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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메리 Sep 19. 2020

나를 과대평가하는 그대에게



나는 근데, 네가 더 예뻐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M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우리팀에 새로운 들어온 후배가 너무 예쁘다고. 걔가 들어온 이후로 비교되서 못살겠다고. 장난처럼 하소연을 늘어놓던 어느 술자리에서였다. M이 내 얘기를 듣더니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내 눈에는, 네가 더 예뻐." 


미.. 미친거아니야. 그게 무슨 헛소리야. 순간 홧홧해진 얼굴로 손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그건 정말 말도 안되는 얘기였다. 그렇지만 펄쩍 뛰던 나도, "내 눈에는 그렇다고~" 라던 M도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보고 웃음 지을 뿐이었다. 아니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왜애- 사람눈은 다 다른거잖아. 아니 그래도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어째 표정은 좋아하는 거 같냐? 아 아니라고 헛소리하지 말라고! 



너를 뽑지 않는 회사들이 미친거지


한편 S는 취업이 안돼 고민하는 내게 늘 그렇게 말했다. '미친거 아니야? 왜 너를 안 뽑아. 야 됐어 기죽지마 걔네가 미친거지. 다들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나보다 더 펄쩍뛰며 S는 면접관을 저주했다. 그 따위 회사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네가 너무 아깝다고. S는 정말 진지한 얼굴로 나보다 세네배는 더 흥분했다. 그리고 그런 호들갑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고민은 사소한 것이 되어버렸다. 


'얘는 사람 민망하게... 왜 이렇게 흥분하고 난리야' 


민망함에 손을 내저었지만 사실은 그랬다. 없는 우울속을 거닐던 20대의 나에게, S의 그 '과대평가' 만이 나를 구원하는 마법이었다. 백번의 '괜찮아' 보다 나를 위대하다 말해주는 이의 한번의 믿음. 그 힘이 너무 커서 거짓이라도 믿고싶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의 나를 향한 압도적인 믿음이, 20대의 나를 일으켜세웠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힘이었다. 



나와 비슷한 위로를 주고받았던 드라마 속 메리와 대구




그러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거다. 정말이지 관계의 척도는 서로의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구나. 서로를 제3자처럼 객관적으로 보는 순간 그 관계는 끝인거구나. 


친밀한 관계에 있으면, 우리는 알게모르게 서로를 과대평가한다. 엄마에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딸이고, 상사에게 나는 '팀의 에이스' 이며, 친구에게 나는 '어딜가도 잘할 사람' 이다. 하지만...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인가. 내가 객관적으로도 그런 사람인걸까.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은, 나는 엄마의 기대만큼 똑똑하지 않고, 상사의 칭찬만큼 뛰어난 사람이 아니며, 친구의 믿음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렇게 믿는다. 우리의 관계가 친밀하며 그 관계가 우호적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다'.



사실 M은 너무 귀여운 사람이고, S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다. 나도 역시 우리의 관계안에서 그들을 찬탄해마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가장 위대한 여성이고, 팀장은 내가 아는 사람중에 가장 커리어적으로 배우고 싶은 사람이고 내 친구들은 내가 아는 한 정말 재미있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객관적으로' 어떤 인간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나를 과대평가하는 것처럼, 나도 그들에게 기분 좋은 오해를 한다. 


서로를 향해 오해하기. 사실은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군가와 친해지지 못했다면 아마 서로를 너무 있는 그대로 보고 있기 때문일거다. 이 사람은 날 얼만큼 오해했을까. 이 사람은 왜 나를 그렇게 오해했던 걸까. 일기장에 사랑하는 이와, 사랑했던 이를 끄적이며 못다한 이야기들을 주절거리고픈 밤이다. 왜 그렇게 좋게만 봤을까.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닌데. 그렇게 좋은 사람만은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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