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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메리 Jun 16. 2021

왜 오늘도 그만두지 않고 출근했는가?



아 미쳤다 아직 수요일이라니...


베개에 머리를 파묻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피곤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다. 이렇게 피곤한데 겨우 수요일이라니? 나는 넋 나간 성동일 짤처럼 터덜터덜 걸어 화장실로 향했다. 수요일이라니. 아니 근데... 정말 수요일이야? 세수를 하며 중얼거렸다. 핸드폰을 보니 수요일이 정확했다. 6월 16일. 그렇게 어쩐지 불길한 수요일이 시작됐다.


요즘의 나는 매일매일 회사를 관두고 싶다.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첫째, 코앞에 있던 회사가 이전했다.  별안간 출퇴근 고통 + 차비 10만 원을 떠안게 되었다. 마이너스 10점. 둘째, 믿고 따르던 팀장님이 이직해버렸다. 아니 살다 살다... 아무리 스타트업이어도 팀장이 그만두는 경우는 처음 봤는데... 마이너스 100점. 그래서 내가 그 일을 대신한다. 나는 팀장이 아닌데... 스트레스는 팀장급이다. 마이너스 1000점, 아니 10000점!






왜 오늘도 관두지 않고 출근했는가


물론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오늘도 출근했고, 열일 했고, 내일도 다시 또 출근하겠지. 나는 왜 이 회사를 다니는가. 왜 오늘도 그만두지 않고 출근했는가... 를 누가 묻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첫째, 이 회사는 성장하고 있고 성공할 것 같다. 


이미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지만 다니면서 더 그런 느낌이 든다. 처음부터 그게 합류한 이유이기도 했고. 물론 아직은  j-커브를 그릴 정도는 아니긴 한데... 맨파워도 좋고, 비즈니스 방향성도 명확하다. 그리고 투자자가 짱짱하다.


첫 번째 스타트업에서 실패하고 그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구직자로서 스타트업을 평가하는데 한계가 있다면, 투자자들의 선택을 믿어보는 건 어떨까? 벤처캐피털(VC)이라면 누구보다 그 스타트업을 뜯어보고 분석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짱짱한 포트폴리오를 지닌 투자사가 선택한 스타트업에 가자. 그게 지금 회사였고 지금까지는 그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둘째, 다양한 업무를 익히고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다. 


솔직히... 진짜 스타트업은 다녀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일반 회사는 사람이 나가면 얼른 그 자리를 채워준다. 채용공고가 올라오고 언제까지 뽑겠다는 의지가 있다. 그렇지만 스타트업은... 절대 누가 나간다고 해서 그 자리를 바로바로 채워주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나머지 사람이 돌려가며 막는다. 나만해도 퍼포먼스, CRM, PR의 자리를 돌아가며 채우고 있다. 물론 내가 이전 회사에서 두루두루 마케팅 전 분야를 경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벅차다. 포토샵과 PPT를 (마케터 치고) 기똥차게 다루는 것이 나의 자부심이었는데... 어느새 눈떠보니 GA를 전문가 수준까지 해야 하고 태블로도 손에 쥐어주며 빨리 익히라고 한다. 네? 제가요? 눈을 껌뻑거리면서 '왜 나한테 그래!' 하는 마음이 들지만... 배우는 거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 편이라 결국 꾸역꾸역 또 해내고 만다. 그러다 보면 사실 재밌기도 하다. 안 해봤는데 해보니까 되네? 뭐, 이런 것도 할 만하네?


셋째, 사람들과 너무 친하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대개 선하다. 그런 사람들만 뽑는 건지, 사람들이 착하니까 다들 동화돼서 착한 건지. 여하튼 그렇다. 착한 데다 재미있다. 그래서 일하면서는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같은 팀 동료하고 토론하는 게 재미있고. 타 부서와 협업하는 일이 흥미롭다. 내가 힘들어서 죽겠다고 하면 기프티콘이 날아오고 힘드시죠 하면서 커피 타다 준다. 스트레스받는 일도 친한 사람들과 신나게 수다 떠느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곤 한다.




아 물론 나는 그럼에도 회사를 관두고 싶다


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성인이기 때문에... 회사에 다니기 싫다.


알람 없이 느지막이 눈뜨고 싶다. 헝클어진 머리로 커피를 내리고, 슬렁슬렁 동네 극장에 영화나 보러 가고 싶다. 조카와 동생을 만나 늦은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깔깔대며 조카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다.


저녁에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해 질 녘 동네 천변을 산책하고 싶다. 해가 지는 순간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살아있다는 건 참 좋은 거야'라고 하고 싶다. 집에 와서는 오늘 느낀 소소한 행복을 일기장에 적고 싶다. 그러고 싶다. 나는 정말이지 그러고 싶다.


그러나... 나는 내일도 회사에 갈 것이다. 갈 것이고 갈 것이었으며, 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왜 어제 관두지 않았으며 오늘도 관두지 않았고 내일도 관두지 않을 것인가. 마이너스 1000점과 (겨우 꼴랑) 플러스 3점 사이... 오늘도 ‘일의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애꿎은 창밖을 내다보며 멍하게 있는다. 아아 출근하기 싫다. 나는 왜 직장인인 걸까. 왜 오늘도... 관두지 않고 출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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