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안후라이안 Sep 30. 2020

누군가 나를 읽는다

브런치 새내기 같은 5년 차의 속 얘기

하퍼 리는 이스트 사이트 아파트에서 <앵무새 죽이기> 원고를 고쳐 쓰고 또 고쳐 썼다. 때론 희열을 느낀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실망과 좌절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어느 겨울밤, 초라한 요크 애비뉴 아파트의 책상에 앉아 타이프로 친 원고 한 페이지를 읽고 또 읽었다. 갑자기 그는 지금까지 써왔던 원고를 주섬주섬 모아 창가로 들고 가 창밖의 눈 속에 집어던져 버렸다. 그러고 나서 테이 호호프에게 전화를 걸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행동을 설명했다. 호호프는 그에게 어서 빨리 밖으로 나가 원고를 주워 모으라고 하였고, 호호프의 말을 듣고 하퍼 리는 대충 옷을 걸치고 어둠 속으로 내려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원고를 주워 모았다.

평소 그는 '작가가 되는 것 말고는 어떤 일에서도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때로는 이렇게 깊은 절망감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위의 인용문은 <하퍼 리의 삶과 문학>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하퍼 리의 타고난 글재주를 알아본 친구들이 돈을 모아 생활비를 보태면서, 항공사에서 근무하던 그는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전념하게 됩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주의가 깊다면, 혹은 저처럼 별 볼 일 없는 일에도 추리를 일삼는 취미가 있는 분이라면 눈치채셨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2016년에 브런치 첫 글을 발행했습니다.


제 글을 보는 이는 적었습니다.

저는 그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완성하지 못한 글을 세상에 내놓기가 두려웠거든요. 혼자서 조용히 끼적이며 썩 그럴싸한 글이 모이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어차피 네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사람들이 읽는다는데 그게 왜 불편해?"

친한 친구는 답답한 마음에 이런 얘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저의 소중한 1호 구독자는 제가 불편해할까 봐 한동안 제 글을 읽지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은 제게도 알다가도 모를 것이었습니다.


브런치에 글 쓰는 일이 재미없었습니다.

글도 말과 같이 소통해야 완성되니까요. 언젠가는 누군가가 읽어주길 바라는 글을 쓰는 것 같은, 시간차 공격이나 생각하고 있었으니 어디 가당키나 한가요. 발행했던 글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했습니다. 아, 물론 아직도 번데기 수준이니, '고이 접어서 번데길레라'였으려나요.


4년 만에 다시 브런치 앱을 연 건 순전히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실용서를 조금 써보려 한다는 얘기를 부모님께 한 적이 있는데, 빈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 제 발목을 잡더라고요. 노트북에 숨겨놓고 몰래 쓰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브런치에는 실용서를 발행하고 있습니다(이게 정말 실용서인가, 믿기 어려우실 수도 있겠지만요).


하퍼 리의 친구들이 그러했듯, 제게도 제 글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제 글이 몇 개 없어서 아껴 읽으신다는 분들이 드물게 있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어제 펜레터를 보내주셨습니다(답장드릴게요, 소근). 마음이 먹먹해서 잠을 잘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토록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 제 부족한 글에 칭찬을 마다 하지 않으시니 의아하기만 합니다. 과분하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네요.



저는 말이 고여서 흘러 넘칠 때가 되어서야 글을 씁니다.

흘러넘치는 때도 그리 많지 않은데, 드물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홍수처럼 쏟아질 때 역시 글 쓰기를 멈춥니다. 그러다 보니 자주 멈추고 또 자주 쉬었습니다. 서랍에는 쓰다 만 글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제 글을 읽으며 브런치에서 조금 더 서성여보기로 마음을 다잡으셨다는, 한 작가님의 말씀을 듣고 난 이후였습니다. 아주 오래도록 묵혔던 글인 셈이죠. 그럼에도 이 글을 발행해도 될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며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분들에게서 글을 확장하거나 응축하는 방식을 열심히 배우는 중입니다. 좋은 글을 자주 접했으니, 저도 분명 조금이나마 더 자랐으리라 믿고 싶어요. 저도 작가님들께 응원의 힘을 갚아드려야 하는데 아직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정한 글벗님들께는 그저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전합니다.


누군가 저를 읽어주심에 마음이 일렁입니다.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더듬어 헤아린다는 것.

계속 쓰고 읽어나가겠습니다.

지금처럼 함께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여성과 남성의 최초의 악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