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쓰기 평행이론
나이가 한 살 더 먹은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나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예전보다 피곤하게 느껴진다.
아마 추운 겨울 날씨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넨다.
반면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매일 뛰어놀아도 활력이 넘친다.
솔직히 부럽다.
올해 우리 가정은 격변기를 겪을 예정이다.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학부모가 된다.
목도 못 가누던 아들 녀석이 곧 학교를 간다고 하니.. 참 세월이 빠른 것 같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갈 때는 대소변만 잘 가릴 수 있도록 준비해도 충분했던 것 같은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이제 적게는 12년, 많게는 대학 교육까지 매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아이와 우리 모두 그렇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나는, 예전부터 아이를 꼭 학교를 보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해왔다.
세상이 나날이 각박해지면서 홈스쿨링은 어떨까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내 생각을 바꾸는 데는 그리 큰 노력도, 시간도 필요 없었다.
최근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점점 각박해져 가는 나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나름 객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부모가 되면서 지극히 주관적인 사람으로 바뀐 것을 느낀다.
특히, 고슴도치 아빠가 되면서 자녀를 향한 주관적인 편향이 나도 모르게 많이 생겼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치우침은 주로 긍정적인 방향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영재가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많다.
예를 들면, 또래보다 말을 빨리 시작했을 때나, 가끔 어른들이 쓸만한 어려운 단어를 구사할 때,
그리고 수많은 자동차들을 헤드라이트 모양으로 구분하고 이름을 외울 때 등이다.
가끔 유머를 던질 때면 너무 기발한 생각에 그렇게 웃길 수가 없으며, 장난감으로 중국어와 영어를 익히는 모습을 보고는
빚을 내서라도 특수한 교육기관에 맡겨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내 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호들갑이 부끄러움으로 바뀌는 순간, 나는 고슴도치의 탈을 조금씩이나마 벗을 수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고슴도치의 탈을 더 단단히 여미고 가시를 세우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얼마 전 저녁식사 시간에 아이는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칭찬을 받고 싶은 표정이 얼굴에 한가득 담겨있었다.
그 내용인즉슨, 유치원에서 한글 받아쓰기를 하는데 자기 생각에 꽤나 잘한다는 것이었다.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는 아이에게 한글을 제대로 알려줘 본 적이 없다. 아직은 마음껏 뛰어놀면서 자라길 바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고 계속해서 아이의 말에 집중하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들 녀석은 받아쓰기를 잘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뒤에서 두 번째로 잘하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 뒤로는 6살 동생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도 그렇게 잘하고 사리분별도 정확해 보이는 녀석이 한글을 깨치는 데는 영 소질이 없었던 것이다.
그 정도면 괜찮은 거야!라고 칭찬해 주면서도 나도 모르게 숨겨있던 가시가 세워졌다.
나의 표정과 말투를 읽었는지 아이는 멋쩍은 웃음을 뒤로한 채 식사를 이어갔고, 우리들의 고요함 속에서 식기와 수저 간의 불협화음만이 맴돌았다.
정말이지 고요한 저녁이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다양한 감정이 느껴졌다.
못마땅함, 화남, 미안함 등등.
하지만 나는 결국 너그러움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다양한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때로는 외부가 아닌 나 자신을 조용히 들여다볼 때 해답의 실마리를 찾는 경우가 있는데, 그날 밤의 경우가 꼭 그랬다.
해답은 나의 어린 시절과 키워주신 부모님에게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은 정말 남달랐다. 구별된 무언가가 있었다. 그런 부모님을 나는 거룩하다(구별되다)고 말하고 싶다. 이는 ‘추앙하다’라는 말보다 더 높여 부르고 싶다는 뜻이다.
우리 아들과 결이 비슷한 일이 나에게도 있었다. 한글 받아쓰기 사건이 30년 전 있었다는 사실과, 나를 향한 부모님의 태도가 기억나자 복잡한 감정들로 인해 고요했던 그날 밤은 거룩한 밤으로 바뀌었다.
아직은 국민학교였던 1학년 시절, 나는 버젓이 책가방이 있음에도 하굣길에 종이 한 장을 손에 쥐고는 기쁨에 겨워 집으로 갔다. 기억의 조각 속에 그 종이는 꽤 컸었다. 교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버스 승강장까지 이어지는 길에 나는 필수 경유지인 문방구에도 들렀다. 버스를 기다리던 시골장터에는 부모님의 지인들도 많았으며 나는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내내 그 종이는 고사리 같은 손에 꼭 쥐어 있었다. 부모님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위한 발걸음은 정말이지 너무 가벼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외쳤다. ‘나 오늘 처음으로 받아쓰기 30점 받았어! 너무 잘했지?’
가벼운 발걸음과는 반대되는 무거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소낙비가 내리는 30점짜리 받아쓰기 시험지를 동네방네 소문내면서 집에 온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부모님의 반응이었다.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안아주시며 너무 잘했다고 말하셨다.
부모님은 나를 향해 가시를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따듯한 품으로 안아주신 것이다.
이것은 아직까지 나의 좋은 기억의 조각으로 남아있다.
받아쓰기 30점에 칭찬을 받은 나는 그 이후로 자신감이 넘치는 학교생활을 했다.
그때의 칭찬과 사랑은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덧 나도 부모가 되었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나도 좋은 고슴도치가 되고 싶다.
칭찬과 격려 그리고 무엇보다 품어주는 사랑 안에서 말이다.
요즘은 인내하면서 한글을 알려주고 있다. 아이는 생각보다 잘하고 있다.
한글 깨치기가 조금 늦으면 어떤가.
돈 계산과 사리분별은 아주 정확한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