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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antasma

시네마테크

Fantasma 스물두 번째 이야기, 시네마테크

by 석류


한창 고전영화의 매력에 빠져있을 무렵, 시네마테크는 내겐 한줄기 빛과도 같은 장소였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던 테크는 나의 나들이 장소로도 자주 애용되곤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나는 자주 오니기리를 싸들고 테크로 놀러 가곤 했다. 가볍게 테크주변을 산책하며 준비해온 오니기리를 먹거나, 조용한 상영관 안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으면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그저 즐거웠다. 비 오는 날의 테크도 맑은 날의 테크 못지 않게 매력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시네마테크에서 보았던 나루세 미키오의 <흐트러진 구름>이 아직도 생생하다. 변화무쌍한 날씨만큼 역동적이었던 내 기분들도 언제나 그곳과 함께였다. 영화로 위안받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라는 걸 나는 그곳에서 깨달았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지만, 그래도 내 기억 속의 테크는 처음 만난 그 모습 그대로다. 친절하던 매점 아주머니의 모습도. 시네마테크에서 나는 로셀리니를 만나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고,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사랑에 빠지고, 왕가위를 꿈꿨다. 그곳은 단순한 영화관이 아닌 나의 감성의 필름들을 상영하던 곳이었다. 그립다, 그 장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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