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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안후라이안 Jun 27. 2020

화려한 필명이 나를 감싸네

작가들은 왜 필명을 쓸까요(feat. 비, <깡>)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래저래 필명을 지어보며 달콤한 꿈에 빠져들었던 적이 있을 겁니다. 무언가 그럴싸했으면 좋겠는데, 하면서 말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필명을 몇 꼽아볼게요. 본명 '이열' 두 글자 사이에 '문(文)'을 넣어 작가가 되었던 이문열(李文烈), 우리말을 사랑해서 울림소리(성대가 진동하며 나오는 소리로, 자음 중에는 'ㅁ, ㄴ, ㅇ, ㄹ'이 있어요)를 사용해 필명을 지은 김영랑(본명 김윤식), 공사장 인부들이 건축가였던 그를 부르던 '리상[李(り)さん, '이 씨'를 칭하는 일본어]을 썼다고도 하고, 학교 때 별명을 썼다고도 하는 이상(李箱, 본명 김해경), 소설가 김숨(본명 김수진)과 김사과(본명 방실).... 고작 두 자 혹은 세 자로 된 필명만 들어도 이미 그들을, 그들의 많은 이야기를 헤아릴 수 있을 듯합니다. 이게 바로 필명이 가진 힘이 아닐까 해요.


부모님이 지어주신 진짜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이들도 많지요. 스스로를 브랜딩할 수 있다는 점과, 낯간지러운(같은 말로 허세 넘치는, 혹은 오글거리는) 필명으로 불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으니까요.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밥벌이하기 어려운 편이라, 대부분의 작가들은 직업을 두 개 이상 가집니다. 이런 경우 은근한 혼란을 가져오기도 합니다(일례로, 국문과 복수전공생이었던 저는 첫 수업에 들어가서야 교수님이 다른 필명을 지닌 소설가라는 걸 알았던 적도 있거든요. 무심한 '아싸'의 수난이자 잘못이기도 하지만요). 한편으로는 이런 혼란이 다행스럽기에 필명을 쓰기도 합니다. 진짜 삶과 작가로서의 삶을 다소간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덕분입니다. 외설적인 표현이 섞인 장면 묘사라든지 가족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는다든지 법이나 도덕의 영역을 벗어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을 경우, 소설과 진짜 삶에 대한 비난과 혼동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두 개의 이름으로 작가 생활을 했던 소설가들도 있습니다.


1919년 <데미안>의 초판이 나왔을 때, 작가는 익명이었습니다. 부제가 '에밀 싱클레어의 청년시절 이야기'였으므로, 사람들은 작가를 '에밀 싱클레어(Emil Sinclairs)'일 것으로 생각했다 합니다. 9판부터는 작가가 자신의 본명을 밝혔습니다. 맞습니다, 그 작가는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였죠. 세계대전을 일으킨 조국 정부를 자주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으로는 글을 발표하기 어려워지자 또 다른 이름을 내세워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유명세를 덮고 오직 글만으로 평가받고 싶어 필명을 사용했다고도 하고요. 비평가들이 문체를 분석해 그의 글임을 알아채기 전까지는 말예요. 무명으로 발표했던 <데미안> 이후, 헤르만 헤세는 보다 새로운 관점에서 작품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흔 살 즈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헤세의 수채화 <정원사 헤세(좌)>와 <데미안>의 초판 표지(우)



로맹 가리(Romain Gary)는 이름이 세 개나 됩니다. 본명은 로맹 카체프(Roman Kacew)입니다. 이름만 봐도 러시아 출생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지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미국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했던 그는, 말년에 이르자 평단으로부터 고루하다거나 판에 박혔다는 악평을 받는 그저 그런 작가로 전락하고 맙니다. 60세가 된 그는 에밀 아자르(Emile Ajar)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게 됩니다. 에밀 아자르의 가장 유명한 소설은 뭐니 뭐니 해도 <자기 앞의 생>이죠. 독자와 비평가의 편견을 깨부수기 위해 새로운 이름을 택했던 그의 모험심을 존경합니다.


에밀 아자르의 필명으로 발표된 <자기 앞의 생> 표지(좌), 로맹 가리와 그의 연인이었던 진 세버그(우)



작가의 이름을 그릇이라 한다면, 그 작가의 성격과 이미지와 글은 그 그릇에 담기는 본질일 테지요. 하지만 그 그릇에 담는 본질은 저마다 다를 뿐더러 왜곡된 편견과 고정관념이 태반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진짜 삶을 사는 자신과 글 쓰는 작가를 구분하기 위해 필명을 쓰기도 합니다.


어떤 글을 접할 때, 그 글을 쓴 작가의 역사를 파헤치는 일은 과연 정당할까요? 시인 서정주는 친일 반민족 행위를 자주 일삼았으니 그의 모든 작품을 깡그리 없애는 건 어떨까요? 혹은 코소보 내전 당시 이슬람교를 믿는 알바니아계 학살을 주도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전 유고연방 대통령)를 옹호했던 페터 한트케는 과연 2019년 노벨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던 걸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가벼운 소견으로는, 작품은 작품대로 거둬들이고, 작가의 가치관과 삶의 역사를 취할 때에는 조심성을 갖는 게 어떨까 합니다. 최근 미국 스트리밍 업체 HBO맥스가 흑인 차별에 대한 내용 비판을 이유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잠시 퇴출했었습니다. 현재는, 이를 둘러싼 각종 논란을 소개하는 영상을 부록으로 함께 제공키로 했다고 하죠.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기에는 이러한 비판들을 함께 수용할 필요성이 있어 보입니다.


예술 작품을 해석할 때 표현론적 관점(문학 작품을 작가의 경험, 감정, 의식, 가치관, 사고방식의 표현으로 간주하여 해석하는 관점)을 버릴 수 없다면, 작가들 역시 필명과 예명을 결코 버리지 못할 겁니다. 때로는 작품을 그저 작품으로만 보아주길 바라는 이들도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작품의 표현 방식만을 따지는 내재적 관점으로만 작품을 바라보는 것 역시 곤란합니다. 결국 적절한 균형이 필요해 보인다는 뻔한 말을 늘어놓아 봅니다.



제가 브런치에서 쓰는 '아이안후라이안'은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이자, 얀 마텔의 소설인 <파이 이야기>에서 따온 겁니다.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인생도 함께 개척해나가는 주인공 파이의 이야기입니다. 피자를 주문하며, 매번 놀림받는 자신의 이름 대신 'I am who I am('나는 나'라는 뜻이자,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말한 것을 배달원이 잘못 알아들었지 뭐예요. 배달원은 피자 박스에 '아이안후라이안(Ianhoolian)'이라고 적었다고 합니다(불쌍한 피신, 아니 파이). 저도 이 이름에 조금씩 무언갈 담아갈 계획입니다. 하지만 많은 설명은 하지 않으려고요. 여기에 관해서는 '아이안후라이안'이라는 필명이 열일 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표지 사진과 제목은 비의 <깡>을 패러디한 것입니다(가사 중에는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라는 부분이 유명합니다). 이 곡이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속 빈 강정인지, 시대 흐름을 잠깐 이탈한 트렌드인지는 3년이라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러니가 세상을 경쾌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비가 예명으로 활동했더라면 또 다른 음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재미있는 상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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