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타임 나의 영웅, 메리대구공방전의 황메리에게
메리야 잘 지내니?
내가 취업준비생으로 한참 힘들었던 때, 나는 너를 만났지. 너는 나처럼 20대였고, 꿈을 찾기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제기랄 되는일이 하나도 없었어. 옷장에 옷은 3-4벌이 전부. "누가 너 어디까지 견디나보자 참기름통에 넣고 비틀어 짜는거 같아요" 라는 대사에 너도 울고 나도 울었지.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왜 자꾸 꼬이는거야. 왜 맨날 이렇게 삑사리만 나는지 모르겠어. 되는일은 하나도 없고. 누가 너 어디까지 견디나보자 참기름통에 넣고 비틀어 짜는것 같아요"
- 드라마 <메리대구공방전> 중
그때는 정말 그렇게 힘들었었다. 우리가 뭘 잘 못했니. 나는 시부럴 토익이 985점이나 됐지만 그 흔한 서류통과조차 힘들었었어. 남들보다 책도 많이읽고,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뭐가 문제인걸까?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했던 적이 많았지. 진짜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어. 이거 트루먼쇼 아니야? 어떻게 나한테 이래?
그리고 나는 너를 잊었지.
왜냐면 취업을 했고 사회생활의 단꿈을 만끽했거든. 나에게는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 있었고, 상사에게는 '너는 내가 봐왔던 마케터중에 상위 10%안에 든다' 라는 황송한 칭찬도 받았지. 아니나 다를까 나는 정말 즐거웠어. 그리고 그때는 그랬어. 이제 너와는 영원히 안녕이라고 믿었었지. 메리야, 넌 아직도 그 자리에있니? 미안하지만 나는 달라, 나는 이제 백수가 아니야.
그렇지만 나는 너를 또 만나러 왔어.
예상치못한 백수가 되어. 인생은 늘 그런가봐. 예기치않은 일들의 연속.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듯이. 그리고 너는 여전히 작품속에서 눈물짓고 열심히 노력하고 되는일은 하나도 없지. 너를 만든 김인영 작가는 얼마나 현실적인지 결말에서도 너를 성공시키지 않았지. 강대구리를 만나 사랑은 하지만. '가난하다고 왜 사랑을 모르겠는가'의 현실적 해피엔딩이라고나 할까. 그래, 사실 그게 현실이지. 너는 열심히 하고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재능은 없으니까. 그렇지만 꼭 재능있는 사람만 하고싶은 일을 해야하는건 아니잖아? 너는 그래서 우리 모두의 친구이자 영웅이었지.
나도 매일 주저앉고싶은 내 자신과 싸우며 살아. 내 편은 하나도 없는거 알아. 내가 잘될거라고 믿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 드라마 <메리대구공방전> 중
나는 그때처럼 백수가 됐지만, 그래도 이제는 벌어놓은 돈이 있는 백수가 됐어. 그때는 엄마지갑에서 몰래 만원씩 훔쳐서 삼겹살 구워먹는 그런 추잡스런 백수였지만, 이제는 백수가 되어서도 소고기를 구워먹고있지. 그리고 나는 너를 보며 이제는 깔깔대며 웃을 수 있어. 예전에는 울기만 했지만 말이야. 그리고 이제 나는 너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어. 너는 그대로지만 나는 이만큼 나이를 먹었으니 말이야.
메리야, 다시 보니 너무 좋다
나는 또 어떻게 이 여름을 지내게 될까. 그리고 내 백수인생은 또 어떤 결말을 맞게될까.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동진의 말마따나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살아볼 요량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설마 입에 풀칠이야 하겠니? 너는 그 힘든 시기에도 호박빵 트럭의 목소리녹음 알바를 하고, 밤무대가수 코러스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지. 그리고 나는 이제 알겠어. 버티는거야 말로 노력이라는 사실을.
메리야, 여름이 되니 니가 너무 보고싶다. 20대땐 곧 나였고, 30대엔 나였던 사람. 메리야 그거아니? 너는 언제나 나의 영웅이야. 나의 가장 취약했던 시절의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 그래서 나는 네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