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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메리 Jul 11. 2021

모호함을 견디세요 자소서에 쓰세요



단정하는 사람을 믿지 말아요
세상은 둘로 나눠지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단정하는 사람을 믿지 말아요, 세상은 둘로 나눠지지 않아요" 나는 이 가사를 좋아한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거지만 정말로, 그렇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좋은 사람이라고? 이 말은 늘 반쯤만 진실이다.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은 없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면 그렇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일 뿐이다.



송가인의 이별의 버스 정류장 좋다
후렴구엔 너무 좋아서 눈물이 찔끔 났다


내가 어제 트위터에 쓴 글이다. 나는 정말로, 라디오에서 우연하게 들은 이 곡에 완전 빠져버렸다. "사랑은 사랑은 사랑은 꿈결처럼 와서" 후렴구가 너무 좋아서 감탄을 금치 못했고 송가인의 꺾어흐드러지는 목소리에 감격했다.


그런가 하면 어느 날은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윤덕원 노래 왜 이렇게 좋지 진짜> 그의 비겁맨 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너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아니 오직 않을 예정이었으나" 이 부분이 너무 좋아서 입을 틀어막고 꺅꺅대야만 했다.


누군가가 송가인의 노래를 듣고 있는 나를 본다면 '아 쟤는 트로트를 좋아하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윤덕원의 노래를 듣고 있는 나를 본다면 '아 쟤는 인디음악 좋아하네'라고 말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둘 중에 '진짜 나'는 어디 있는 걸까. 물어볼 것도 없이 '둘 다'이다. 트로트를 좋아하는 퐝메리와, 인디음악을 좋아하는 퐝메리. 일관된 캐릭터는 아닐지언정 분명히 실존하고 있다. 어떻게 그러냐고? 글쎄, 하지만 이게 엄연한 진실이다.



새누리당을 지지하면서 제정신일 수가 있어?


지금보다 훨씬 혈기 왕성하던 시절에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명박을 찍고, 박근혜를 찍은 것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이명박근혜를 찍었지만... 내게는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한편 언젠가 책을 읽고 "정말 너무 훌륭하지 않니" 하며 극찬했던 정치인 박원순의 민낯은 실망 그 자체였다. 그는 한 여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성추행범이었다. 정치성향은 그 사람의 됨됨이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20대의 나는 그런 '모호함'을 견딜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파렴치한이 될 수 있음을 안다.



인간은 양면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
나에게 좋은 일이 모두에게 좋은 일은 아니다.


누군가 내게 어른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런 '모호함을 견딜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세상에는 100프로 악한 사람도 100프로 선한 사람도 없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몰랐던 거구나, 를 깨닫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러니 '일부'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는 일은 미룰 수 있다면 미루는것이 좋다.


물론 그게 훨씬 쉬운 일이라는 걸 안다. 사람들은 언제나 대답을 재촉할 것이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을 훨씬 더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에 차서 정답을 말하는 사람보다는, 여러 가능성을 고려하며 대답을 주저하는 사람이야말로 좋은 사람이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단순한  판단이 배신당했을때마다 스스로를 달래며 되뇌어본다. “인간의 모호함을 견디세요. 상황의 모호함을 견디세요. 가치판단의 모호함을 견디세요. 부디... 제발...견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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