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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안후라이안 Jun 07. 2020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 3

글을 쓰다 자괴감에 빠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글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는 것도 괴롭지만 이보다 더 괴로운 일도 있습니다. 바로, 글을 쓰자고 마음을  먹는 일이에요. 예전에 써뒀던 글은 어쩜 그렇게 엉성하고 형편없을까요? 썼던 글을 고쳐보기라도 하려 했지만 다시 쓰는 편이 더 나을 것만 같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왜 또 그렇게 많은 걸까요? 심지어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 클립 영상 밑에 달린 댓글에서 뛰어난 필력을 발견한 적도 있다니까요(휴!).


글쓰기가 SNS 채널의 일로 넘어오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문단'과 '프로'의 권위적인 기름기는 쏙 빠지고, 익숙하게 공감할 수 있는 담백한 글이 많아져서 좋아요. 독자 입장에서는 나쁠 게 하나 없지만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몇 명이 읽는지,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눈치 보는 글쓰기라니. 어휴, 그런 건 정말 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는 제목 장사하는 사람이야'라든지, '제목 좀 섹시하게 뽑아'라든지. 이런 충고와 조언을 들으며 잡지 에디터 일을 했었기에, SNS에서만큼은 제목도 대충 짓고 좋아하지만 비주류인 소재에 대해 편하게 쓰고 싶습니다(한편으로는 기교라는 포장을 벗겨낸 글을 실험하는 중입니다). 혹평을 듣는 건 무섭지 않아요. 한데 조회수가 적은 데에는 신경이 쓰여요. 소설가 제임스 설터는 사람들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까닭으로 인정 욕구를 꼽았습니다. 그 문장을 읽으며 설터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랑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달라요'라며 속으로 대꾸했었죠. 곰곰 생각해보니 그게 그거인가 싶었으면서도요.


자, 그러니 작가들의 나르시시즘을 조금 끌어다 쓰기로 합니다.




신들은 내게 거의 모든 것을 주었다. 천재적인 재능과 저명한 이름, 높은 사회적 지위와 빛나는 재기, 지적인 대담함.... ...나의 말과 행동 중 어느 하나도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나는 나 자신 말고는 그 누구도 열렬히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뻔뻔한 나르시시즘으로 우리를 경악하게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오스카 와일드가 천재인 것을. 글을 쓰다 자괴감에 빠졌을 때, 저는 <와일드가 말하는 오스카>라는 책을 펼칩니다. 그가 했던 말들을 단편적으로 모아놓은 거라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내키는 만큼 읽습니다. 와일드의 나르시시즘은 조금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유쾌한 면이 있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곤 하거든요. 와일드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올곧은 줏대 말예요. 이게 있으면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아도 되니까요.




글쓰기란 죽이게 재미있는 게임이죠. 거절당하면 더 잘 쓰게 되니까 도움이 되고, 수락받으면 계속 쓰게 되니까 도움이 됩니다.
나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역겹습니다. 그들의 단어는 종이에 닿지도 못해요. 작가와 그들의 단어는 몇억 개나 되는데, 단어가 종이에도 닿지 못한다고요. 하지만 셀린을 읽으니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작가인지를 깨닫고 부끄러워졌습니다. 그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괴팍하기 그지없는 소설가 찰스 부코스키는 타인을 비난하면서도 자신을 반성하는 중립(?)을 자주 보여줍니다. 글을 쓰는 행위로 인해 매번 흔들렸다는 데 공감하고, 좋은 글을 읽으며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이 저와 다를 바 없다는 데 안도합니다. 위의 인용문은 부코스키의 편지글을 모은 <글쓰기에 대하여>에서 가져왔습니다. 기고하고 거절당하고, 기고했는데 몇 편만 수락되는 작가의 끔찍한 일과에 대한 감정이 낱낱이 드러나 있습니다. 자괴감에 고꾸라졌다가 다시 날아오르기를 반복하지요. 글을 기고하는 과정은 어쩐지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하는 행위와 비슷하게 어겨집니다. 거절당하면 차인 기분이랄까. 이 위대한 작가도 자괴감을 타자기 아래 받치고서 글을 썼으니, 저도 어쨌든 써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노트북을 열기 힘들 만큼 자괴감이 클 때면 공책을 펴 들고 연필을 깎습니다. 이것 말고는 다른 하고 싶은 일도 없으니까요. 응원할게요. 자괴감에 무너지지 말고 같이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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