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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메리 Jan 16. 2021

우리, 헤어지는 연습을 해 봅시다 - <화양연화>



노골적으로 반복되는 음악이 있다. 화양연화 ost인 yumeji's theme 다. 쿵쿵쿵 하는 도입부는 영화 내내 시도때도 없이 흘러나온다. 좁은 골목을 지나며 국수를 사러갈 때. 부부들끼리 마작을 하는 뒷모습을 보여줄 때. 장만옥이 치파오를 입고 계단을 내려올 때.





처음에는 조금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아 진짜 왕가위... 누가 간죽간살 아니랄까봐 또 분위기로 압도하네. 그러다가 점점 그 반복에 매번 감정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렜다가, 조마조마했다가, 슬펐다가, 가슴이 미어졌다가.


영화는 서로의 배우자에게 배신당한 남녀의 이야기다. 장만옥과 양조위라니. 이 둘을 배신하는 배우자가 있다니. 그들의 비주얼과 매력에 압도당한 관객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그것이 왕가위가 만들어낸 <화양연화>의 세계다. '우린 저들과 다르죠' 라며 마음을 애써 감추고 '같이 떠날래요' 제안을 힘겹게 떨쳐내고. 서로가 서로에게 평생 애달프게 간직하는 비밀이 된다.





대부분의 일이 그래요. 나도 모르게 시작되죠.


영화를 보고나서 이 대사가 잊혀지지 않았다. 사무실을 가득 채우는 양조위의 담배연기. "이별 연습을 해봅시다" 라며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던 장면. 키스 한번 없는 사랑이야기. 그렇지만 이제는 이런 사랑도 있음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시작되는 일, 평생을 걸쳐 울게되는 일.




"우리 헤어지는 연습을 해 봅시다."

"연습인데 이렇게 울면 어떻게 해요."


망할놈의 왕가위... 이제 나는 yumeji's theme의 도입부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무너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저 아닌척, 어른인 척, 견딜 수 있는 척. 극장을 나오며 무표정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에는 어쩔 수 없어서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yumeji's theme 만 속절없이 반복하여 듣는다. 연습일 뿐이었는데. 영화일 뿐이었는데. 


세상에는 '연습일 뿐이잖아' 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고작 '연습'에도 마음이 미어지고 고작 '영화'에도 가슴이 찢기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겨울, <화양연화>를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이별을 겪는 기분을 어떤 사람들은 평생 이해하지 못 할거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다. 이 감정을 잊지 못할 것이다. 마음이 아파서 두번 다시는 이 영화를 보지 못할 것 같다. '헤어지는 연습을 해봅시다. 울지말아요, 고작 연습일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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