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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안후라이안 Jul 18. 2020

내가 언론고시를 포기한 이유

페미니즘 말고 피메일리즘 1

대학생 때 이야기입니다.

작가인 교수님은 글감 고르는 법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밝히셨었죠.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은 '여성'과 '어머니'에 대해 쓰란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쓴 좋은 작품이 있던가요? 남성이나 아버지에 대해 쓸 게 대체 뭐가 있죠? 그러니 여성에 대해, 어머니에 대해 쓰세요. 특히 작가가 되려는 여학생들은 더더욱."

그 교수님은 꽤 오랜 기간 우리나라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겸임하셨습니다. 이 의견이 그분 혼자만의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어려웠어요. 오히려 문단의 목소리에 가까울 거라 추측하기가 쉬웠죠. 그분의 논리는 이런 거였습니다. 소수와 약자에 대해 쓰라는 것. 여성은 이 사회에서 가장 유명한 소수이자 약자라는 것.



최근에 여성에 대해 한번 써보려고 여러 번 노력했습니다. 한데 두려웠습니다. 그 어떤 논란에도 중립을 유지하는 편이 삶을 살아가는 데 더 유리해서였을까요? 아마 그런 이유도 조금은 있었을 거예요. 그러다 어제, 영화 <밤쉘(Bombshell: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을 보며 제 공포심의 실체를 제대로 보고야 말았습니다. 케일라 역을 맡은 마고 로비. 폭스 채널에서 더 높은 역할과 지위를 따내기 위해 로저 역을 맡은 존 리스고 앞에서 치마를 걷어올립니다. 그 장면에서 20대, 어린 날의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대표 언론사 중 한 곳에 면접시험을 치르러 간 적이 있습니다. 검은색 재킷과 무릎까지 오는 치마 정장을 입었고, 머리는 묶었고, 화장은 집에서 평소처럼 하고 갔습니다. 제 차례가 되고, 면접실 문을 밀치자 둥글게 앉은 남성 면접관들이 보였습니다. 인사를 하자 시선이 제 얼굴에 닿았다가, 그대로 다리로 떨어집니다. 그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갑자기 황망해집니다. 침착하게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앉아 질문에 답변할 준비를 합니다.

"주량은 얼마나 돼요?"

"외모만 보면 엄청 약해 보이는데, 이 일 할 수 있겠어요?"

눈물이 핑 돕니다. 저널리즘이나 시사상식에 대해 물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당혹스러운 질문에는 답변을 준비하지 못한 탓에, 면접은 쉽게 망쳐버렸습니다(어쩌면 간절하지 못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면접이 끝나고 돌아 나오는 길에도 그들의 시선이 제 뒷모습, 그러니까 다리에 한동안 꽂혀 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그때 제 아버지 또래이거나 그보다 조금 어릴 듯했어요.


이미 면접을 치르기 전날 밤, 그 회사의 뉴스를 찬찬히 읽으며 대비하다 그 매체에 크게 실망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그 매체가 다룬 뉴스는, 당시 최악의 이슈로 떠올랐던 한 기업 광고를 대대적으로 뉴스거리처럼 홍보하는 게 전부였거든요. 언론사에 들어가면 정의냐, 밥이냐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면접 전날인 그날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제 미래는 너무도 불투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안 신던 구두 안에서 물집 잡힌 발가락의 쓰라린 고통에 절뚝이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공부한 건 아닌데.... 이게 나라냐!'


어째서 치마를 입고 갔냐는 원망은 이미 제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물었으니, 더 이상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바지를 입으면 더 좋았겠지만, 우리 세대는 면접용 정장이라면 검은색 재킷과 스커트를 원칙처럼 신봉했으니까요. 게다가 공부하며 닥치는 대로 일해서 번 돈으로 마련한, 괜찮은 한벌 정장은 그것 말고는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면접관들의 그 눈빛을 '시선 강간'이라고 칭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성희롱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약한 게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행여 이 글을 읽는 남성들이 '본능'을 들먹이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제가 아는 거의 모든 남성은 대외적으로 중요한 상황에서라면 그 본능을 자제할 줄 알며, 상대가 불쾌함을 드러냈을 때 그 본능을 그칠 줄도 알기 때문입니다. 그 회사 말고는 그런 끔찍한 시선을 느끼며 면접을 본 곳도 없었습니다.


이후로도 몇 번인가 언론사 시험을 치르긴 했지만, 그 면접을 계기로, 저는 언론사에 들어가려는 마음을 서서히 접었습니다.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그 직업을 갖고 꽤 많은 연봉을 받으며 어느 정도는 권력에 굽히고 스며들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듭니다만(과연?!). 각자의 인생이 더욱 가치 있으려면, 덧없는 가정을 보태 과거를 원망하거나 채근하지 않아야 함을 잘 알고 있는 게 어쩌면 다행이랄까요.


여성이 여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 일어서야 하며, 그러면서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몫도 고려해야 하죠. 오래 묵혀두었던 여성에 대한 고민과 제 이야기를 꽤 길게 풀어볼까 합니다.





글이 너무 길어서 두 편으로 나누고 수정해 발행했습니다.


이 다음 이야기는 "여성을 버리려는 남성"에 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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