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계양산>은 여자라면 누구나 100% 공감할, 특히 여성 직장인이라면 '누가 내 얘기를 써놨어?' 싶을만한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 현남(이유하 배우)은 최근 이혼을 했다. 다시 좋은 남자 못 만나면 어떡하냐는 동성친구의 오지랖은 잠깐. 이혼과 동시에 현남 주위에는 온갖 '날파리'들이 들끓는다. 주인공을 걱정하는 척 은근히 스킨십을 해오고. 외롭지 않냐며 자기는 어떤지 어필한다. 직장에서, 직장의 권력관계에서, 공적인 공간에서 끊임없이 현남은 사람이 아니라, 여성으로 대상화된다.
켜켜이 쌓아올리던 현남의 짜증은 직장의 높으신 분을 모시고 간 '주말산행' 에서 폭발한다. 위원장이라는 그 남자는 끊임없이 현남에게 추파를 던지고, 걱정하는 척 불편한 접촉을 해온다. 전 남편의 지인들은 기분나쁘게 웃으며 '여전히 예쁘시네요' 라고 말을걸고, 지나가던 중년의 남성은 대뜸 현남에게 소주를 권한다. 위원장이 급기야 현남을 '토끼' 라고 부르면서 희롱하자 현남은 화를 참지 못한다. 그러나 더욱 기가막힌것은, 여태껏 그래도 의지되는 존재라고 여겼던 남성동료가 술한잔을 더 하자며 쫓아오는 현실이다. 지긋지긋한 놈들.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풍경들.
사회초년생때 나도 너무 많이 겪었다. 괜히 술자리에 부르고. 노래방에 가서 은근슬쩍 스킨십을 해오고. 여직원들을 품평하고. 자신이 만났던 노래방도우미를 얘기하고. 룸살롱 간 얘기를 하고. 정말 정말 짜증났다. 아니 나는 여기에 일을 하러 온건데. 너한테는 1도 이성의 감정이 없는데. 왜 당신들은 내게 왜 사적인 발언과 감정을 내비치지? 직장에 있는 남성들은 하나같이 자기와 같은 공간에 일하러 온 여자사람 동료를 동료로만 대하지 않았다. 내눈엔 동네 아저씨 1도 아닌 뭣도 아닌 치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어필할때면 진짜 '꼴값하네 뭐 어쩌라고' 싶었다. 그러나 더 웃긴건(사실은 전혀 웃기지않다) 나와 같은 경험을 대부분의 여성들은 갖고 있었다는것이다. 어 너두? 야 나두.
참참못 어느 순간 나도 현남처럼 폭발한적이 있다. 노래방에서 어깨동무를 해 오려는 중년남성에게 '아 뭐에요' 하고 소리를 지르고. 나와 친한 여성동료를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늙다리 유부남 상사에게 '이건 아닌거 같아요. 저 장난 아니구요. 이거 차장님 문제있는거에요' 하고 정색했다. 그러고나니 달라졌다. 더 이상 술자리에 부르지도, 여성동료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놈들이 정신차린건 아니었다. 그놈들은 그 더러운 수작질이 '통하는' 다른 여성 동료들을 공략했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기 보다는, 나에 대해 평가하는쪽을 택했다. 아... 진짜 징글징글하다 정말. 왜 저래 진짜. 도대체 왜 살아?
현남은 우연히 계양산 등반에 홀로 온 여성과 친해진다.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추행의 풍경에서 벗어난 순간, 다시 그 여성을 만난다. "혹시 괜찮으시면" 하고 말을 건네오는 여성을 보는 현남의 얼굴에 다시금 미소가 번진다. 관객인 나도 그제서야 내내 조마조마했던 긴장을 풀고 비로소 웃음이 났다. 아 드디어! 드디어!!! 현남을 여자가 아닌, 그냥 인간으로 보는 한 사람이 영화에서 나타난것이다. 아무런 희롱의 걱정없이, 추행이나 끈적한 시선없이!!!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내 앞에 서있는 인간으로.
영화를 보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났고, 구구절절 공감이 됐다. 여자들은 다 아는이야기. 지긋지긋하지만 여전히 계속 반복되고 있는 이야기. 언제쯤 직장에서, 공적인 공간에서, 여자사람을 여자가 아니라 사람으로만 보는 세상이 올까. 2020년이면 '공중을 나는 자동차' 정도는 나올줄 알았는데. 여전히 우리는 구 시대에 살고있다. 적폐에 저항하며,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