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치페이는 좀...
직장인이 되면서 더치페이는 졸업했다. 물론 3명 이상의 모임에는 회비를 명목 삼아 나누어 낼 때도 있다. 그렇지만 1:1로 누군가를 만날 때는 늘 나의 선택지는 사주거나, 얻어먹거나 이다. 상대가 백수, 학생, 전업주부인 경우 당연히 내가 모든 돈을 낸다. 문제는 서로가 돈을 버는 경우다. 이럴 땐 누가 계산해야 할까.
첫째, 만나자고 한 사람이 돈을 낸다
나의 대원칙은 그렇다. 만나자고 한 사람이 밥을 산다. 그것은 일견 합당해 보인다. 최근에 지인이 내게 밥을 먹자고 연락을 해왔다. 우리는 두 달에 한번 정도 얼굴을 볼까 말까 한 사이이고, 친구사이는 아니라 내가 좀 어렵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당연히 그가 밥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의 마지막 만남에서 내가 밥을 샀다) 그러나 변수가 등장했다. 그 사람이 우리 집 근처로 온다는 것이다!
둘째, 만남의 수고로움이 덜 한쪽이 돈을 낸다
갑자기 내 마음에 부채가 생겼다. 나를 만나러 집 근처까지 온다고? 굳이 만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한 것도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내가 밥을 사야 할 것 같다'라는 의무감이 생겼다. 여기로 온다잖아. 그래서 나보고 메뉴도 고르라잖아. 그래서 결국 뭐... 내가 냈다. 내가 내야만 할 것 같았다.
셋째, 지난번에 얻어먹은 사람이 돈을 낸다
자주 만나는 사이에선 이 3번째 원칙이 주효하다. '이번에 내가 살게, 니가 저번에 샀잖아.' 너도 돈을 벌고 나도 돈을 버니 서로 번갈아가며 돈을 내는 것이 가장 합당한 처사인 듯 보인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변수는 등장한다.
내가 지난번에 얻어먹은 건 떡볶이였는데 이번에 먹은 것은 참치회라면? 얻어먹을 땐 혼자였는데 사줄 차례가 되니 여럿이 만난다면?
이런 경우의 수가 나온다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내가 내야 하나. 아니 그래도 이번에는 좀 과한데? 혼자 동공 지진이 나고 밥을 먹으면서도 어떻게 하지, 하고 고민될 때가 있다. 물론 내가 돈이 많다면 이런 고민 따위는 하지 않겠지만... 나는 한 푼이 아쉬운 직장인이고 때로는 밥값 한 끼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내가 낼게, 아니야 됐어 내가 내
물론 친한 친구들하고는 돈이 아깝지 않다. 거의 계산대 앞에서 몸싸움을 벌 일정도로 서로 낸다고 할 때도 있고. 혹은 처음부터 '내가 낼게' 라며 상대의 마음을 안심(?) 시키기도 한다. 가장 좋은 경우는 '오늘은 내가 낼 테니까 맛있는 걸 골라'라는 배려를 해주는 친구인데, 그런 친구에게는 나도 아낌없이 지갑이 열린다.
최근에 두 번째 이유로 밥을 샀던 지인이 또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지난번에 내가 냈고(3번 원칙) 이번에도 그 사람이 만나자고 했고(1번 원칙) 그래서 이번에는 '그 사람이 밥을 사려나?' 싶다. 하지만 차가 있다는 이유로 또 우리 집 근처로 나를 만나러 온다고 하기에 (2번 원칙) 나는 혼란스럽다.
이런 경우 누가 밥을 사는 게 맞는 걸까. 그래도 내가 사야 하나? 당연히 그쪽이 사는 걸까? 아니면, 굳이 이런 고민을 하느니 만남을 피해야 하는 걸까? 인간관계 모의고사가 있다면 이런 문제를 내고 싶다. '다음 중 누가 밥을 사야 하는지 고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