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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안후라이안 May 19. 2020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 2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쉽게 쓸 수 있을까요

단순한 구성이나 행동에서 가장 나쁜 것은 삽화적인 것이다. 삽화의 상호 간에 어떤 개연성이나 필연성이 없을 때 그것을 나는 구성에서 삽화적이라고 부른다. ...필연의 구성은 어떤 다른 것보다 훌륭한 것이다.

'플롯'이라는 용어를 언급하다 급하게 마무리한 지난번 글이 찝찝했으므로, 이번엔 그 얘기로 다시 시작해볼까 합니다. 국문과 복수전공자가 되어 맨 처음 구입했던 책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었습니다. 글쓰기와 비평에 대한 기본이 되는 모방, 비극과 희극, 카타르시스, 플롯에 대한 개념이 담겨 있어요. 실재하는 인간의 행위에 대한 '모방'이 글쓰기의 기본이란 것. 평범한 사람보다 더 천한 인물을 만드는 게 희극이라면, 더 훌륭한 인물을 만드는 게 비극이라는 것. 연민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사건이 해결되며 마침내는 감정을 정화(카타르시스)시킨다는 것. 비극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일정한 길이를 가지는 개연성 있는 이야기의 구성(개연성 없는 삽화 절제)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아, 이렇게 문과생의 고통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서 시작합니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는 웨스 벤틀리가 '리키'로 출연합니다. 그는 바람에 날리는 까만 비닐봉지를 동영상으로 촬영하죠. 개연성이 없는 삽화지만, 저는 그 장면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대해 깊이 파고들면서부터 이런 삽화들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플롯은 여전히 중요할지 모르지만 삽화를 꼭 배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제가 가지고 있는 <시학>의 몇 챕터인가는 페이지를 꺾어 접어둔 흔적이 있습니다. 읽어도 별 감흥이 없는 걸 보니, 아마 시험 범위였나 봐요(이런 삽화 말이에요).




능숙한 필자에게 초고란 당연히 다시 써야 하는 것이다. 일단 초고 형태로 글을 쓴 다음 다시 교정하는 편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훌륭한 글쓰기 방법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작가들이 작가 지망생에게 가장 많이 하는 조언은 '일단 쓰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많이 하는 조언은 '그렇게 일단 썼던 초고를 몇 개월 묵혔다 고치라'는 것이고요. 자신이 쓴 글에서 한동안 멀어져 있다 보면 독자의 시선으로 시각을 교정할 수 있게 됩니다. '이건 설명이 부족하군. 만연체가 만연한데? 아니, 접속사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써 나갈 때는 보이지 않던 흠집이 어쩜 그렇게 잘 보이는지요! 저처럼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를 켜고 단어를 일일이 찾아 글을 쓰고, 쓰는 중간중간 여러 번 퇴고하는 이들이라면 묵혔던 글 보기가 더더욱 괴로울 겁니다. 아예 사장시키고 싶단 생각에 미칠 정도로요. 하지만 쓰지 않으면, 고치지 않으면 무슨 수로 작가가 될 수 있겠어요?


인용문은 린다 플라워의 <글쓰기의 문제 해결 전략>에서 따왔습니다. '국어/작문'이라는 교양과목 참고서적이었는데, 다 읽지 않은 책 중 하나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2만 원이나 주고 산 책이지만 저는 매몰비용에 대해 과감한 편이라서요, 하하하(여러분 미안, 잠깐 식은땀을 좀 닦겠습니다). 대학 과제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500페이지를 넘어가는 두툼한 책인데도 쉽게 잘 읽히거든요. 한데 번역 문체가 최악입니다. 그래서 인용문은 제가 한번 수정했습니다.




아무튼 모든 글의 결사는 다소의 점정(點睛) 작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일편의 글은 형식으로만 맺을 뿐 아니라 내용으로도 완성하는 최후의 일선(一線)이 되는 동시에 번쩍! 하고 그 그 전체에 생기를 끼얹는 이채(異彩), 신운(神韻)을 지녔어야 묘를 얻은 결사 법이라 할 것이다.

첫 문장을 쓸 때도 지독하리만치 괴롭지만, 끝 문장은 더더욱 괴롭습니다. 마지막 음을 듣고 나서, 맨 처음 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을 느끼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이런 음악을 만나면 온종일 그 곡만 무한 반복해 들어도 행복하거든요. 마찬가로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 그 긴긴 여운이 가시지 않아 한동안 책을 부여잡고 있던 경험이 더러 있습니다. 욕심이 많은 저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고 매일 생각합니다. 아직은 그런 글을 쓸 깜냥이 되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이렇게 어쭙잖은 글을 씁니다.


인용문은 이태준의 <문장 강화>에서 따왔습니다. 3000원 주고 산 이 책은 문고본인데요, 지금도 잘 샀다는 뿌듯함을 느낍니다. 중고등학생에게 매우 유용할 듯합니다. 글쓰기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모든 것이 담겨 있거든요. 특히 우리나라 작가들의 글을 짤막하게나마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단 점에서 최고입니다. 저는 좋은 글을 소개해주는 사람이야말로 참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태준은 좋은 스승입니다.








제가 글쓰기 전문가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데 대한 답답함을 느낍니다. 다행인 점은, 글을 쓸 때마다 불안함을 느끼는 당신의 마음을 공감하며 헤아릴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그 불안함은 저도 느끼는 것이거든요. 대학 시절, 비평가이자 국문과 교수였던 한  선생님은 라면 박스 한가득 글을 쓰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쉽게 쓰는 방법 같은 게 있을 리 없죠. 그저 묵묵히 쓰다 보면 요령이 생기기라 기대해보는 수밖에요. 이 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목마름에 뒤척이는 여러분과 저 스스로를 멀찍이서 응원해봅니다. 다음번에 한번 더 작가들이 말하는 글쓰기에 대해 이어 써보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문장 강화>는 문고판 출판사로 유명한 범우사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르비아문고 시리즈를 넘어, 지금은 디자인이 많이 좋아졌네요!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페터 한트케의 <왼손잡이 여인> 범우사 문고판으로만 나옵니다.  다음에는 출판사 얘기도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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