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링 다이어리 13 - 라오스 방비엥(Vang Vieng)
오전 일찍 라오스에서의 첫 액티비티인 짚라인을 위해 숙소를 나섰다. 액티비티를 함께 하기로 한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짚라인 가격을 물어보기 위해서 움직이는데 가격을 물어보려고 했던 가게가 사라졌음을 한참 헤매다 알게 되었다. 방비엥의 햇살은 어제만큼 눈부셨고, 그래서 금세 나는 땀범벅이 되었다. 땀범벅이 된 상태로 걷다가, 길가에서 나처럼 그 가게를 찾기 위해 헤매던 두 사람을 만났다. 가게가 없어졌기에 방비엥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신청을 해서 가기로 했기에 그리로 같이 걷는데, 그들의 말투가 귀에 꽂혔다.
“경상도 분이세요?”
“네.”
딱 들어보니 알 수 있었다. 나 역시도 경상도 출신이었기에. 괜히 반가웠다. 아무리 한국인이 넘치는 방비엥이라 하더라도, 같은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묘한 동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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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비엥인에 도착했더니, 우리 셋을 제외하고는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상태였다. 무더위를 뚫고 우리는 열심히 움직였는데 다들 이렇게 늦장을 부리다니. 게다가 식사를 하고 넘어온단다. 그래서 우리도 밥을 먹고 오기로 했다. 나피디가 매일 와서 해장을 했다는 까오삐약을 먹고 있는데,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다들 방비엥인에 도착했다는 거였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건가. 일등으로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일 늦게 등장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허겁지겁 까오삐약을 위장 속에 밀어 넣고 급한 걸음으로 방비엥인으로 다시 움직였다. 방비엥인에 도착하자, 인원이 다 모인 걸 확인한 방비엥인 사장님이 툭툭이에 타라며 우리를 안내했다. 드디어 생애 첫 짚라인을 타러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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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라인을 타러 가는 길은 생각보단 멀었다. 툭툭이를 타고 꽤나 깊이 들어갔다. 툭툭이 안에서 우리는 간단하게 통성명을 했다. 어제 만났던 워니 오빠를 제외하고는 다들 처음 보는 사람들이어서 드문드문 침묵이 흘렀지만, 액티비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모두의 얼굴에는 두근거림이 묻어나 있었다. 이윽고 툭툭이가 멈추고 짚라인 장비가 있는 곳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다들 짚라인 장비를 착용하는데,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혜영이와 혜연이었다. 패키지로 액티비티를 신청했다고 했는데, 혜영이가 아파서 액티비티 하나를 건너뛰고 바로 짚라인을 하러 온 모양이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짚라인을 타러 가기 위해 장비를 찬 상태로 돌이 가득한 산길을 올랐다. 한 손에는 짚라인 업체에서 제공해준 조그마한 물병을 들고, 다른 손에는 액션캠을 들고 돌길을 오르는데 아차! 나의 미스테이크. 무심결에 습관적으로 쪼리를 신고 왔다. 나만 쪼리를 신고 온 줄 알았는데 다른 남자애 한 명도 쪼리를 신고 왔다. 나 혼자만 쪼리를 신고 온 게 아니라는 생각에 잠시 동안 안도감이 어렸다. 쪼리를 신었지만 빠르게 돌길을 올라가는 남자애와 달리 뒤로 처져서 걷는 내가 걱정되었던지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제주도에서 오름도 쪼리 신고 많이 올랐는데 이까짓 돌길 정도야 아무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사실은 괜찮지 않았지만. 오름이야 평지를 오르는 것이지만, 돌길은 문제가 다르다. 발에 훨씬 더 무리가 많이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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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분가량 돌길을 올랐을까. 짚라인을 타기도 전에 반쯤 지친 상태로 있는데, 다 왔다고 짚라인 가이드가 손짓을 했다. 이제 더 이상 돌길을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잔뜩 신이 났다. 얼른 짚라인을 타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앞의 팀이 먼저 짚라인을 하고 있었기에 잠시 동안 우리는 대기를 하고 있어야 했다. 앞의 팀이 짚라인을 타는 모습을 아래에서 구경하는데 심장이 쿵쿵쿵 뛰기 시작했다. 조금씩 겁도 나기 시작했고. 짚라인에 도전을 해보고 싶기는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두려움도 자리하고 있었기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무사히 짚라인을 잘 탈 수 있을까?라는 걱정 감. 앞의 팀이 짚라인을 마치고, 우리 팀의 차례가 되었다. 한 명, 또 한 명, 짚라인을 타고 다음 코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차례. 짚라인 점프대에 서자마자 엄청난 두려움이 물밀듯이 밀려와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생각보다 훨씬 더 높은 높이에 혹시나 땅으로 추락하지는 않을까 하는 무서움이 나를 잠식해와서 쉽사리 발을 뗄 수가 없었다. 계속 망설이다가 그래도 언제 이런 걸 타보겠나 싶어서 큰 마음을 먹고 점프를 했고, 가이드가 짚라인에 내 장비를 철컥 걸었다. 장비를 걸고 난 후 가이드가 힘차게 내 등을 떠밀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마치 날개 없는 새가 된 마냥 나는 줄을 타고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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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타보니, 생각처럼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눈앞에 드넓게 펼쳐진 푸르른 산과 아름다운 하늘. 자연의 아름다움에 심취되어 무서움은 잊혀졌다. 무서워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코스 하나가 끝난 것도 한몫했지만. 비록 액션캠으로 멋지게 주변 풍경을 찍으려는 계획은 줄에서 손을 못 뗀 덕분에 실패했지만. 다음 코스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다들 잘했다고 칭찬을 해줬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타는데 나만 겁쟁이처럼 타서 조금 부끄러웠지만, 사람들의 그 말에 용기가 났다. 겁을 조금 떨치고 나니, 액션캠으로 주변 풍경을 담고 싶었다. 그러나 한 손으로 타기에는 도무지 자신이 없었던지라 내 다음 차례로 탄 동생 현정이에게 액션캠으로 짚라인 풍경을 담아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해줬다. 고마웠다. 말이 쉽지 한 손으로 액션캠을 잡고 짚라인을 타는 건 꽤나 번거로운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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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짚라인을 타는데, 도무지 짚라인이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직도 코스가 많이 남아있다고 했다. 짚라인을 타면서 혹시나 쪼리가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발가락에 힘을 많이 줬더니 발이 아팠다. 발에 신경을 쓰느라 손에는 상대적으로 힘을 덜 줘서 중간중간 코스 끝에 다다를 즈음에 몇 번 내 짚라인만 멈추기도 했다. 다들 이제 능숙하게 짚라인을 타는데, 나만 짚라인 열등생이 된 것 같아서 속이 상했다. 그리고, 짚라인만 타는 줄 알았더니 흔들 다리와 흔들 통나무를 지나가는 코스도 있었다. 이건 또 무슨 극기훈련이란 말인가. 오히려 짚라인보다 통나무를 지나가는 게 더 무서웠다. 다리를 뻗기에는 통나무 사이의 거리가 멀어 보여서 건너질 못하고 있으니 가이드가 답답했던지 통나무 옆의 흔들 다리로 내 장비를 옮겨 걸어주었다. 나 혼자만 동떨어져서 흔들 다리로 건너가는 상황이 쑥스러웠지만, 무서운 걸 어떡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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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캠은 어느새 워니 오빠에게로 넘어갔다. 현정이가 타면서 찍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했고, 불편해 보였기에 워니 오빠가 대신 찍어주기로 했다. 액션캠 때문이었을까. 거의 선두로 타던 워니 오빠는 내 뒤에 서서 짚라인을 타기 시작했다. 방비엥에 와본 적 있기에 이미 짚라인도 유경험자였던 워니 오빠는 가이드 못지않게 능숙하게 줄을 타고 날아다녔고, 여러 번의 흔들 다리를 건널 때마다 뒤에서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목소리 덕에 더 겁먹지 않고 안심할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코스를 지났을까. 드디어 마지막 코스만이 남았다. 마지막 코스는 짚라인이 아닌 수직하강이었다. 짚라인을 무사히 잘 탔던 사람들도 수직하강 코스를 보고 다들 안절부절못했다. 나 또한 하얗게 질려버렸고. 극기 훈련을 마치고 나니 소방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니. 짚라인의 마지막 코스에 이런 게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경악스러웠다. 얌전히 짚라인을 타던 사람들도 수직하강에서는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고, 수직하강을 시작한 나 또한 언제 훅- 하고 바닥으로 몸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무서웠다. 처음에 줄에 온 몸을 맡겼을 때는 어? 생각보다 괜찮네?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내 몸은 바닥으로 추락하듯이 확 떨어져 내렸고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먼저 수직하강을 마친 사람들은 다들 내 얼굴을 보며 아까는 하얗다가 이젠 얼굴이 파래졌다며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처음 짚라인을 시작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다리가 엄청나게 떨렸다. 온몸에 힘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풀려버린 다리를 붙잡고 서 있는데, 지금 힘이 풀린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짚라인의 모든 코스가 끝이 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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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라인을 타러 갈 때는 맨 뒤에서 산을 올라갔다면, 산을 벗어나는 길은 제일 앞에 서서 움직였다. 원래 산 못 타는 애들이 내려가는 건 제일 빠르다고 하지 않는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갈 땐 돌길이었지만, 돌아갈 때는 평지에서 풀들을 헤치며 가는 거라 훨씬 속도가 붙기도 했고. 반바지를 입고 풀숲을 헤치며 가다 보니, 풀들에 다리가 스쳐서 따가웠지만 얼른 장비를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커서 따가움을 참고 묵묵히 걸었다. 튜빙 시작 지점이라는 강가 쪽에 도착하자, 건너편에서 뗏목 하나가 우리를 태우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강물의 유속 때문인지 뗏목은 우리에게 닿는데 한참이 걸렸고, 무게감 조절을 위해서 몇 명만 태우고 강 건너편에 대기 중인 툭툭이에 사람들을 내려놓았다. 다시 또 뗏목이 오겠거니 싶어서 나도 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까 전보다 훨씬 빨라진 유속 탓인지 뗏목은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했고 결국 나와 남은 인원들은 둘씩 짝지어 카약을 타고 강을 건넜다. 졸지에 액티비티를 두 개나 한 셈이 되었다. 깨알같이 카약킹까지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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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강을 건넜고, 툭툭이에 탑승했다. 툭툭이 아저씨는 우리에게 꼬지와 볶음밥이 담긴 점심식사를 물과 함께 하나씩 나눠주었고, 오랜 시간 짚라인을 하느라 지쳐버린 우리는 툭툭이에 앉은 채로 허겁지겁 식사를 먹어치웠다. 툭툭이에 앉아서 식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색다른 느낌이어서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런 게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기도 했고. 너무 목이 말랐던 나는 식사는 조금밖에 못 먹고, 물만 미친 듯이 들이켰지만 아직도 그 날 툭툭이에서 먹었던 늦은 점심을 잊을 수가 없다. 몇 시간에 걸쳐 줄과 줄 사이를 이동했던 3km 길이의 짚라인이 종결되었음을 말해주던 그 날의 식사를 어찌 잊어버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