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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안후라이안 May 18. 2020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 1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쉽게 쓸 수 있을까요

자네 그 잘난 책에 날씨를 언급하는 걸 잊지 말게. 날씨는 매우 중요하거든.

우리 모두에게 최초의 글쓰기는 '일기'였을 겁니다. '오늘은'으로 시작해서 '참 재미있었다'로 마무리하는 게 기본 틀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날짜 옆에 기록하던 날씨였습니다. 특히 방학 때 밀린 일기를 몰아 쓰기라도 할라 치면 친구 일기장을 빌려 날씨만이라도 베껴야 했지요. 날씨를 왜 기록하게 했었는지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헤밍웨이를 읽기 전까지는요. 그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날씨입니다. 노인의 운은 그날의 날씨가 좌우하니까요. 바람의 방향이, 해가, 구름이 결말의 복선이 됩니다. 헤밍웨이는 과장된 묘사 없이도 날씨에 대한 기록만으로 글의 흐름을 이끌어갈 수 있는 작가였습니다. 헤밍웨이처럼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더니 날씨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더군요.


인용문은 <헤밍웨이의 글쓰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글쓰기에 대한 인터뷰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편지와 인터뷰에서 글쓰기와 관련된 부분을 모아서 묶은 이 책은 디자인도, 내용도, 구성도 엉성합니다. 2009년에 발행했고, 지금은 절판되었습니다. 불필요한 디자인 요소를 제거하고 재편집해서 얇은 페이퍼백으로 나온다면 한 권쯤 사고 싶기는 합니다.








소설 속의 많은 인물들, 혹은 대부분의 인물들은 당연히 현실에서 가져온 인물들입니다.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니라 해도 아주 많은 부분을 가져온 인물들인 것입니다. ... 우리에겐 풍자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요.

소설을 쓰려고 시도해본 적이 있다면 봉착하게 되는 질문 하나. 대체 작가는, 우리는, 혹은 사람은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는 걸까요? 소설은 허구이고, 그러한 면에서 수필과 다릅니다. 한데 글을 쓰다 보면 그 경계가 모호하단 걸 깨닫게 됩니다. 수필이어도 사건의 순서를 바꾸거나 특정 사건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그대로 적는 기록과는 약간의 거리를 둡니다. 소설이어도 인물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살아 움직이는, 아는 인물의 표정과 몸짓과 생김새와 행동을 슬쩍 가져올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 모호한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밟다 보면 진이 빠집니다.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꺼내는 게 쉽지는 않으니까요.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관찰할 사람은 무수히 많으니까요. 대상에 대한 애정과 끈질긴 집중력만 있다면요.   


인용문은 제임스 설터의 산문집 <소설을 쓰고 싶다면>에 실려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기분을 느끼는 소설가 지망생(저와 같은 사람들요)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소설을 쓰는 기술과 기교가 아닌,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소설 <가벼운 나날들> 속 주인공 네드라와 비리는 설터의 지인 부부를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책이 나온 이후에는 이 지인 부부도, 설터도 이혼했습니다. 작가에게는 쓰는 행위가 시간과 감정을 정리하고 삶을 이어가는 통로였을지도 모릅니다(아니, 그럴 겁니다).

 





<뉴요커>와의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소설이란 땅 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라고 믿는다는 말을 했을 때 기자(마크 싱어였다)는 내 말을 못 믿겠다고 했다.

며칠 전에 만난 친구가 물었습니다. "넌 어떤 식으로 글을 써?"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먹고사는 일이 글 쓰는 일이다 보니, 정해놓지 않고 몸에 익숙한 대로 다양한 방식으로 쓰고 있었거든요. 의뢰인(고객)이 있는 기획물의 경우 ppt로 기획안부터 차근차근 준비합니다. 확정되었다면 큰 틀이 바뀌지는 않지만 답사나 취재를 다녀온 이후에는 카테고리 분류나 아이템을 수정하기도 합니다. 기획안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는 합의에 도달하기 쉽습니다. 소설은 조금 다릅니다. 개요와 플롯을 짜고 시작해도, 이미 타이핑한 글은 작가와 분리되어 또 다른 생명력을 얻는 듯합니다. 때로는 이미 정해둔 플롯보다 더 그럴싸하게 나아갈 때도 있어요. 많이 쓰고,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보는 게 정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용문은, 영화 <쇼생크 탈출>, <미저리>, <그린마일>의 원작 소설을 쓴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책에 적힌 내용입니다. 플롯이냐, 상황(직관)이냐를 두고 스티븐 킹과 딘 쿤츠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집니다. 두 작가 모두 스릴러 소설의 대가이고 코로나 19 사태를 예견한 듯한 소설 <스탠드(킹)>와 <어둠의 눈(쿤츠)>을 써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읽고 비교해보면 좀 나을지 모릅니다. 어느 쪽이 당신에게 맞는 글과 글쓰기 방식인지 말이에요.







쓰기에 대해 쓴다는 게, 해보니 꽤 복잡하단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쓰다 보니 자꾸 길어지는, 작가들이 말하는 글쓰기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한번 더 적어보겠습니다.


*커버 사진은 제가 가지고 있는 <유혹하는 글쓰기> 표지와 띠지입니다. 1판 44쇄(2017년)입니다. 2002년 1판 1쇄가 나왔고, 지금은 리뉴얼판을 판매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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