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쥐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래서 나의 유년 시절은 시골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봄이면 진달래와 아카시아 꽃의 꿀을 찾아 뒷산을 모험하고 푸르른 5월이면 하굣길에 따먹은 오디열매로 인해 입과 손은 물론, 입은 옷까지 천연염색을 한 채로 집에 돌아왔다.
무더운 여름에는 시원하고 깨끗한 계곡에서 가재들과 함께 맘껏 수영하고 독서의 계절인 가을에는 맛있는 과일들을 따먹느라 책상에 엉덩이를 붙일 수가 없었다.
겨울에는 썰매 타기와 눈싸움을 즐기며 추운 날씨를 이겨보려 애썼고 설사 진다 하더라도 따듯한 구들장에서 군고구마와 귤을 먹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최고의 순간들이 있었다.
이렇듯 내 삶의 정체성은 많은 부분 시골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 대학 이후로 10여 년간 도시에 살았음에도 나는 알게 모르게 시골을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도시가 주는 편리함과 혜택을 누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시골이 주는 여유와 따듯한 정을 동경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시골로 돌아왔다. 도시의 삶이 익숙한 아내는 고맙게도 나의 의견을 들어주었으며 타의로 시골에 오게 된 아이도 잘 적응해주고 있다. 예전과는 자연과 환경, 모든 부분에서 많이 바뀌었지만, 시골은 여전히 시골스러우며 우리 가족은 5년째 잘 살아가고 있다.
물론 나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적응하는데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사 후 아내는 거의 2년 동안 산책을 할 때마다 우울했다고 한다. 시골은 인도가 잘 정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위험에 노출되기 십상이었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는 낡은 길을 걸을 때마다 아내는 마음이 어려웠다고 한다. 또한 운전을 하지 않는 아내에게 1시간 이상의 버스 배차시간은 마치 제3세계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한편 도시에서 쉽게 누릴 수 있었던 문화생활이 시골에서는 어려웠다. 특히 아이와 함께 문화생활을 누릴 만한 것이 도시에 비해 많지 않았기에 여러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아내와 아이는 잘 적응해 주었다. 많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시골에 스며들고 있다.
얼마 전 잠자리에서 아이가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말했다. 보통은 나와 아내가 책을 읽어주거나 들려주는데 그날은 아이에게 이야기의 주도권이 있었다. 아이가 들려준 재밌는 이야기인즉슨 ‘시골쥐와 도시쥐’ 우화였다.
내 기억의 지평선 너머에 있던 이야기가 다시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도시에 사는 도시쥐의 집에 시골쥐가 초대를 받았다. 시골쥐는 도시의 화려함과 그곳에서 호화롭게 살아가는 도시쥐의 삶이 부러웠다. 그러나 도시의 삶 이면에는 시골쥐가 마주해야 할 여러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결국 시골쥐는 시골로 돌아온다. 검소하지만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시골의 삶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아이는 마치 우화의 주인공 중 하나인 시골쥐를 자신에게 투영하고 있었다. 자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니 더 재밌게 느껴졌고 실제로 유아시절을 시골에 살다 보니 어느덧 진짜 시골쥐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나도 괜스레 웃음이 났다. 우화가 주는 교훈과는 별개로 실제로 아들에게서 시골쥐 같은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사실 그 웃음은 쓴웃음일 때가 더 많은데 가끔 도시로 나갈 때면 시골쥐는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놀이동산과 대형쇼핑몰 등 신문물을 접하면 아이는 어김없이 감탄사를 쏟아낸다.
우리에게 그 광경을 보라는 듯이 말할 때면 흥분으로 인해 음량조절이 잘 되지 않으며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우리 차지가 된다.
그러나 부끄러움도 잠시, 아이의 순수함에 가려졌을 뿐 우리도 아이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시골쥐들임을 깨닫는다. 우리도 아이처럼 놀라워하며 도시의 삶을 즐기고 때로는 부러워한다. 티를 내지 않을 뿐이다.
확실히 도시는 시골의 단조로움과는 다른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도시로 나온다. 마치 여행을 가듯이 우리는 도시로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영감을 얻는다. 이렇게 도시 물을 먹어주는 것이 시골에서 다시 살아가기 위한 좋은 자양분이 되어주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잠깐이지만 도시의 삶을 즐긴다. 그러다 도시의 답답한 회색빛과 거기에 물들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분주한 삶이 자연스레 우리를 다시 시골로 몰아낸다. 그러면 우리는 응당 그것을 받아들인다. 아내도 아이도 어느덧 도시에 오래 머무르면 피곤함을 느끼는 어엿한 시골쥐가 된 탓이다.
넓은 들판과 산이 보이는 시골에 돌아왔을 때 우리는 편리함이 아닌 편안함을 느낀다. 물질의 풍요와 편리함은 도시에 비할 데 없지만 시골에서의 삶은 꽤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마치 조용한 숲 속에서 상쾌한 공기를 맡고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처럼, 고요하고 적막한 시골은 삶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자세를 바꿔놓는다.
그중 하나는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삶으로의 전환이다. 시골의 불편함으로 인해 생긴 삶의 여러 틈들을 이러한 한 줄기 감사함의 빛이 새어 들어와 가득 채운다.
시골에 이사 온 후 3년이 지났을 때, 사람이 걸어 다닐 만하게 동네 인도의 곳곳이 정비되었다. 감사했다.
차를 타지 않아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무엇이든 다 판다는 생활양품점과 아내와 다시금 썸을 타보고 싶은 카페가 생겼다. 오픈 날, 마치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 것처럼 그곳은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우리 가족도 감격스러운 그 현장에 있었다.
황량한 도로에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늘어날 때마다 감사와 안정을 느꼈으며 조금 차를 타고 시내에 나가면 도시에서만 볼 수 있었던 유명한 가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리도 선물로 받은 쿠폰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시골은 빠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변화하고 있다. 물질문화와 비물질 문화의 간격이 벌어지지 않도록 서서히 변해가는 시골에서 우리는 감사를 배우고 있다.
이러한 시골에서의 삶을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아직 나와 우리 가족의 삶에는 많은 굴곡이 있을 것이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지 않을까. 시골에서의 경험은 유려하게 그려질 삶의 곡선 어딘가에 위치한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삶의 지점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