한 물로, 우리는 땀으로 샤워를 해야만 했다.
2시간마다 식욕이 돋고 마음 내키는 대로 배출하며 하루에 대부분을 편하게 잠을 자는 아이와는 달리 우리는 수면부족과 만성피로에 허덕이며 불규칙한 식사를 해야만 했다.
때로는 아이의 울음소리만큼이나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이기도 하였고 건강 상의 이유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양가 가족들의 보답할 수 없는 도움과 부부간의 사랑과 이해 그리고 아이가 주는 기쁨을 통해 우리는 점차 어른이 되어갔다.
이처럼 8년째 나의 가족이 되어 함께 어른이 되고 있는 고마운 아내가 얼마 전 생일을 맞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내를 보며 우리의 소중한 기억들이 단편적이지만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여전히 나는 아내를 예전처럼 사랑함에도 풋풋한 감정은 세월의 흔적에 조금 가려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추억은 다시금 우리의 설렘지수를 높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서랍 속 깊이 잠들어있는 결혼반지를 오랜만에 깨웠다. 반지는 여전히 영롱하게 빛났으나 손가락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보통 잘 맞던 반지가 안 들어가면 붓기 등의 건강을 의심해 볼 수 있다는데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그냥 신혼 때보다 살이 쪘다.
그럼에도 나는 반지가 꼭 끼고 싶었다. 반지를 늘리기 위해 금속공예 공방을 가는 길에 나는 그녀와 처음 결혼반지를 맞추던 그날처럼 두근거렸다.
찾아간 공방은 40년 동안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낡고 허름했지만 한결같은 장인정신과 실력은 두말할 것 없이 훌륭했다.
어느 날 평소와 다르게 반짝이는 내 손을 보고 아이가 말했다.
사람들이 왜 금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금이 왜 비싼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이유가 무엇이냐 물어보니 아이는 대답했다.
‘금은 세상에 별로 없잖아. 그리고 변하지 않고 오래가서 그런 거잖아.’
명쾌한 답이었다. 손가락에 반지를 보고 아이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 가족은 얼마나 귀한 것일까?
나는 요즘 설레는 기분과 소속감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내가 되어 준 그녀와의 만남을 깊이 생각하고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가정에 대한 책임감을 되새긴다.
무엇보다 변하지 않는 사랑의 가치를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