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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메리 Aug 24. 2020

100% 취향의 친구를 만나는 일에 대하여


놀란??? 아... 그런 영화 좋아하는구나


불세출의 명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영화 프로듀서 찬실이 마음에 드는 남자 영과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님이 그런걸 영화에 다 담으셨잖아요.

그런 보석같은게 거기에 나오잖아요. 영이씨 눈에는 그런게 안보여요? 

- 보여요. 그래도 전...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 좋아해요. 

놀란?? 아... 그런 영화 좋아하는구나


<찬실이는 복도많지> 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시봐도 너무 웃기다 ㅜ각설하고. 요즘에는 그런 생각이 많이든다. '영화를 좋아해요' 혹은 '책을 좋아해요' 하는 취미의 고백은 얼마나 무용한가. 그러니까 이런거다.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내 친구도 영화를 좋아한다. 친구는 일본의 목가적이고 잔잔한 영화를 좋아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태풍이 지나가고>나 <바닷마을 다이어리> 같은 영화. 나는 그런 영화 싫어한다. (지루하고 졸리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나 플로리안 어쩌고의 <타인의 삶> 같은 영화다. 우리는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의 취향은 너무나도 다르다. 


책은 더 심하다. 인스타그램에 가끔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의 해시태그로 내가 읽은 책을 올린다.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이 있으면 '비슷한 취향인가?' 싶어서 계정에 들어가본다. 그러나 언제나 좌절한다. 그 사람이 읽는 책과 내가 읽는 책의 접점은 요만큼도 없다. "책을 좋아해요" 의 말 속에 담긴 광범위함은 "영화를 좋아해요" 보다 훨씬훨씬 크다. 그만큼 다양한 책이 있고 종수만큼 다양한 취향이 넘실거리기 때문이다.



한때 그런 친구가 있었다. 


영화나 책의 모든 취향이 백퍼센트 일치하는 친구. 그 친구 집에 가면 재미있다 추천하는 책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빌려오곤 했었다. 친구가 연필로 줄지은 부분엔 나도 어김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친구가 왜 그부분을 인상깊게 읽었는지 너무도 잘 알것같았다. 정치성향도 같았고 심지어 좋아하는 야구팀도 같았다. 말하자면 취향면에서는 100퍼센트의 일치도를 보이는 친구였다. 그래서 그 친구와 평생갈 줄 알았다. 아 예 뭐 지금은... 




좋아하는 감독은 <드니 빌뇌브> 구요. <컨택트>는 정말 완벽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사실 <스필버그>도 좋아해요. <스파이브릿지> 같은 거보면 정말 날로 발전하잖아요. <픽사>의 모든 시리즈는 다 봤구요. 토이스토리의 광팬이에요. 좋아하는 작가는 <김애란, 신형철>이구요. <이동진>도 좋아하는데 글보다는 말이 더 좋은거 같아요. 네네 <빨간책방> 진짜 재밌죠. 다시 안하려나? 맞아요 <이다혜 기자>도 정말 좋죠. 당연히 <김혜리 기자>도 완전 팬이죠. 헐 <필름클럽> 들으세요? 대박. 완전 신기하다. 아 가수요? 가수는 <신승훈> 하고 <가을방학> 좋아해요. 네네 <계피> 목소리 너무 좋죠. 그리고 <올드팝> 즐겨들어요. 좀 옛날취향이에요 제가ㅋㅋ <뮤지컬>도 좋아하세요? 와 진짜 소름돋는다. 네 저 뮤지컬 너무 좋아하죠. <옥주현> 배우의 <레베카>랑 <안나 카레니나> 요. 뮤지컬은 비극이 좋더라구요. <몬테크리스토> 같은. 네네 맞아요 <류정한> 배우의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 ㅋㅋ 카타르시스 쩔죠. 와 저랑 취향 완전 대박.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혹시... 제 도플갱어세요?




가끔은 이런 대화를 하는 상상을 해본다. 아마도... 어렵겠지. 그래도 계속 직업이나 지역이 아니라 '취향' 으로 친구를 사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누군가라니.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만나려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려고 말이다. 정신없이 몰입하고 시종일관 깔깔대고, 돌아오는 길에 역시 '살아있길 잘했어' 라고 느끼는 친구사이. 넓디넓은 세상에서 그런 친구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에... 계속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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