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늘 무겁게 다가왔다. 마치 물먹은 솜을 어깨에 지고 걸어가는 것 같았다. 삶은 늘 어려웠고 선택은 늘 틀린 것 것 같았다. 그런 의미로 직업도 내게는 무거운 의미였다. 나에게 있어서 직업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입어야 하는 하나의 갑옷 같은 것, 누군가에게 우리는 틀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계급 같은 것이었다. 직업은 대한민국의을 살아가는 평범에 발버둥 치는 내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평범의 무게였다.
그래서인지 힘겹게 첫 책가방을 고른 이후로 단 한 번도 '네 장래희망이 뭐니?'라는 질문은 좋게 좋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고, 나는 매번 그 질문에 다시 물먹은 솜 덩어리를 이고 있음을 깨닫고는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내게 무거운 솜 같았던 질문 "네 장래희망이 뭐니?"에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기만 하면 그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든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든지." 그게 그렇게 쉬웠다면 세상에 평범에 짓눌려 무겁게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그럼에도 저 명언에 홱 등을 보이며 뒤 돌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그 말이 너무나 구구절절 옳아서겠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을 처음 읽었을 땐 삶이 가벼워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았다. 삶은 어차피 한 번뿐임으로 무겁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 그 책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무거움이 아니어도 산다는 것을 알려줬으니 그뿐이다. 삶이 꼭 무거워야 한다는 전제를 벗어난 후로는 조금 인생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굳이 모두 같은 선택지를 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평범이라는 무게를 덜어내어도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좀 가벼워진다고 해서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 등 등.
그리고 그날은 누군가가 원하는 직업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고백했다. 처음으로 내 우주가 새어 나왔고, 곧 내 꿈이 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평범의 무게를 덜어 내고 운명의 강을 헤엄쳐 나와버렸다. 적어도 내 우주엔 커다란 변화가 온 것이다. 사실 그깟 것 별것도 아니니까.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내 삶은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무거울 수도 가벼울 수도 있으니까!
결국 우리의 삶은 영원히 회귀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모두 처음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우리를 선택지 앞에 세우는 운명이라는 놈이 참으로 얄밉기도 하지만 그래서 삶은 무거워도 가벼워도 되는 선택지를 받아, 무겁고도 무거운 실패도 나를 녹여버릴 듯 오는 좌절도 결국은 한 번뿐일 것이니 그것 만으로 삶이 한 번인 게 참으로 다행이지 않은가? 그러니 나와 함께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같은 세대의 모든 이들에게,
티끌만 한 우연으로 모두 조금은 가벼워진 삶을 살 수 있도록 응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