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카 겔을 먹어보면 어떨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있잖아. 방부제 같은 거.
먹어도 인체에 무해하다고는 돼있는데
먹지 말라고 돼있단말이지.
‘Do not eat this’ 이런 식으로.
이상하지 않아?
먹어도 해는 없는데 먹지는 말라니.
별게 다 이상하네 ㅋㅋ
그러면서도 내심 성빈은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수는 말을 이었다.
그냥 나는 내가 해서 죽거나.. 뭐 감방에 가는 게 아니라면
다 해보고 싶다 ㅋㅋ
크크 웃으면서 준수가 말했다
병신 ㅋㅋ
크크 웃으면서 성빈은 응수했다.
그리고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김 안에 있는 실리카 겔을 뜯은 다음
그 투명한 알맹이를 한알이었나, 두 알 정도 먹어봤던 것 같다.
물론 죽거나 하지는 않았다.
복어알을 먹어도 그렇게 찔끔찔끔 먹어서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해서는 안된다는 것들 중에는 그냥 해봐도 되는 일도 있구나
생각보다 별것 없다는 것을 깨달은 하루였다.
—
준수의 상에 다녀오는 길에 성빈은 문득 그때의 기억이 났다.
중학교 2학년쯤 되었을 때 같은데, 유독 다른 기억보다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
실리카 겔을 먹어서는 죽지 않았지만, 술을 마시고는 죽을 수도 있었다.
준수는 다니던 회사의 부서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술김에 무단횡단을 하다가 준수를 발견 못한 운전자가 준수를 치었던 것이었다.
응급차가 10분 뒤 준수를 근처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도착 전에 이미 준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연락을 받은 부인과 가족이 속속 병원으로 도착하고, 오열하는 시간을 지나
장례라는 현실 앞에서 부인은 주위에 남편의 죽음을 알리기 시작했다.
회사에 먼저 알리고, 평소 친했던 남편의 지인에게도 알려야 했다.
남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올렸다.
성빈은 사실 대학 입학 즈음 이후로는 준수와 연락이 끊겼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성빈에게는 준수의 비보가 전해졌다.
또 어찌 된 영문인지 연락은 14년 넘게 하지 않았고 심지어 결혼 사실도 모르고 있었는데도
준수의 번호를 성빈은 가지고 있었다.
예전 그대로의 번호이기도 하고, 연락이 안 된다고 해서 뭔가 지우지는 않았던 것이다.
꼭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한 느낌도 들었다.
–
처음 연락이 왔을 때는 얼떨떨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온 옛 친구의 번호로, 옛 친구의 있는지도 모르는 마누라가 연락을 했고,
그 내용은 친구의 죽음이었다.
슬프다거나 하기 이전에 너무 많은 사실들이 한꺼번에 업데이트가 되었다.
한편으로 중학교 때의 친구들은 준수가 아니더라도 데면데면해지거나, 연락이 끊긴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이 흔히 대학을 가고, 나이 먹으면 친구를 사귀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직장에 가기 전까지는 오히려 자아가 형성된 이후, 대학 이후의 친구가 더 잘 맞는다고 성빈은 느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변하고, 중학교 때의 성장 속도와 20대 이후의 성장 속도는 다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부분의 '옛날’ 친구들은 서로의 차이를 확인했고,
조금조금씩 만남을 줄이게 되었다.
대부분이 경조사에도 연락을 안 하게 된 것도 당연했다.
몇 명은 결혼한다고 연락을 받았지만, 축하한다고 말하고 양해를 구해 축의금만 전달했다.
청첩장은 주소를 찍어주면 우편으로 보내 주거나,
모바일 청첩장으로 바로 확인하고는 했다.
가볼까도 싶었지만 주말에 정장을 입는 것도 내키지 않고, 가봤자 아는 사람이 많이 없을 것 같아 가보지 않았다.
무엇보다 결혼 전에도 잘 보지 않았던 친구를 결혼식에 간다고 결혼 후에 보게 될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누군가는 인맥관리 차원에서 경조사는 챙겨야 한다.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다 라고 말했지만
성빈은 그렇게까지 주변머리가 좋달까, 마음의 여유와 자원이 넘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왠지 준수의 장례식장에는 오게 되었다.
실리카 겔 때문인가.
성빈은 생각했다.
–
성모병원의 빈소에 도착하니 밤 9시가 조금 덜되었다.
찾아가서 배례를 하려 하니 가족 중에 준수의 어머님이 성빈을 알아보았다.
나에게 연락을 준 준수의 아내도 처음 보게 되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니요 와주셔서 제가 감사드려요 의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홀로 어색하게 자리에 앉아 육개장과 반찬을 대접받았다.
혼자 왔는데도 4명은 앉을 수 있는 식탁에 반찬이 꽉 차서 조금 낭비라고 생각이 들었다.
육개장만 먹고 간다고 말했는데도 준수의 아내는 그러실 필요 없다며 반찬을 가져왔다.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냅두었더니 다시 수거해서 가져갔다.
육개장을 먹으면서 생각했는데,
딱히 준수와 실리카겔 이외의 추억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데면데면하게 멀어진 친구들에 비해 준수가 더 깊은 사이였던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장례식장에서 한다는 것이 불경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머릿속 생각을 사람들이 알지 못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한강을 넘어올 때,
문득 걱정이 되어 준수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했다.
제수씨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황이 없고 고생이 많으시겠지만 중간에 잠도 주무시고요
준수 좋은 곳으로 갔을 겁니다.. 힘내세요
힘내세요 라는 말은 보내고 나서 조금 후회했다.
퍽도…
퍽도 힘내겠군.
준수의 아내에게 답신은 오지 않았다.
–
답신은 한 달 뒤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김준수씨 아내 신희주입니다. 지난번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남편이 예전에 이야기를 많이 했었어서 연락을 드렸던 건데, 감사해요
성빈은 오전에 업무 중에 문자를 받아보았다.
내 얘기를 많이 했었구나..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서도, 뭔가 준수에게 미안했다.
답장을 나중에 해야지 싶어 폰을 내려두고 업무를 다시 보는데, 휴대폰의 진동이 다시 울렸다.
혹시 언제 저녁 한번 하실래요? 남편 유품 중에 하나 전해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유품이라고..?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번 주는 저녁 약속도 많이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언제가 편하세요?
곧 다시 진동이 울렸다.
오늘도 시간 되세요?
–
유품을 연관 있는 사람에게 전달해준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것 같은데, 준수는 나에게 뭘 준비해줬을까.
사실 준비라고 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죽음을 예견한 것도, 자살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우리는 늘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죽고 난 뒤 내 주위에 벌어질 일들과 나의 사후 평판을 위해서라도
조금씩 준비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다가, 죽으면 평판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으로 성빈은 일단 생각을 마무리했다.
–
준수의 아내는 착한 사람이었다.
업무 때문에, 교통체증 때문에 약속시간보다 40분이 늦었는데, 근처 카페에 가서 혼자 성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 아니오 괜찮습니다
뭔가 어디서 이런 상황을 본듯한 데자뷔가 스쳤다
날씨가 춥네요. / 그러네요 어제부터 쌀쌀해졌네요.
14년 동안 보지도 않은 친구, 하물며 그 친구의 아내와 얘기하려니 고역이다.
하지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은 예의상 어긋나는 것 같아 성빈은 가벼운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장례 치르시는데 고생 많으셨어요.
아 아니요 그때 도와주신 분도 많고 해서
생각보다 잠도 조금씩 자고.. 잘 치렀어요
남편 회사에서 상조업체 직원들도 보내주더라구요.
아 그래요? 하기사 요새는 상조업체가 워낙 잘해주더라구요.
네. 진짜로요. 사실 몸이 힘들진 않았던 것 같아요
마음은 힘들었겠구나… 성빈은 생각했다.
문득 약속시간을 근 한 시간 늦게 도착했다는 것이 생각이 난다
아 저녁식사하셔야 되죠? 나가서 간단히라도 뭣좀 드시죠
시간이 어느덧 8시 30 정도가 되어 있었다.
준수의 아내는 시계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네.. 일단 나갈까요?
네. 혹시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성빈의 질문에 준수의 아내는 눈을 잠시 크게 뜨더니 피식하고 웃었다.
왜 웃는 거지?
아 무슨 소개팅인 줄 알았네요 ㅋㅋ
준수의 아내가 말했다.
아 그런 거였나.
먹고 싶은 거 있냐고 물어보는 배려였는데 뭔가 상황이 우습긴 하다는 생각은 했다.
죽은 친구의 아내가 아니었다면 정말 그런 느낌일지도 모르겠군.
성빈은 생각했다.
어찌 됐던 정말로 오랜만에 모르는 여자와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으니
뭔가 기묘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처음 보는 여자를 고깃집으로 데려갈 생각은 없었지만,
본인이 괜찮다고 했고, 또 원하는 듯도 해서 따라주었다.
왠지 고기만 먹자니 느끼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시간도 9시가 다 되어가서 간단히 술을 시키자고 했다.
의외구나, 술 좋아하세요? / 아니요 그냥 고기 먹을 때는 가끔 마셔요
그렇구나.
매화수를 시키는 준수의 아내를 보고 서글서글하고 수더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수의 아내, 희주는 보통 말하는 예쁜 타입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눈은 작지만 어딘가 참하달까, 단아하달까 하는 느낌이 있었고
반면에 눈동자는 생글생글하고 호기심 많은 듯한 느낌이 있었다.
장례식장에서는 한없이 어두웠는데,
역시 여자의 회복은 빠른 건가.
뭔가 씁쓸함을 성빈은 느꼈다.
아무튼 예쁘진 않지만 피부도 좋고, 뭔가 한국의 착하고 내조 잘할 거 같은 와이프의 이미지가 있었다.
귀엽긴 하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성빈은 생각했다.
–
화장실을 잠시 다녀온다고 말하고, 성빈은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왔다.
들어온 사이 희주는 고깃집의 원형 철제 식탁에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었다.
아.. 어쩐지 많이 마시는 것 같더라니.
괜찮다며 홀짝홀짝 마시더니, 조금 알딸딸해 보이는 과정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많이 드신 것 같은데
성빈은 희주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가까이 가니까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끄윽끄윽 거리며 희주는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성빈은 갑작스런 상황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 이 여자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풀어줬다고 생각했다.
유품이라거나 죽은 친구 이야기도 일부러 잘 꺼내지 않고, 개인사라던가 어떤 일 하는지, 준수는 어떤 식으로 만났는지 정도를 얘기했다.
아… 그게 실수였나?
준수를 어떻게 만났는지는 물어보지 말걸 그랬나.
장례식 당일날 '힘내세요’라고 문자를 보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실수를 저질러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주는 점점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술집에 사람이 많아서 다행히 남들이 신경 쓰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죄책감과 미안함이 성빈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 희주씨 괜찮아요?
괜찮겠냐… 입 밖으로 내고서 또 한번 괜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성빈은 그냥 옆자리에 앉아서 희주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어깨에 손을 얹어서 위로해주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도 아니고, 토닥토닥 하는 느낌이어서 좀 적당하지 못한 느낌이었지만 그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성빈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준수의 죽음이 미친 듯이 슬프지는 않았다.
성빈에게는 이미 옛날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겨진 사람들, 소중했던 사람들의 가슴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잠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실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여서, 성빈은 술을 혼자 따라 마셨다.
좀 더 덜 맨 정신으로 있고 싶어졌다.
–
성빈은 모텔의 어두운 방에서 눈을 떴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렇게 돼있었다는 것은 핑계이고
술김에 이렇게 됐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한 변명이다
그 고깃집에서 한동안 희주는 울고 있었고, 그 옆 앉아 성빈은 혼자 술을 마셨다.
뭔가 술을 마시니 그냥 우는 모습을 봐줄 수만은 없어서 어깨를 감싸서 희주를 위로해줬는데,
어느샌가 희주가 성빈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성빈은 거부감 없이 희주를 안고 우는 것을 받아주었다.
둘은 별달리 말은 하지 않았다.
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일어나 계산을 하고 이미 새벽이고 내일은 토요일이기도 해서 모텔 숙박을 끊고 들어왔다.
술은 꽤 취했지만 둘 다 인사불성은 아니었다.
기억나지만 잘 기억 안 난다고 둘러댈 수 있는 정도
각자의 윤리적인 방어막을 걷어내기엔 충분한 정도의 취기였다
그냥 성빈은 크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여자를 위로해주다 보니 가련한 느낌에 더 위로해주고 싶고
덩달아 자신도 멜랑콜리한 기분이 되어 혼자 있기 싫어졌다.
그냥 두 사람은 혼자 있기 싫었고 자연스럽게 모든 것은 흘러갔다
방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엘리베이터에서 키스를 하고 있었고, 방을 열고 키를 꽂을 즈음엔 블라우스를 벗기고 있었다
성빈은 조금 취해 잘 벗기지 못했지만 시행착오와 희주의 도움 끝에 성공했다
침대로 두 명은 쓰러져서 서로를 만지고 핥았다
술 마시면서 있었던 감정의 격한 변화가 그들로 하여금 더 감정적인 사람이 되게 한 것처럼
성빈과 희주는 서로를 탐닉했다
조용했던 희주는 술기운이 있어서인지 소리를 크게 냈다
–
동이 트기 직전쯤에 성빈은 일어나 멍하니 모텔 천장을 응시했다.
술기운이 여전히 경미하게 남아서 머리를 멍하게 한다
지금 상황에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4년 만에 죽은 친구에게 연락이 왔는데 그 연락은 그의 아내가 한 것이었고, 그 내용은 친구의 죽음이었다.
1달 정도 뒤에 유품을 준다기에 만났는데 감정이 격해진 여자를 위로해주다가 자신도 술을 많이 마셨고, 술김에 죽은 친구의 아내와 몸을 섞게 되었다.
어디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어떤 영화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성빈은 지금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팩트를 먼저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희주는 성빈 옆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팔베개를 하고 잠들어있으니 꼭 애인 같은 느낌이다
성빈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문득 유품이 생각났다.
그래, 원래는 이 여자 나한테 유품을 주기로 했는데
그 유품은 무엇이었을까?
침대 건너편 의자에 희주의 핸드백이 열려있었다
성빈은 손을 뻗어서 살펴볼까 하다가 손이 닿지 않아서 포기했다
일어나려면 희주에게 해준 팔베개를 빼야 하는데, 별로 그러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뭐.. 별것 아니겠지.
끽해야 예전의 사진이라거나, 빌려간 뒤 돌려주지 않았던 책이라거나 할 것이다.
나한테 뜬금없이 10억을 증여한다거나 하는 것도 아닐 테니.
큰 일이란 없다.
희주는 깨어날 기색이 없었다
어제 술을 마실 때보다는 훨씬 편안한 표정이어서 성빈은 안심이 되었다
한편으로 술이 깨 오면서 점점 이 상황 자체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죽은 친구의 아내와 자버렸다…
해서는 안될 일인데. 심지어 친구는 죽은지 1달밖에 안되었다.
그러나 술김이라도 인사불성이 아닌 이상 마음이 전혀 없으면 남녀 간에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어제 카페에서 만났을 때부터 여자로서 희주는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여러 생각이 뒤엉키는 도중에, 문득 성빈은 실리카겔 생각이 난다.
그래.. 실리카겔이 이런 거였냐.
권장되지 않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사실 한다고 해서 죽거나 하진 않는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내내 해보고 싶은 욕심과 호기심
중학교 때 준수와 실리카겔을 먹어 봤을 때처럼
성빈은 그냥 지금까지 그래 왔듯, 금기라고 여겨지지만 별것 아닌 것들의 바운더리 하나를 넘겼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준수와는 별개로 남녀 간의 관계와 만남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니까
나만 딱히 나쁜 것은 아니다.
모텔의 창살 사이로 서서히 빛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면서 성빈은 생각이 정리되었다.
으응..
소리를 내며 아침의 빛을 느낀 희주가 꿈틀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 깼어요?
아.. 네 지금 몇 시예요?
지금.. 한 7시 50분 정도
아직 아침이네.. 출근 안 하죠?
네 오늘 토요일인데요 뭐.
그렇구나.. 그럼 나 더 잘래요
그렇게 말하고 희주는 다시 성빈의 팔을 베고 파고들었다
다시 희주의 움직임이 적어지고 새근새근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다시 잘까…
갑자기 성빈에게 노곤함이 몰려왔다
어차피 주말이고, 시간은 많다.
다음일은 그때 돼서 생각하자.
성빈은 눈을 감고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은은한 아침 햇살이 침대 밖으로 삐져나온 두 사람의 발을 비추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