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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안후라이안 Mar 08. 2020

싫다면 건너뛰기

여러 권을 동시에 읽을 수도 있지 않나요

처음에는 일러두기만 세 개를 구성하려고 했거든요. 한데 아무래도 세 번째 일러두기는 건너뛰는 편이 좋을 듯해요. 쓰고 싶어지지 않더라고요. 한 달간은 매일을 전쟁처럼 살아내고 아주 약간 여유를 부리게 되었는데, 하고 싶은 말을 다 뱉지 못하고 웅얼거리다 말기만 여러 번.  이럴 땐 과감해지고 싶어집니다. 살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때가 몇 번이나 있던가요. 이런 거라도 마음대로 해야죠(히히). 나중에 기운이 나면 쓰거나, 이마저도 어려우면 그냥 버릴까 봐요.


책 읽을 때도 저는 늘 이런 식입니다. 방금 전까지 읽던 책은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인데요, 시간의 입자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검색하다가 책 읽기를 그만두었습니다(뭐가 이렇게 어렵죠?). 내일이나 내일모레쯤에 마음이 동하면 계속 이어서 읽어나갈 생각입니다. 이 책만 특별한 건 아니에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읽어나가는 책은 몇 안 되니까요. 흥미진진한 판타지 소설이나 추리소설 정도가 될까요? 요즘은 그마저도 시들하네요. 일하는 삶은 사람을 변하게 합니다.


읽다가 관둔 책만 아마 스무 권이 넘을 겁니다. 그 언젠가 끝까지 읽을 마음이 있는 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책도 있습니다.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최근에 크게 히트한 몇 안 되는 소설 중 하나죠. 어찌나 필력이 좋은지, 정말 술술 읽힙니다. 초반에는요. 그러다 어느 순간, 아, 작가가 너무 욕심을 냈구나, 싶은 때가 왔습니다. 주인공이 한국전쟁을 겪던 그즈음이었던 듯해요. 중요한 전 세계의 역사적 에피소드를 모두 담아내려고 했던 작가의 의도는 성공했지만, 짜임새(플롯이라고도 하죠)는 엉성해지고 말았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마 언젠가 이 책을 다시 펼쳐서 마지막 장까지 읽어나갈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 말하는 책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결말이 끝내준단 거죠. 저는 그 힘을 믿어요!


독자로서 작가랑 맞붙으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작가도 평범한 사람입니다. 때로는 마음에 안 드는 단어나 문장을 고민하다 시간에 쫓겨 그대로 출간을 감행하기도 하고, 때로는 신들린 듯 자신도 모르는 명언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윤동주가 <또 다른 고향>이라는 시에서 백골을 끌어오고, '풍화작용'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몇 번이고 고심했다는 것을 아시나요? 저는 윤동주를 통해 처음 배운 그 '풍화'란 단어를 사랑하지만, 그는 그 단어가 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글 쓰는 사람만 글을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작가의 유명세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의 취향입니다. 그 취향을 믿어보세요! 그러면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며 읽고 싶지 않은 책을 읽지 않아도 되고, 재미없는 책을 읽지 않으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최근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읽은 책은 모두 일러스트레이터의 책들입니다. 장 줄리앙의 <THIS IS NOT A BOOK>은 멈출 이유가 없었어요. 표지까지 다 포함해도 30여 쪽밖에 되지 않거든요. 대신 각 페이지마다 오랜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너무 많은 농담들에 씩 웃으면서요('반짝반짝 작은 별'이 왜 '파파미미레레도'의 계이름으로 끝나지 않는 걸까요?). 르네 마그리트를 떠올리게 하는 책 제목도 정말 멋지지 않나요? 아아, 다음 장에는 마그리트 얘기를 조금 더 할 겁니다. 이렇게 그냥 넘기기엔 마그리트에 대한 제 사랑이 너무 크거든요. '이건 책이 아니다'라는 제목을 단 장 줄리앙의 일러스트 책.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쓰인 마그리트의 파이프 그림. 낯설게 보아야 진짜 실체를 꿰뚫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취향을 믿으세요. 읽히지 않는 책은 작가의 책임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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