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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메리 Oct 08. 2020

최빛을 생각하지 않는 법

<비밀의 숲> 과몰입 오타쿠가 쓰는 글



요즘들어 내가 느끼는 감정은 하나다.
나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오타쿠구나.


오타쿠가 지니는 어감이 별로라서 그렇지 사실 오타쿠라는 게, 별거 아니다. 과몰입. 그걸 하면 오타쿠고, 아니면 오타쿠가 아니다. 일반인이라면 드라마와 현실. 이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과몰입이 일상이자 특기인 오타쿠라면? 드라마든 뮤지컬이든 영화든.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생기는 순간 그(그녀)는 더 이상 작품속에만 갇히지 않는다. 이미 나의 현실에 존재한다. 그래서 일을 하다가도, 대화를 하다가도, 순간순간 그 감정에 휩싸여 어쩔줄을 모른다. 지나가는 경찰차를 보고 눈물이 차오르는 미친 사람이 있다면 믿어지겠는가?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비밀의 숲>에 과몰입했던 내가, 바로 그러하다.






이번 시즌에서 가장 사랑한 캐릭터는 최빛(전혜진 배우)이었다. 그녀는 주인공 한여진(배두나 배우)을 아끼고 이끌어준다. 한여진의 능력을 가장 신뢰하는 캐릭터이며, 재능있는 한여진을 더 높은 자리로 이끌어주고자 하는 인물이다. 최빛은 뭐랄까. 나의 모든 인생 선배들을 떠올리게 했다. 내 능력을 인정해주고 격려해줬던 모든 사람들. 나를 특별히 아끼고 애정을 보여줬던 사람들. 그래서 나는 최빛을 보는게 좋았다. 나에게도 저런 사람이 있었지. 믿어주는 만큼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사람. 최빛을 보면 그랬다. 그 때 그 선생님이 떠올랐고, 그 직장상사가 떠올랐다.


그런데 최빛이 망했다. 사실 수많은 복선과 흐름상 최빛이 망할거라는건 자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애정을 준 마음은 멈출줄을 몰랐다. 그래서 최빛을 끝까지 사랑했고, 최빛이 경찰청을 떠나는 순간 내 마음도 무너졌다. 어떻게... 최빛을 망하게 해? 작가에 대한 분노가 터져나왔고, 그렇게 최빛을 떠나보낸 한여진에게도 원망의 마음이 일었다. 아니 여진아, 이건 아니지. 한여진! 정말 이대로 끝내는거야?







이번 주 내내 <비밀의 숲> ost를 듣고, 고릿적 조성모의 이별 노래까지 찾아들으면서 혼자 이별아닌 이별의 시간을 보냈다. 회사에선 일을 하고, 집에서는 빨래를 했지만 문득문득 최빛 부장님이 생각나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점심에 매운 순두부를 먹을때면 매운걸 못 먹는 단장님이 생각났고, 기어코 단장님이 차던것과 비슷한 손목시계를 사서 왼쪽 팔에 두르기도 했다.


3개월 내내 보아온 모습은 당당하고 자신감넘치는 인생 선배였는데, 하필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 눈물을 참으며 어깨를 늘어뜨린 모습이라서 마음이 아팠다. 아 망할 이수연... 하릴없이 작가의 이름을 되뇌이며 최빛을 만나게 한 작가와, 이렇게 헤어지게 한 작가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파리의 연인> 이후로 이렇게 드라마 작가를 욕한적이 있었던가. 분명 그들은 오래 살 것이다.




<비밀의 숲2> 마지막회를 보던 나으 모습




한번도 드라마나 영화에 빠진적 없어요, 난.


탐정이 되고싶다고, 최근에 무슨 영화를 봤는데 그 주인공처럼 되고싶었다고, 흥분해서 떠들어대던 내게 예전 회사의 본부장님은 그렇게 말했다. "신기하다. 한번도 드라마나 영화에 빠진적 없어요, 난." 아니... 그게 가능한거였어?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몰입하지 않는게? 내가 유독 유별나다는것 쯤은 알고있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한번도 과몰입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게, 그게 가능하다는게, 나를 엄청난 충격에 빠뜨렸다. 아... 가능한거였구나... 그게... 아... 그런 그런거구나. 모두들 나처럼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울고 짜고 화내고 평생 가슴 한쪽에 품으며 살아가지는 않는거구나.



<네 멋대로 해라>의 전경과 고복수, <파리의연인>의 한기주와 강태영, <메리대구공방전>의 황메리, <연애시대>의 유은호와 이동진. 내가 과몰입했고 아직도 벗어나지 못해 평생을 내 기억속에서 살아 숨쉬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제 최빛을 그렇게 마음에 담을 것 같다.


적당히 때가묻어 정의쯤은 허울좋은 이상이라고 비웃었던 사람. 그렇지만 누구보다 정의로운 자신의 후배를 아꼈던 사람. 그리고 결국,  아끼는 후배의 꺾이지 않는 정의에 의해 심판당한 사람.... 그런 최빛을 잊지 못할 것같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오타쿠라서. 현실과 드라마를 구분하지 못해서. 지나가는 경찰차만 봐도 마음이 아파서.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 결국 나는... 최빛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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