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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팸트리 Dec 24. 2015

한국인의 각종 계보 DNA 연구

1. 한국의 원시형(原始形) DNA

한국인의 각종 계보 DNA 연구 


  1. 한국의 원시형(原始形) DNA  

 시베리아 몽고 만주대륙 한반도를 하나의 벨트로 엮어 그 지역명의 첫 자를 따서 편의상 ‘시.몽.만.한’벨트라 부르기로 한다. 구석기 시대에 시.몽.만.한 벨트에 살던 원시인들은 극동아시아 인류 최초의 DNA 특성이라 할 만한 단서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구석기 시대가 저물고 신석기 시대가 시작 되는 무렵에 이르러 이른민무늬토기가 나타나자 신석기 시대 초기 사람들의 DNA 특성이 거기에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이른민무늬토기는 그릇 바깥 면에 무늬가 거의 없고 그릇의 두께가 비교적 두툼한 편이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이 무렵의 시.몽.만.한 벨트에 살던 사람들의 미의식(美意識)은 백지(白紙) 상태의 수준을 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의 의식(意識)이 순수하고 소박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릇의 두께가 비교적 두툼한 것을 볼 때 마음이 푸근하고 넉넉해 보인다. 이것을 가지고 신석기 시대 초기 사람들의 DNA 특성을 유추해 본다면 그 사람들의 DNA 특성은 순후(淳厚)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지구촌 극동아시아의 인류 최초의 DNA 특성이라 할만하다.


 신석기 시대 초기가 지나 본격적인 신석기 시대를 맞이하여 빗살무늬토기가 나타났다.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 토기는 그릇 표면에 빗살 같은 무늬가 새겨졌다. 이것은 기하학무늬이다. 신석기 시대의 시.몽.만.한 벨트에 살던 사람들의 DNA 특성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변했다. 그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의 DNA 특성은 과감하며 적극적이고 진보적이며 혁신적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동안 빗살무늬형 DNA 특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빗살무늬형 토기의 DNA 특성을 지닌 사람들은 창조적인 일에 능하며 성공을 향해 돌진하고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들은 불굴의 기상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저력이 대단하다. 불운이나 불행, 재앙과 환난을 만났을 때 그 사람들의 활약은 눈부시며 감동적이다. 

빗살무늬형 토기가 발견 된 지역은 주로 해변이나 강변, 평야가 많다. 한국의 서부 지역에 해변 강변 평야가 있는 고구려와 백제에 빗살무늬형 토기의 DNA 특성이 많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신석기 시대가 저물고 청동기 시대가 도래 하였다. 이 시대에는 빗살무늬 토기를 누르고 민무늬토기가 나타났다. 아마 빗살무늬 토기를 쓰는 사람들은 자생하거나 이른민무늬 토기를 사용한 사람들이 진화나 변이를 거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극동아시아와 떨어진 서부 지역 사람들이 극동아시아 드림을 실현하기 위하여 동래한 이주민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른민무늬 토기를 사용한 사람들은 원주민이었을 것이다. 

이른민무늬 토기를 사용한 사람들인 원주민들은 신석기 시대 초기에 기하학적 두뇌와 선진문화를 지닌 이방인들한테 주도권을 빼앗겼던 것을 통한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를 통해 이방인들의 선진문화를 겪어 보니 그것이 별것 아니라는 자각이 생겼다. 자존심을 회복한 원주민들은 빗살무늬 토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그간 빼앗겼던 주도권을 도로 찾아서 이른민무늬토기의 특성을 계승한 민무늬토기 시대를 개창하였다.  


청동기 시대의 민무늬토기는 표면의 모양이 단조로우며 수수하다. 대체로 무늬가 없고 밋밋하며 투박한 것이 특징이다. 청동기 시대 민무늬토기를 사용한 사람들에게 나타난 DNA 특성은 보수적이며 순후(淳厚)한 것이 변함없다. 청동기시대부터 현대까지 나타난 민무늬형 DNA 특성은 절제 규범 안전을 중히 여기고 있다. 그리고 체면과 명분도 아울러 중히 여기며 분수를 지킬 줄 알고 예의 바르며 자신의 영역을 목숨 바쳐 수호하려 하였다. 

민무늬형 토기의 DNA를 지닌 사람들은 시.몽.만.한. 벨트의 골짜기에 주로 모여 살았다. 시베리아와 몽고 만주 대륙은 골짜기가 많지 않으니 민무늬형 토기의 DNA를 지닌 사람들은 백두대간의 13정맥이 지나가는 골짜기에 많이 살게 되었다. 그 골짜기 중에서도 특히 영남이 민무늬형 토기의 DNA를 지닌 사람들의 본거지가 되었다. 백두대간의 척추에 해당하는 태백산 아래 골짜기, 십승지의 하나인 봉화군 춘양면 석문동을 비롯한 법전 마을은 민무늬형 토기의 DNA를 지닌 사람들의 세거지(世居地)가 되었다. 


여하간 구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 70만년 세월 동안 시.몽.만.한 벨트에는 대표적인 두 종류의 DNA가 존재하였다. 바로 민무늬형 토기의 DNA와 빗살무늬형 토기의 DNA이다. 이는 지구촌의 극동아시아에 인류 최초의 특성을 드러낸 표준형 DNA의 출현이라 할 수 있다. 극동아시아 최초의 DNA 중에 백두대간과 13정맥이 지나는 곳에 DNA 특성이 밝게 드러나고 있다. 춥도덥도 않은 해돋이 국가 한국의 최초 DNA 특성이 가장 선명하다. 이것이야말로 시.몽.만.한 벨트의 핵인 한국의 원시형 DNA 특성의 발현이라 일컬을 수 있다.


서방세계는 원시형 토기 문화는 미미한 흔적을 남기며 답보상태에 그쳤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괴기(怪奇)하고 엽기적인 DNA 특성을 지닌 거석(巨石) 문화 시대로 급격하게 진입하였다. 더 나아가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닌 철기 문화와 지구촌을 누란의 위기로 몰고 가는 핵문화의 극단적인 DNA 특성 시대로 비상(飛上)하였다. 이들의 DNA 특성을 지구촌의 표준형이나 이상형이라 선뜻 부르기에는 당혹감을 숨길 수 없다. 

서방세계에서 한국보다 더 빨리 DNA의 특성이 출현하였더라도 그것은 한국 원시형 DNA의 변형일 가능성이 크다. 지구촌에 해가 처음으로 떠오를 때 서방 세계는 한밤중이었다. 동방세계는 인류의  최초 D NA 특성이 움틀 때 그들은 황당무게한 꿈속을 헤매고 있었을 뿐이다.  

 한국의 원시형 DNA 특성의 하나인 민무늬형 DNA가 전승되어 가장 잘 보존 된 지역의 하나가 태백산 골짜기 법전 마을이다. 법전 마을에는 그 뿐만 아니라 한국의 원시형 D NA 특성의 다른 하나인 빗살무늬형 DNA도 아울러 전승 되어 오고 있다. 


시조가 고구려 사람이라 고구려의 피를 받은 진주강씨 법전 마을 사람들은 빗살무늬형 DNA를 지니고 있다. 민무늬형 DNA를 지닌 영남 사람들은 고지식하다 그리고 또 그들은 단조롭고 순백(純白)하며 폐쇄적인 면도 있다. 오로지 남인과 교류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진주강씨 법전 사람들은 다양하고 개방적이며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한  관계로 진주강씨 법전 사람들은 당색에 구애 되지 않고 폭넓게 통교하였다. 

 진주강씨 법전 마을 사람들은 진보적인 DNA를 지니고 있기는 하나 영남의 민무늬형 DNA 영향을 받아서 영남의 보수적인 DNA 특성도 어느 정도 지니게 되었다. 법전 마을은 한국의 원시형 DNA 두 종류, 즉 민무늬형 DNA와 빗살무늬형 DNA가 분명하게 공존하는 지역이 되었다. 그러므로 법전 마을을 ‘한국의 원시형 DNA 보유 마을’이라 일컬을 만하다.  


2. 단군의 교육 DNA

 우리 민족은 70만년 전 구석기 시대부터 이 땅에 살기 시작하였다. 이때는 두 명이나 세 명 아니면 다섯 명, 좀 더 많으면 십여명, 그보다 더 많으면 수십 명이 골짜기마다 여기저기 드문드문 함께 모여 살았다. 그 당시 언어가 없었다. 있다면 언어라 할 것은 못되고 그 비슷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뭇짐승들처럼 한 두 마디 소리를 질렀을 것으로 본다. 예컨대 ‘아’...라든가 ‘우’...라든가 아니면 ‘야’라든가 ‘호’라든가 합쳐서 ‘야호’하는 따위의 비슷한 소리가 아니었나 싶다. 더 나아가 자기가 여기 있다는 신호로 ‘에에에’... ‘여여여’ 등의 외마디 소리를 연속으로 질렀을 것이다. 또한 무리 중에서 어느 누가 보이지 않으면 찾느라고 어이어이.... 여어...여 어....등의 신호를 보내어 여기로 오라든지 저리로 가라든지 하는 따위의 간단한 음성 신호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쪽에서 부르는 신호에 답하여 그리로 간다는 뜻 ‘알았다’를  ‘아아아...’ 예예예 ....등으로 음성 신호를 발전시켜 나갔을 것이다.  


 70만년 전의 사람들이 지구촌 동쪽 새벽에 태평양 바다에서 환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그 중에서 누군가 ‘환하게 떠오른다’는 뜻으로 태양을 ‘화화화...’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훠훠훠...’하는 사람도 있고 ‘훼훼훼’하는 사람도 있고 ‘헤헤헤...’하는 사람도 있고 ‘해해해...’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음성신호가 난무하다가 수 천년 수 만년이 흐르면서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음성 부호 하나가 선택 확정되었을 것으로 본다. 아마도  ‘화화화...’ ‘훠훠훠...’ ‘헤헤헤...’  ‘해해해...’ 등이 마지막까지 각축전을 벌리다가 결국 ‘해해해...’가 판정승을 거두어 그것을 ‘해’라고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원시 시대 우리 조상들이 태양을 보고 ‘해’라는 공통의 음성부호 하나를 탄생시키기까지 그 얼마나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하였을까 가엽고 딱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인 환웅 단군”이란 어휘도 약 7십만년을 두고 이 땅에 살아 온 우리의 조상들이 마치 옥을 다듬고 갈고 쫓고 새기고 보듬듯이 여러 음성 부호를 사용하다가 그 중에서 그들을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낸 것들이다. ‘환인’은 학계에서 ‘하나님’ ‘하늘님’을 뜻한다고 의견 통일을 보고 있다. 그 어원을 궁구해보면 환하다는 뜻으로 귀결 된다. ‘환하다’는 뜻을 가진 태양을 우리민족은 ‘해’라고 말한 데에 그 연원을 두었을 것이다. ‘해’는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과 같이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짐으로써 ‘환’은 바로 ‘하늘’을 뜻하며 ‘하나’를 뜻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다’의 어간 ‘이’는 ‘있다’라는 뜻의 존재와 ‘이다’라는 자격의 뜻이 있다. ‘이’에 든든하다 믿음직스럽다는 뜻으로 ‘ㅁ’을 밑에 붙여 만들어진 ‘임’은 ‘든든한 이[사람]’ ‘믿음직한 이[사람]’를 뜻하였을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환인의 인은 ‘임’의 변음이며 ‘님’의 변음이기도 하다. 그러니 환인은 하늘님 하나님이 된다.     

 환인의 아들을 일컫는 소리로 ‘우우우...’하였을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우르르’하고 내려왔다는 뜻으로 ‘우’자를 쓰고 ‘ㅇ’을 밑에 붙여 환웅이라 하였을 것이다. 우리 아기들이 대변을 볼 때 ‘응아’하라고 한다. 이것은 70만년 전부터 무엇을 내려 놓는다는 뜻으로 사용한 음성부호가 아닐까 싶다. 환웅의 ‘내려 놓는다’는 뜻이 ‘응아’로 발전하였을지도 모른다. 대변이 몸에서 떨어지거나 아이가 자궁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을 ‘응’ 아니면 ‘웅’ 했을 것이다. 그래서 환인의 아들로 땅에 뚝 떨어졌다는 뜻으로 하늘의 뜻인 환에다가 ‘웅’자를 붙여서 ‘환웅’이라 하였을 것으로 본다. 더구나 ‘웅’은 나중에 ‘꾼으로 발전하였을지도 모른다. 꾼은 ‘일꾼’ ‘심부름꾼’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일하는 이‘ ‘이끄는 이’ 즉 리더나 봉사자를 뜻한다. 환웅의 아들 ‘단군’의 ‘군’은 웅-꾼-군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단군의 ‘군’은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일꾼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단군’의 단자는 어떻게 형성 되었을까? 단군의 ‘단’자의 어간은 ‘다’에서 나온 것으로 ‘다’의 뜻은 ‘달달달...’ ‘닥닥닥...’ 뛰어다니는 모습과 관련이 있다. 또는 바쁘게 무슨 일을 하거나 어떠한 행위를 열심히 하는 뜻이기도 하다. ‘다다닥 다다닥 다다닥...’ 무슨 일인가 ‘빨리 빨리 빨리....’해내는 모습이다. 마치 오늘날 한국인들이 ‘빨리 빨리 문화’로 한강의 기적을 낳았듯이 벌써 5천년 전 우리 조상들도 ‘빨리 빨리 문화’를 갖고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5천년 세월이 흘러도 그 후예들은 변함없이 단군의 판박이 모양을 지니고 있다. 단군의 후예들은 무슨 일이든 바쁘게 하며 어떠한 행위를 하든 열심히 하며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단군의 ‘단’자는 열심히 일한다는 뜻을 갖고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군은 이미 환웅의 ‘웅’에서 설명하였듯이 ‘웅’이나 ‘꾼’의 변음일 것이다. 그러므로 단군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 즉 나라의 일꾼을 뜻한다. 단군은 홍익인간하려는 일꾼의 뜻이다. 


또한 단군의 단자의 어간 ‘다’는 또 다른 뜻도 있다. 바로 ‘달다’의 어간일 수 있다. 님은 달콤한 사람이다. 단군한테서는 만인에게 연인처럼 달콤한 맛이 난다는 뜻이 내포 되어 있다. 단군은 우리 민족의 일꾼으로 태양처럼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한민족의 영원한 님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민족은 임금을 님이라 불렀다. 임금도 일꾼에서 변형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하간 단군은 달콤한 님의 뜻이 내포 되어 있다고 본다.

지구촌의 아침을 여는 지역은 시베리아 몽고 만주 한국 일본 등지이다. 시베리아 몽고 만주 한국 일본 등지의 야만의 70만년 역사가 끝날 무렵 BC 2333년 단군은 환한 민족의 일꾼으로 탄생하였다. 

단군은 홍익인간의 이념을 구현할 일꾼을 길렀다. 단군의 집안 교육은 수도(修道)를 통하여 일꾼을 만들었다. 그 일꾼 교육의 모범을 한민족의 모후 웅녀가 선보였다. 일꾼들은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먹고, 백일동안 동굴 속에서 살면서 참다운 인간 교육을 받았다. 단군 집안에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가 있다. 모두 일꾼이며 단군가(檀君家)의 교육 DNA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백 60여 가지의 일에 관하여 가정 교육을 받았다. 이와 같이 단군가(檀君家)는 가정 교육이 철저하고 사회 교육이 광범위하게 시행 되었다. 단군가(檀君家)의 가정 교육 D NA는 자자손손(子子孫孫)의 혈관을 통하여 반만년 세월을 두고 한결 같이 유전(遺傳)하여 법전 문중에 이르렀다. 


3. 단군의 계보 DNA

 . 우리 한민족 계보는 반만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의 계보는 단군으로부터 시작 되었다. 단군의 가계도[Family tree]는 환인 환웅 단군으로 내려오는 수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 안에 또 하나의 다른 성격의 계보가 존재하고 있다. 풍백(風伯), 운사(雲師), 우사(雨師)의 수평형 계보가 있다. 단군의 가계도는 세로로 1. 1. 1에 가로로 1. 1. 1 시스템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단군의 가계도는 세로와 가로의 복합형이다. 단군의 계보 기본형은 반만년을 두고 변치 않고 그대로 전승 되어 오늘날 법전 마을의 문중에 이르렀다. 


환인 환웅 단군과 풍백(風伯), 운사(雲師), 우사(雨師)에 이르는 6인의 계보의 핵은 단군이다. 단군은 하늘의 환인 환웅과 땅의 풍백(風伯), 운사(雲師), 우사(雨師)와의 상하관계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단군의 계보는 세로형을 기본으로 하되 가로형으로 번성하고 있다. 세로형은 가로형의 갈등과 충돌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반면 가로형은 수직형이 외줄로 내려오면서 좌우로 흔들리거나 무너질 수 있는 취약함을 보강해주고 있다.  


단군의 계보의 골격은 기수(奇數)와 우수(偶數)로 구성 되어 있다. 기수는 1. 3. 5. 7. 9로 나가는 홀수를 말하며 우수는 2. 4. 6. 8로 나가는 짝수를 말한다. 기수의 기(奇)의 뜻은 기이하다 괴상하다 새롭다 뛰어나다를 뜻한다. 홀수 1은 일의 시작이다. 기수는 창업 발전 개전 승전 등의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며 착수, 착공, 투쟁, 전쟁, 혁신, 돌진, 공격을 앞두고 하는 맹세의 뜻을 지닌 숫자다.  

우수(偶數)의 우(偶)자는 우대(偶對)와 같이 마주 대하여 조화롭다는 뜻이 내재해 있다. 그리고 우상(偶像)과 같이 목석이나 금속으로 만든 신불(神佛) 또는 사람의 형상을 뜻하기도 한다. 우수(偶數)는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 화평론자 갈등 조정자나, 협상파 온건파파 등의 이미지를 주며 융통성, 조화성, 완전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단군의 팸트리는 우수와 기수의 조화로 생명력을 지닌다. 

고조선시대에 양가, 우가, 마가, 저가, 구가의 오가(五家)를 구성하였다. 고구려시대에 계루부, 소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의 오부(五部)가 돌려 가며 임금을 냈다. 고조선과 고구려의 계보의 기본 모형은 기수를 사용하고 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왕과 그 부인 알영 왕후,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의 무덤을 오릉(五陵)이라 한다. 오릉의 형성구조도 기수로 되어 있다.  


 서라벌 지역에는 여섯 개의 촌이 있어 육부촌이라 불렀다. 신라의 6부란 급량부[이씨], 사량부[정씨], 모량부[손씨], 본피부[최씨], 한기부[배씨], 습비부[설씨]를 말한다. 이. 정. 손. 최. 배. 설 6개 성씨 집단이 6촌을 이루고 있다. 이를 사로6촌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로6촌의 촌장들이 모인 화백회의에서 만장일치제로 6촌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사로6촌은 고조선 고구려 신라를 건국한 이들과 계보의 기본 틀이 다르다. 전자는 기수를 주로 사용한 반면 사로6촌은 우수를 사용하였다. 

단군조선 고구려 신라를 건국한 이들의 DNA에는 창업 승전 등의 단호한 의지가 숨어 있으며 투쟁, 전쟁, 혁신, 돌진, 공격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사로6촌의 DNA에는 원만함과 조화성 완전성 융통성 등의 뜻이 숨어 있다.


단군신화에는 환인 환웅 단군 3대의 계보가 나와 있다. 단군 아래 풍백 운사 우사 3인이 보좌하고 있다. 환인 환웅 단군 3대를 주(主)로 하고 풍백 운사 우사 3인을 종(從)으로 하였다. 이 주종(主從) 관계가 한민족의 족보의 기본 모형이 되었다. 이것으로 계보 종주국의 첫걸음이 시작 되었다. 


한국인은 부모조상과 형제를 동지(同枝) 동근(同根)이라 하여 효성과 우애가 각별하다. 상하의 위계질서는 효성과 자애를 낳고 형제자매간의 수평 관계는 우애(友愛)를 낳는다. 서양은 이러한 상하좌우의 개념이 없으며 만민평등 만민사랑만이 그것을 대신한다. 그들의 네트워크에는 어른은 모두 아버지 어머니이고 동년배는 모두 형제자매다. 이들은 모두 박애(博愛)를 외치고 있다. 나를 낳아서 키워준 부모나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여느 사람이나 다 비슷비슷하게 여긴다. 서양 사람들은 할아버지 아버지 나 아들 손자, 형과 동생, 누이와 여동생 간의 각별한 사랑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효(孝)와 우애(友愛)라는 개념이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효와 우애를 중히 여기는 소셜 네트워크가 고조선 시대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그 네트워크가 조선조에 와서 성대하여졌다. 특히 조선조 선조조에 족보 간행이 본격화되고 문중이 수백 개 수천 개가 생기면서 단군 이래 계보학 종주국의 황금기를 구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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