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이 주는 선물

내가 새벽에 일어나는 이유

by 패밀리즈하이

나의 하루는 보통 이른 시간부터 시작된다.

시간 흐름에 따른 생활습관과 효율성 측면에서 보자면, 나는 아침형 인간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미라클모닝 4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이 생활양식이 나한테 맞는 옷인지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의지와 체력이 그리 강한 사람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적의 아침’은 지속되고 있다.

이는 내 약해빠진 정신과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아침에 일어나야 할 중요한 외적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타인으로부터 오는 제약이다. 그리고 그 제약은 안타깝게도 나의 가장 가까운 타인으로부터 찾아왔다.


바로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타인의 삶은 곧 나의 삶에 대한 제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가장 많이 공유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있어 다름 아닌 가족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가 내 삶을 제한할 때가 너무나도 많다. 이는 사소한 불편 정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족은 너무나 자주 내가 그어놓은 삶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어 다닌다. 그렇게 영역을 침해당한 나 또한 언제 분노의 바닥에 떨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감정의 줄타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때때로 나는 이러한 제한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아내와 아이가 친정집에 며칠 동안 다녀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미소 지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 년에 많아야 한 두 번이다.

차선책으로 선택한 이른 새벽의 고요함도 잠시 뿐이며, 해가 뜨면 나는 다시 삶의 제한선 안으로 돌아간다.


문명과 동떨어져 홀로 살아가는 자연인과 수도사가 아니라면 우리 모두는 이러한 제약 가운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모두들 마음 한편에는 제한거리들이 없는 삶을 꿈꿀 것이다.

가장 가까이서 함께 지내는 가족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돌아볼 때 그랬고, 아내와 아이의 모습에서도 그러한 소망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친구들과의 모임 날짜를 달력에 미리 표시해 놓고 그날을 기다린다. 달력의 빨간색 동그라미는 마치 나와 아이에게 자신의 제한구역에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이자 육아와 삼식이로부터의 독립일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듯하다.


한편 아이는 모임에 나가는 엄마를 함께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외쳤다. ‘이제 나는 자유다'

그날 나의 모습을 대변하는 이 꼬꼬마의 외침은 군것질과 만화시청시간의 제한으로부터 벗어난 것에 대한 기쁨의 아우성이었다.


이렇듯 가족의 삶은 서로의 삶을 제한한다. 가족 구성원 누구에게나 완전한 자유는 없다. 결혼과 출산은 어쩌면 삶의 제한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이 무가치한 것은 절대 아님을 가족으로 살아내면서 느낀다. 그것은 책이나 요행으로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만약 내가 가족 안에서 제한받지 않고 살아간다면 마냥 좋았을까? 내 답은 ‘아니요'이다.

오히려 내 삶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불편들을 포용하고 살아낼 때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느끼는 것 같다. 이기심은 존중과 배려로 바뀌며 희생은 오히려 만족감으로 돌아온다.


한편 통제할 수도 관리할 수도 없는 제한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성장’이다. 제한은 혼자 있었다면 발견하기 어려웠을 나만의 약점을 드러내게 하고 보완해 준다. 일례로 나는 매우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동시에 실패에 대한 대안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아내는 안정적이고 현실주의적이다.

만약 아내가 옆에 있지 않았다면 지붕을 뚫고 나간 나의 이상이 지금보다 더 많았을 것이며, 이상과는 다른 현실을 마주한 채 후회할 상황도 더 많았을 것이다.


한사코 매일 놀아달라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나는 아이와의 소중한 추억을 쌓지 못했을 것이며 독선적이고 무뚝뚝한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듯 제한은 나를 성장시킨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물속 세계에만 있던 나를 기어코 육지로 올라오게 만든다. 그러나 제한을 인정하고 내 삶과 가족의 삶 모두에게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 나는 양서류와 같이 양쪽의 세상을 오가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흔히 예술가들은 제약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악기 연주자는 악보를 그리기 위해 가로로 그은 다섯 줄이 주는 제한을 받아들이며 음표가 만들어 낸 세계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를 기대한다.

화가는 캔버스 틀의 제한 안에서 자신의 주관을 마음껏 펼쳐낸다. 시인은 운율이라는 제한 안에서 시의 음악성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운율이라는 제한이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시가 아닌 산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가장 ‘나’ 다워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가족 안에서 나에게 부여되는 제한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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