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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antasma

놀이터

Fantasma 스무 번째 이야기, 놀이터

by 석류
대학시절, 내게는 절친했던 동기가 있었다. 그 동기는 나보다 세 살이 많았다. 그의 첫인상이 참 강렬하게 남아있다. 가죽재킷을 입고 강의실에 등장한 모습을 보며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를 느꼈다. 자리가 없어서 내 옆자리에 앉았는데, 아마도 그때부터였나 보다. 우리에게 인연의 접점이 생긴 것은. 그때는 세 살이 참 커 보였기에 그가 엄청난 어른이라 생각했다. 갓 미성년자 딱지를 떼고 어른의 세계로 진입했던 나에게는. 시간이 흐르고 내가 그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그도 아직 완전한 어른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적어도 그랬다. 우리는 가끔 크게 싸웠다. 싸움이 마무리될 때면 항상 서로 울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던 것 같다. 그 어느 날 집 근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대화를 나누었던 게 생각난다.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따뜻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종종 그 놀이터에서 우울할 때면 그네를 타곤 했다. 세게 발을 굴러 그네를 타면 날개가 생겨 하늘 위로 나는 기분이 들어서 신이 났다. 이사를 온후 그네를 타는 일은 없어졌지만, 놀이터를 볼 때면 그네를 타고 날던 기억에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그도 그 어느 놀이터에서 한 번쯤은 다시 그네를 타고 날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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