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는 하품을 하지 않는다

스타트업이 내게 준 가장 큰 변화

스타트업에 입사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좋은 것만 보였던 지난주와는 달리 조금씩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월요일에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거리를 가지고 와서 12시까지 일을 했다. (집에는 10시쯤 도착) 계속 이래야하는건 아니겠지? 순간 두려움이 몰려왔고 정말 내 선택이 맞는걸까 하는 걱정이 됐다. 하지만 화요일부터는 정상적으로 퇴근했다. 회사 사람들도 대부분 업무시간 8시간을 지킨다. 스타트업이라고 다 야근을 하는건 아닌 모양이었다. 

오늘 점심을 먹는데 회사 사람들이 나에게 왜 이직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구 회사 얘기가 나왔다. '야근도 없고, 점심도 주고, 심지어 아침도 회사에서 줬어요. 사람들도 다 좋았고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놀래며 장난스럽게 '도대체 왜 퇴사를 한거냐' 고 물었다. 

그러게, 왜 퇴사를 했을까. 

그리고 왜 나는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한걸까.

 새로운 회사가 구 회사보다 좋은점만 있는것은 당연히 아니다. 여기선 점심도 사먹고, 심지어 저녁도 사 먹어야 한다. 그렇지만 여기와서 생긴 큰 변화가 있는데 바로 회사에서 '하품을 한번도 하지 않는다는 것' 이다. 구 회사(일반회사)에선 밥먹듯 하품을 했다. 그도 그럴것이 출근시간이 너무 빨랐고 (오전 8시 30분), 회의 시간엔 나 빼고 아무도 이야기를 안 했으며, 팀장은 나에게 아무일도 주지 않았다. 나는 주로 알아서 일을 만드는 편이었는데 어느날 '내가 왜 굳이 그래야해?' 하는 억울함이 들때면 하릴없이 인터넷 서핑만 하곤 했다. 팀장은 그때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계속 하품을 했다.

이직한 이 곳, 스타트업에서는 하품을 한 번도 한적이 없다. 11시 30분까지만 출근하면 되기에 아무리 늦게 자도 아침출근이 가뿐하다. 난 아침잠이 많은 편인데 12시에 자고 8시에 일어나면 얼마나 개운한지 모른다. 성인이 된 이후로 하루 8시간을 자 본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으로는 주말에 잠을 모아잤던 것을 제외하고는 처음이다. 늦게 출근하기에 조금만 업무 워밍업을 하면 곧 점심시간. 점심을 먹고 그때서야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에 점심 후 나른함도 없다. 슬랙이라는 업무 협업툴은 나에게 신기할 따름이고, 일의 대부분을 스스로가 직접하기에 집중도 잘 된다.

그렇게 8시간을 밀도있게 일하고나면 퇴근이다. 회사에선 집중하느라 하품을 하지 않고, 퇴근시간은 늦지만 충분히 잠을 자서 또 하품을 하지 않는다. 회의시간엔 침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메모하느라 하품할 새가 없고, 선임이 주는 업무의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날아오기에 단 한 순간도 지루할 틈이 없다. 

사실, 하루하루가 매일 지루했었다. 

발전도 없고, 그렇기에 불안하기만 한 삶. 회사에서 정을 붙이기 어려우니 취미생활에 몰두했고 매일매일 늦게자는바람에 아침에 출근하고는 죽을상이었다. 컨디션은 오전 내내 난조였고 점심 먹고 난 뒤에는 한없이 나른했다. 그래서 매일같이 하품을 했다. 구 회사에 익숙해질수록, 성장이 더디어 갈수록.

하지만 요즘의 나는 매일매일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지난주 만해도 몰랐던 슬랙을 쓰고 있고, 배우기만 했던 구글 애널리틱스의 트랙킹 코드를 활용하고 있으며, 때때로 우리 시스템의 버그를 발견하고, 전문지식을 하나하나씩 배워 나가고 있다. 출근이 기대되는 정도의 스타트업뽕은 절대 아니다. 퇴근시간이 신나고 출근길엔 여전히 로또를 꿈꾼다. 그래도 나는 지금의 변화가 너무 즐겁다. 나는 이제, 더이상 하품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