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어린 팀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k-직장인 고해성사
어떤 팀장이 오면 좋을 거 같아요?
팀 동료와 점심을 먹다가 그런 얘기를 나누었다. 팀장 없는 팀에서 지낸 지 근 한 달째... 우리의 공통 관심사는 '과연 누가 신임 팀장으로 올 것인가'였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밥 잘 사 주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법인카드 나한테 자주 주는 사람' 사실 그랬다. 별 생각이 없었다. 딱히 '00 하는 사람이 오면 좋겠어요' 하는 바람은 없었다. 그냥 밥 잘 사주면 좋겠다... 정도랄까.
20대가 팀장으로 오면 어떨 거 같아요?
그러나 '00 하는 사람이 안 왔으면 좋겠어요'는 분명했다. 나의 경우에는 그게 '동갑이거나' 혹은 '나보다 어린 사람'이었다. 내가 취업을 남들보다 늦게 한 편이긴 하지만... 어쩐지 동갑이나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팀장님'이라고 부를 자신은 없었다. '미쳤어용? 20대 밑에서는 일 못하지' 나는 물컵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것은, 절대로, 네버 엑쑤, 나의 k-유교마인드가 용납하지 못할 일이었다.
내가 애란 언니보다 어리잖아
혈기왕성한 20대 시절. 내가 동경한 대상은 숱하게 많지만 가장 오래, 그리고 매우 강렬하게 질투심을 느낀 대상은 소설가 김애란이었다. 20대가 어떻게 이런 글을 써? 나랑 별로 나이 차이도 안 나잖아? 김애란의 데뷔작을 읽으면서 나는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다. 그냥 책 좀 많이 읽는다는 이유로 감히 내가 김애란을 질투하다니...)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요원한 일이었다. 좌절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내가 유일하게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신포도는 이 것이었다. "내가 애란 언니보다 어리잖아. 그러니까 지금부터 따라잡으면 돼."
그때부터 나는 늘 그런 식으로 나의 부족함을 합리화했다. '저 영화감독 미쳤다. 근데 내가 저 감독보다 어리잖아. 저 사람 너무 똑똑한데. 근데 내가 저 사람보다 어리잖아.' 그렇게 저 사람이 대단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괜찮다고. 내가 저 사람보다 어리니까 지금부터 노력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장진 감독은 그만 잘 됐으면 좋겠어요
가끔 유튜브에서 장항준을 검색해서 그의 예능 출연 영상을 본다. 최근엔 서울예대 89학번들과 함께 나온 <놀러 와> 출연 영상을 봤다. 지금도 약간 찌질 해 보이지만 그때는 츄리닝까지 입어서 한층 더 추레해 보이는 그가 열등감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장진 감독보다 잘 될 자신은 없어요, 없는데...'
'그때 저도 후보에 올랐고 장진 감독도 올랐거든요. 장진이 상 받을까 봐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장진 감독은 그만 잘 됐으면 좋겠어요'
'제 소원은 장진 감독보다 하루 더 사는 거예요'
풉, 킥, 와하하. 역시 장항준이었다. 나는 깔깔대면서 웃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장항준처럼 살자. 따라잡긴 뭘 따라잡아? 내가 김애란을?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됐다 그래, 따라잡아서 뭐 하게? 이미 그 사람은 또 저만큼 달아나 있을 텐데?
"너랑 동갑이 팀장으로 오면 어떨 거 같애?
너보다 어리면? 심지어 20대라면?"
그날 그 점심시간. 나는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곧 올지도 모를 '예비팀장'을 시뮬레이션해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티...티...팀장님!!’ 이라고 부를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찌질하다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에는 초연하지 못하다! 그것이 찌질함의 일종이라면 나는 겁나 찌질하다. 하지만 찌질하면 좀 어떤가. 그래도 이게 나의 솔찍헌 심정인 것을.
누군가 나에게 '넌 왜 그렇게 마음이 요~만하니?' 하고 누가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이 오면... 기어코 그날이 오면 나는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울면서 대답할 것이다.
‘그래요. 저 치졸해요...
근데요, 솔직히... 저만 잘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