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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타한잔 Feb 09. 2021

걷잡을 수 없이 어두운 마음이 커져갈 때가 있다

나는 주변에서 매우 유명한 ‘최단시간 수면 돌입 전문가’이다. 하루의 에너지를 꽉 채워서 소비한 뒤 지쳐 잠드는 스타일이라 수면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분 내외라서 그런 별칭을 갖게 되었다.


대부분은 이런 수면법으로 건강하고 유쾌한 삶을 영위하지만 문제는 빠르게 잠들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윗집 부부의 하하호호 마귀 웃음 층간 소음부터 시작해서 동네 건물 사이사이에서 애달프게 짝을 찾는 발정기의 고양이 울음소리 그리고 평소엔 별 감흥 없던 내 두근두근 심장소리도 들려온다.


평소에 겪지 못하는 정적이다 보니 뭐든  과장되어 다가온달까? 그런 것들에 귀를 귀울이다 보면 짠! ‘그 감정’이 나를 찾아온다.


그것은 대체로 내가 싫어하는 것들의 집합에 가깝다. 밝지 않고 어두운 편이며 마르지 않고 축축하다 그리고 잡지 못할 정도로 빠르진 않지만 느릿느릿 미끄러워서 붙잡을 순 없다.


오늘 뭔가 맘에 안 드는 일이 있었나? 천천히 하루를 되짚어봐도 별 소용이 없다. ‘그 감정’은 이런 식으로 비정기적으로 나를 찾아와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존재감을 드러낸다.


모든 감정에는 원인이 있고 적당한 처방으로 해소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정신공학(?)적 사고를 하는 나에게 기원을 알 수 없는 이 녀석은 해결이 불가능한 바이러스에 가깝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자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양손에 꼬옥 붙잡고 이 고약한 녀석에게 몇 시간을 휘두르면 겨우 잠들 수 있다. 또 며칠간은 그 녀석이 돌아와서 나를 괴롭히지 않을까 잠을 설치겠지만 말이다.


어제 왔던 그 녀석이 오늘도 올까 두려워하며


잠이 오지 않는 밤의 나를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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