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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팸트리 Dec 29. 2015

나주정씨, 다산 정약용 가문의 위광(威光)

나주정씨, 다산 정약용 가문의 위광(威光)



나주정씨 다산 정약용 가문은 9대 문과급제로 유명하다. 9대 문과급제를 3기(三期))로 구분해 보면 이 가문의 특성이 분명해진다. 9대 문과급제를 3기로 나누면 1기에 3명씩 배당된다. 제1기는 정자급, 정수강, 정옥형 3인이 내리 문과급제를 했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똑같이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할아버지 정자급은 종5품 소격서령에 그쳤고 그 아들 정수강은 종2품 병조참판에 올랐으며 그 손자 정옥형은 정2품 판서를 거쳐 종1품 좌찬성에 이르렀다. 좌찬성은 이상(貳相)이라 한다. 삼정승 다음의 정승이라는 뜻이다. 이 가문의 3인의 위력을 비교해 보면 할아버지는 기관단총의 화력(火力)이고 아버지는 박격포의 괴력(怪力)이며 손자는 미사일과 같은 가공(可恐)할만한 힘이라 할 수 있다.  


9대 문과급제의 제2기는 활짝 꽃이 핐다. 제2기  3인은 정응두, 정윤복, 정호선이다. 첫주자 정응두는 아버지처럼 좌찬성에 올라 이상(貳相)의 영예를 안았을 뿐만 아니라 아들 넷[윤조, 윤희, 윤우, 윤복]을 낳아 셋이 문과에 급제하고 둘은 도백(道伯)이 되었으며 하나는 병조참판이 되어 가문을 융성하게 하였다. 

정응두는 여기다가 또 손자 넷[호공, 호관, 호선, 호서]이 문과급제에 올라  줄경사를 맞았다. 이 중에서 정응두는 좌찬성, 정윤복은 병조참판, 정호선은 관찰사 등으로 제2기의 꽃을 피웠다.


앞에서 살펴 본 9대 문과급제의 제1기는 창업기(創業期), 제2기는 전성기(全盛期)에 해당된다. 그러나 제3기는 변환기(變換期)라 할 수 있다. 이 변환기는 이산(離散)의 몸살을 앓는다. 남인이 실각(失脚)한 여파(餘波)로 고양, 광주 등을 비롯한 경기도 일원(一圓)에 살던 나주정씨 응두 가문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정윤우는 예천으로, 정윤복의 아들 호약은 경북 영주 줄포로, 정호관의 아들 언황은 원성군 부륜면으로 각각 이사를 가버렸다. 


그러나 뿔뿔이 흩어진 이들이 가는 곳마다 성공을 했다. 경북 예천으로 간 정윤우의 후손에 정유신이 문과에 급제하여 부사를 지내고 정지원이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을 지냈다. 정달도, 정지항, 정지유, 정재대, 정이교, 정기섭, 정영진, 정상진, 정희섭, 정규삼, 정염교 등 글 잘하는 선비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현대 인물로 법무장관 정해창, 금융연구원 부원장 정해왕, 경남지사 정해식 등이 나왔다.


경북 영주로 간 정호약의 후손은 영주 줄포에서 문명(文名)을 떨쳤다. 정호약이 줄포 우사(㝢舍)에서 92세로 별세하였다. 정호약이 무후(無后)하여 정호공의 셋째 아들 언숙으로 대(代)를 이었다. 정언숙은 안동판관으로 재임 시 이곳 산천(山川)의 수려(秀麗)함에 끌려 줄포에 자리를 잡았다. 줄포는 소백산 아래 안정평야를 깔고 앉은 길지(吉地)로 풍광(風光)이 아름답고 들녘의 바람이 시원하여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 정언숙은 이 고장의 선비 학사 김응조, 매음 나이준 등과 도의(道義)로 사귀며 유유자적(悠悠自適)했다.  


정언숙이 자리잡은 이래 300여 년간 나주정씨들이 세거(世居)해온 줄포에는 글 잘하는 선비들이 많이 나왔다. 그 중에서 문암(文巖) 정지성이 있다. 다산 정약용은 문암보다 44년 아래인 족손(族孫)으로 문암을 방문하고 吾宗隱居處 ...林中着屋低라며 줄포에서 학문을 하는 족조(族祖)의 거처(居處) 광경(光景)을 그렇게 읊었다. 문암은 평생을 학문에 전심(傳心)하여 경학은 물론이려니와 천문, 지리, 의약, 복서, 음률, 역법, 병법, 산학에까지 두루 통했다. 그의 사상이 다산 정약용에게 흘러 들어가 문중의 독특한 실학사상을 잉태시키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임와 정일신도 우담 정시한에게 글을 배워 학식이 해박했다. 도암 정돈섭, 담옹 정규창, 서포 정태진 등이 모두 줄포를 대표하는 석학(碩學)들로 영주의 나주정씨를 빛낸 인물들이다. 


예천과 영주는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불리는 안동문화권의 고을들이다. 근기(近畿)지역(地域)의 사대부가(士大夫家) 나주정씨 응두 후손들이 사림의 성지(聖地)에 편입되면서 퇴계 이황의 문도(門徒)들이 진작(振作)시킨 호학지풍(好學之風)에 절로 취(醉)하고 영남 사림의 기절(氣節)에 흥(興)이 나서 퇴계 학통의 격류(激流)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 이방인(異邦人)의 짙은 색조(色調)를 일시에 털어버렸다. 


정호관의 아들 언황은 원성군으로 이사를 갔다. 정언황이 문과에 급제하여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다. 그 자손에 나주정씨를 빛낸 인물들이 또한 많이 배출되었다. 그 아들 우담 정시한은 뛰어난 학자로 나주정씨가 자랑하는 큰 인물이다. 다산 정약용이 우담을 일컬어 퇴계학파에 정구, 장현광 이후로 제1인자라고  칭송했다. 우담의 아들 정도겸, 손자 정사신이 문과에 급제하여 명문의 성예(聲譽)를 이었다. 우담이 문과를 했더라면 나주정씨 9대 문과 급제 기록을 갱신할 뻔했다. 정자급으로부터 10대를 내리 문과 급제를 했는데 우담 한 사람만 그 대열에서 빠져서 아쉽지만 그 학문만은 10대 300여년간 조손(祖孫) 중에 제일 빼어났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우담 정시한은 아버지가 안동부사로 있을 때 안동 관아에서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열심히 했다. 그뒤 아버지가 있는 원주 법천(法泉)에 우거(寓居)했으며 신곡(新谷)에 별업(別業)을 짓고 학문을 닦았다. 또한 언덕에 정사(精舍)를 짓고 강학을 했다. 한편 태백산과 소백산의 풍광(風光)을 사랑하며 오대산과 금강산, 학가산과 청량산을 편력(遍歷)하고 수석(水石)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구담(龜潭)에 정사를 짓고 단양8경을 즐기며 갈암 이현일, 고산 이유장 등과 학문을 논하며 영남의 석학(碩學)들과 교유했다. 경기도 고양, 양주 등지에서 원주, 단양을 거쳐 영주, 예천과 안동을 잇는 경기, 강원, 경북 삼도는 나주정씨 단일(單一) 학군(學群) 지구대(地溝帶)를 형성하여 인물 배출(輩出)의 토대(土臺)가 되었다.


우담 정시한의 현손(玄孫)에 인물이 나왔다. 해좌 정범조이다. 해좌는 홍문관에 들고 사가독서했으며 양관 제학과 형조판서를 지냈다. 정조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며 문장에 능해 정조로부터 ‘당대 문학의 제1인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해좌 정범조의 손자 상교가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참의를 지냈다. 정시한의 후손에 정견조가 문과에 형조좌랑, 정이섭이 문과에 이조참판, 그 아들 규년이 문과에 비서원승, 정준섭이 문과에 정언, 정규희가 문과에 승지를 지냈다. 정지흡이 문집 8권을 남겼고 정낙조, 정의관, 정하교 등 선비들이 많이 나왔다.

호자 돌림 언자 돌림 양대에 지방으로 다수가 흩어졌지만 정호선과 그 자손들만은 선조 세거지 경기 지방의 시흥, 용인 등에 살며 경기도 명문의 전통을 고수했고 9대 문과급제의 명맥을 이어 제3기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 중에서 제3기 주자, 즉 정호선의, 아들 언벽 손자 시윤  증손 도복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옥당에 들었다. 정언벽이 교리, 정시윤이 병조참의, 정도복이 공조참의로 그 벼슬은 제1기나 제2기보다 낮았지만 몰락한 남인 가문으로 얻은 소중한 성적표라 할 수 있다. 또한 나주정씨 응두 가문의 끈기를 조선(朝鮮) 천하(天下)에 자랑했고, 한민족의 특성을 세계(世界) 정신문화권(精神文化圈)에 드러내 보인 쾌거(快擧)로 우리 모두에게 값진 선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9대 문과급제자 중 아홉 번 째 정도복 이외 8인이 모두 다산의 직계 선조이다. 정도복은 다산의 종고조(從高祖)이다. 다산 정약용 가문은 문한(文翰)과 덕행(德行)으로 한양 권문세가의 화려한 문과급제 기록을 능가했다. 이 범상하지 않은 기록이 조선 하늘에 혜성(彗星)처럼 반짝이는 대학자 탄생의 서곡(序曲)이었던 것이다.


9대 문과급제 제3기의 마지막 주자 정호선의 집에서 다산이 나왔다. 뿐만이 아니다. 다산의 형제, 숙질 사이에 천주교 성인(聖人)이 하나 나오고 성녀(聖女)가 둘 나왔다. 성인은 바오로 정하상이며, 성녀는 체칠리아 유소사(柳召史), 엘리사벳 정정혜이다. 유소사는 다산의 형 정약종의 아내이며 정정혜는 정약종의 딸이며 바오로 정하상은 정약종의 아들이다. 유소사는 다산의 형수이며 정하상은 다산의 조카이고 정정혜는 다산의 질녀이다. 정약종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학자이다. 그 맏아들 철상은 바오로 하상의 형이기도 하다. 정약종 정철상 부자 역시 순교했다. 대실학자 다산을 비롯한 성인, 성녀 등 다수의 인물이  배출된 것은 9대 문과급제 가문다운 성적이다. 이 인물군이 9대 문과급제의 휘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것이 다산 가문의 위광(威光)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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