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지의 중요성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000 마케터로 만들어 드립니다
인스타에 들어가면 하루에도 몇번씩 보이는 광고의 메시지다. 그들은 하나같이 '데이터를 아는 마케터' '효율을 높이는 마케터'를 만들어주겠다고 난리법석이다. 그런 메시지들에 나도 흔들릴때가 있었다. 2-3년차 마케터였을때, 한창 성장의 욕구가 높아져있을때, 가격도 비싼 직무강의를 미친듯이 결제해서 그 자체로 위안을 삼을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거... 내가 해보니 별 소용없다. 물론 기본은 된다. 디지털마케터로서 갖출 수 있는 필수역량. 광고세팅하고 효율분석하고, 픽셀이니 ASO니 하는것들. 그러나 그런 용어나 스킬등은 어디까지나 알아두면 도움되는 쓸모있는 지식들 수준이다. 인하우스 마케터가 날고 뛰어봤자 그런 부분에서는 대행사를 따라잡을 수 없고, 이제는 그나마 AI등의 마케팅 자동화 솔루션으로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케팅의 요소는 '고객분석' 과 '소구할만한 메시지' 딱 두가지다. 이것만이 마케팅의 본질이라 할수는 없겠지만 이것만큼 중요한 것은 또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디지털마케팅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했다. 여러강의를 섭렵하고 스터디를 활발하게해서 이론이 빠삭하다고 하자. 당신에게는 디지털 마케팅에 대한 어마어마한 형식지가 쌓여있다. 당신은 이 지식으로 A/B테스트도 하고 퍼널별 고객유입 지표도 관리한다.
당신이 그렇게 관리하는 지표들과 수치들은 정말로 고객을 향하고 있는걸까. 나도 마케터지만 SNS나 웹에 게재되는 광고메시지들 상당수는 의아할때가 많다. 도대체 왜 이걸 소구포인트로 잡은거지?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는 이게 최선인걸까? A/B테스트가 보편화되면서 정작 크리에이티브에는 소홀해진 느낌이 너무 많이 든다. 최선의 1개가 아니라 시덥지도 않은 3-4개로 일단 돌려보는 느낌. 오래 생각하지 않아 대충 나오는 문구들로 그냥저냥 그안에서 테스트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 아니 근데 그걸 꼭 테스트해봐야 되나.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봐야 아느냐고.
지난 회사에서 SNS광고를 집행할때의 일이다. 국내 유수의 마케팅 대행사에 대행을 맡겼고 아니나 다를까 관심사 타겟 세팅과 2-3개의 광고메시지를 내게 제시했다. 그냥 그렇게 진행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그 평이한수준의 2-3개 메시지로 A/B테스트를 하고 가장 좋은 소재로 라이브했겠지.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광고메시지도 SNS특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었고, 스타벅스등의 기업계정을 팔로우하는 사람보다는 실제 헤비유저를 팔로하는 사람이 더 효율적일것이라고 판단했다. 배워서 아는게 아니었다. 그냥 내가 그 SNS를 하면서 어떤 광고에 반응하는지 생각해온 경험치였고, 타겟고객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였다. 그래서 내가 다 바꿨다. 그리고 고객인게이지먼트는 지난번 광고에 비해 5배 이상 상승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내가 뭐 대단한 마케터는 아니다. 그렇지만 갈수록 암묵지의 중요성은 간과되고 형식지만 넘쳐나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마케터는 기본적으로 우리 상품과 브랜드의 가장 좋은 포인트(셀링포인트. 한때는 그 유명한 USP)를 잡고 그걸 타겟고객에게 소구할만한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능력은 디지털마케팅 양성강의나 스터디로 길러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당연히 사람을 대상으로 설득하는 일이니만큼 인간에 대한 이해와 지속적인 관찰, 그들이 누군지 뭘 좋아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런 인사이트는 단기간에 획득할 수도 없고 수치화되어 우상향으로 커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너나할것없이 강의만 들으면, 스터디그룹에 참여만 뛰어난 마케터가 될 수 있을거라고 부추긴다. (직장인의 불안감을 부추겨서 이익을 얻는쪽은 물론 직무교육 업체들이다) 세상은 절대 형식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넘쳐나는 강의나 실무자가 들으면 허접한 수준의 이야기를 특강이랍시고 내뱉는 치들을 보면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공부해서 마케팅을 배울 수 있다고? 정말 지식이 당신의 커리어를, 그리고 회사의 매출을 구할 수 있을까? 형식지 백날 암기해봐라. 공부하는 시간에도 또 다른 공부할거리가 생겨날뿐이다. 암묵지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들이 안타깝다. 어느 세계나 마찬가지겠지만, 백개의 지식보다는 한번의 경험이 사람을 더 성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