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Fantasma 207번째 이야기, 일기

by 석류
유령_일기.png
스물한 살 때까지 꾸준하게 일기를 썼었다. 유치원생 때부터 쓰던 그림일기를 시작으로, 글만 빼곡한 일기를 쓰게 되기까지 참 꾸준하게도 나는 하루도 놓치지 않고 종이 위에 내 일상을 기록했다. 때로는 일기장에 시를 써놓기도 하고 좋은 명언들을 메모해놓기도 했었다. 그다지 쓸 말이 없을 때도 일기를 썼다. 단 한 줄이라도 꾸준히 쓴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으니까. 일기는 나의 역사였다. 한 번씩 일기장을 들춰보면 일기를 쓰던 그 순간들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 역사의 기록을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너를 위해 공책 하나를 가득 채워 매일 일기를 썼던 날도 있었다. 결국 전달하지는 못했지만. 버릴까, 찢을까, 태워버릴까 무수히 고민했었다. 그러나 결국 그냥 두기로 했다. 그때의 순수했던 내 모습이 참 아련하고, 그것도 하나의 내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에. 더 많은 시간이 지나고 기회가 닿는다면 너에게 그 일기를 선물하고 싶다. 내가 지금은 가지고 있지만, 그 일기의 진정한 주인은 너니까.
매거진의 이전글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