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링 다이어리 6 - 베트남 사덱(Sa Dec)
몽글몽글한 마음으로 그와 뒤라스를 생각하며 메콩강가를 걸었다. 이제 사덱에서의 두 번째 방문지를 갈 차례였다. 선생님이었던 뒤라스의 어머니가 실제로 교편을 잡았던 학교가 아직도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고 해서 그곳을 들러볼 참이었다. 그녀의 학교는 그의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금방 갈 수 있었다. 그의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일까. 그와 그녀의 발걸음이 꽤나 자주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기 중이어서 학교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오가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건너편에도 학교가 있었는데, 분홍머리의 낯선 외국인인 나를 보고는 아이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구경을 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내가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자 아이 중 한 명은 친구의 등 뒤로 숨어 빼꼼 얼굴만 내민 채 나를 바라보았다. 한창 아이들과 시선을 교환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한 방울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 머리색만큼이나 진한 빨간색의 우산을 가방에서 꺼내 들었다. 비가 오니 슬슬 돌아가야겠다.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고, 터미널 쪽으로 가기 위해 구글 지도를 켰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하나 생겼다. 버스에서 내릴 때 호치민으로 가는 버스 탑승지가 내가 내렸던 그 장소가 맞는지를 물어보지 않고 온 것이다. 주소가 있으니 괜찮겠지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다. 지도 어플에 주소를 입력했는데, 아무런 장소도 뜨지 않았다.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다 코코넛을 마셨던 그 부근으로 우선 가기로 했다. 그곳에 손님을 태우려고 대기하던 오토바이가 꽤 있었던 걸 떠올리고는 가서 주소를 보여주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는 걸음을 옮겼다.
비가 간헐적으로 내리다 말다를 몇 번 반복할 즈음, 오토바이가 있는 곳에 닿았다. 오토바이 기사 아저씨에게 주소를 보여주니 일단 타라고 했다. 혹시, 요금 바가지를 쓸지도 몰라서 적당한 가격으로 흥정을 했다. 그렇게 오토바이에 탔다. 잠시 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고서 오롯이 기사 아저씨만 믿고 말이다.
아저씨는 나를 뒷자리에 태우고서 씽씽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이윽고 어느 허름한 가게 앞에 나를 내려다 주었는데, 버스의 탑승지 라기엔 뭔가 좀 이상해서 주소를 다시 보여주었더니 아저씨의 표정이 곤혹스러움으로 바뀌었다. 엉뚱한 곳으로 온 것이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에게 아저씨가 길을 물어보더니, 다시 나에게 오토바이에 타라고 말했다. 이번엔 제대로 가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아저씨는 한참 동안 길을 헤맸다. 헤매면서 계속 보이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봤는데 다들 길을 제대로 모르는 모양인지 명확한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대로 호치민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그러나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오토바이는 정처 없이 굴러가기만 할 뿐, 별다른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했다. 혹시 아저씨가 내가 풍짱 버스를 타러 가려는 걸 모르는 건 아닐까 싶어서, 풍짱 버스 티켓을 보여주었다. 티켓에도 주소가 있기에 참고하라는 의미에서. 그제야 아저씨는 알겠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그렇게 다시 오토바이는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뿜으며 출발했다.
우여곡절 끝에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오자마자 나는 오토바이를 탄 걸 후회했다. 내가 버스에서 내렸던 바로 그 장소였다. 근데 왜 지도에는 나오지 않은 걸까. 허탈했다. 그냥 걸어왔어도 될 거리를 괜히 오토바이를 타서 시간만 잡아먹었다. 게다가 원래의 흥정 가격보다 더 많은 요금을 아저씨가 요구해서 기분이 살짝 상했다. 내가 헤매라고 한 것도 아니건만. 그래도 무사히 버스 시간 전에 터미널에 도착했다는 것으로 위안 삼기로 했다.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시간을 보니 식사를 하기에는 애매했다. 돌아갈 때도 휴게소에 들를 테니 간단히 휴게소에서 허기를 채우고 호치민으로 가서 제대로 저녁을 먹어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호치민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바퀴가 멈추는 느낌에 잠이 깼는데 휴게소였다. 후다닥 내려서 허기를 때우기 위해 뭘 먹을까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반미를 먹고 있었다. 그래, 반미를 먹자. 나짱에서 먹지 못했던 반미를 먹기로 결심했다. 반미를 사서 앉아 먹는데, 내가 생각했던 반미의 맛이 아니었다. 바게트를 살짝 열어보니 고수만 잔뜩 들어가 있었다.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 풍미가 남다를 것 같던 반미의 맛이 아니었다. 고수가 너무 많아 반미가 아닌 고미 수준이었다. 결국 허기를 미처 채우지도 못한 채, 반미 먹는 걸 포기했다.
밀려오는 배고픔을 참으며 호치민에 드디어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 근처에 내려 식사 거리를 찾다가 외국인들이 많이 앉아있는 꼬치집 하나를 발견했다. 꼬치와 꼬치 샐러드 같은 메뉴를 맥주와 함께 시켰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혼자서는 다 먹기가 힘들었다. 이럴 때 함께 할 일행이 있으면 좋으련만. 혼자 온 사람이 있으면 나눠먹어야겠다 생각하고 주변을 보았지만 어제와 같이 오늘도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일행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최대한 꼬치를 맥주와 함께 위장에 밀어 넣었다. 나중이 되면 분명히 배가 다시 고파질 테니 열심히 먹자는 생각으로. 그래도 결국 조금 남기고 말았지만.
바로 잠들기엔 아쉬워서 캔맥주를 사들고 숙소에 들어왔다. 맥주를 따고, 노트북에 넣어왔던 <연인>을 틀었다. 사덱에 다녀왔으니 영화 <연인>을 복습하고 자야겠다 싶어서. 유난히 달빛이 밝던 밤, 그렇게 나는 호치민에서 다시금 사덱을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