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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에서의 두 번째 튜빙

키링 다이어리 22 - 라오스 방비엥(Vang Vieng)

by 석류


방비엥에 다시 오니, 튜빙이 하고 싶었다. 물 겁쟁이인 내게 있어서 큰 도전이었던 튜빙. 피니쉬 라인까지 완주를 못한 탓에 이번에 튜빙을 하면 완주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튜빙에 재도전하기로 했다. 물론 아직도 튜빙에 대한 겁이 남아있기에 혼자서는 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래서 튜빙을 같이 할 사람을 모집했는데 운이 좋게도 몇 명이 함께 하겠다고 대답을 건네 왔다. 규혁이도 그랬다. 규혁이는 나와는 다른 날 튜빙을 했고, 피니쉬 라인까지 통과했지만 나를 따라 선뜻하겠다고 대답해줬다. 그래서 이번에는 피니쉬 라인까지 닿는 것을 목표로 튜빙을 다시 시작했다.



저번에 튜빙 했을 때는 날이 흐렸는데, 이번 튜빙은 어째 시작부터 날이 쨍쨍했다. 날이 맑은 건 좋지만, 햇살이 뜨거우면 그만큼 튜브도 뜨겁기에 조금이라도 비가 내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 튜빙은 비가 오지 않길 바랐는데, 이번엔 비가 오길 바라다니. 나도 모르는 새에 물에 대한 겁이 조금은 줄어든 걸까?



*



이렇게 강가옆에 튜빙 바가 있다.
던져주는 줄을 잡으면 이렇게 튜빙바에서 일하는 직원이 내려와 줄을 끌어당겨 바 위로 올라갈 수 있게 해준다.



다 같이 서로의 튜브를 잡고 첫 번째 튜빙 바로 출발했다. 물을 겁나 하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여럿 있었기에 우리는 안간힘을 쓰고 서로의 튜브를 잡고 움직였다. 그래서 첫 번째 바에 올라갈 때는 마치 굴비처럼 줄줄이 엮여 올라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첫 번째 바에 가니 흥겨운 음악과 함께 댄스 타임이 벌어지고 있었고, 우리도 댄스 타임에 동참했다. 흥이 나서 신나게 춤을 추니, 다들 나보고 흥 부자도 아닌 흥 재벌이란다. 춤을 추는 내 모습이 많이 신나 보였나 보다. 한창 춤을 추고 있는데, 비가 내린다! 비가 오자 분위기는 더 고조되었고, 다들 비에 취한 듯이 춤을 췄다. 컵 뒤집기도 하고, 외국인들과 팀을 나눠 비어퐁 게임도 했는데, 얌전해 보이던 동생 한 명이 탁구공을 컵 속에 너무 잘 넣는 게 아닌가. 알고 보면 그 동생은 비어퐁 게임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날 자신도 모르던 새로운 재능을 찾은 걸지도.



원기옥 점프샷. 비오는 날 찍는 점프샷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비는 점점 더 많이 내리고 있었고, 어느덧 폭우 수준으로 변해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내려서일까. 튜브를 타고 떠내려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첫 번째 바에 머물 수는 없는 노릇. 두 번째 바로 움직이기로 했다. 강으로 내려가니 정말 앞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쉴 새 없이 내렸다. 이 상태로 튜빙을 계속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분명 멎어 드는 순간도 있을 테니 그 틈새를 노리면서 이동하면 되겠다 싶었다. 비를 뚫고 두 번째 바에 가니 사람이 우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폭우 때문에 다들 첫 번째 바에 머물고 내려오고 있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난번 튜빙 때 두 번째 바가 더 재미있었던 기억이 남아있었기에 사람이 없는 게 실망스러웠지만 오히려 그게 전화위복이 되었다. 우리가 따로 전세라도 낸 듯이 넓게 놀 수 있었으니까. 사진도 많이 찍고, 바 옆 풀밭에서 단체 점프샷도 기념으로 남겼다.



비는 여전히 많이 내리고 있었고, 그 비를 뚫고 외국인 커플이 왔다. 어? 가만 보니 낯이 익다. 비바에서 만났던 친구들이다. 과일이 그려진 옷을 입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는데 오늘도 그 옷을 입고 왔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비가 언제쯤 멎어들까 지켜보고 있는데 더 내렸으면 더 내렸지 도무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비를 뚫고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움직이는 대신,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비가 많이 오니 내려가면서 보이는 바에 모두 다 올라갔다오자고. 폭우 속에서 계속 떠내려가기에는 체력 소모도 상당하니 쉬엄쉬엄 체력 분배가 필요했다.


비오는 날은 역시 라면이 최고다. 라오스에서 느낀 한국의 라면 맛.



세 번째 바에 도착했다. 여전히 떠내려 오는 사람이 없었기에, 두 번째 바와 마찬가지로 세 번째 바도 우리밖에 없었다. 세 번째 바는 농구 골대가 있어서 재미 삼아 슈팅 게임을 하기로 했다. 돌아가면서 슛을 쐈고,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하기도 했다. 이게 은근히 승부욕을 자극하는 느낌이어서 그런지 실패한 사람들도 연이어 시도하더니 결국 전원 다 골인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비가 계속 내려서 물에 젖은 우리들이 추워해서일까. 세 번째 바에는 드럼통에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는데 우리를 위해서 직원들이 더 강하게 불을 피워주었다. 불 앞에서 젖은 몸을 말리고 있으니 나른한 느낌과 함께 배가 고파졌다. 그래서 누들을 시켜서 나눠먹기로 했다. 누들은 스낵면 라면 맛이었다. 밥이 있다면 말아먹고 싶은 생각이 딱 드는 국물 맛까지. 정말 스낵면으로 끓인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스낵면의 맛과 흡사했다.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나니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았다.



*



비는 오늘 안에 멎어들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날씨가 더 악화되었다. 천둥 번개까지 치는 상황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쉬엄쉬엄 튜빙을 하기로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



“여기가 마지막 바래. 더 이상 바가 없대.”



더 이상 쉬어가면서 갈 수 있는 바가 없다니. 이제 강으로 내려가면 쉬지 않고 떠내려가야 한다. 피니쉬 라인까지 닿아야 한다는 결심을 가지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물 겁쟁이인 내 마음속에서 툭툭이를 탈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 올라왔다. 혼자 내적 갈등을 하고 있는데, 튜브 반납 시간도 가까워져 오니 더 이상 머물 수는 없다고 다들 이제 내려가잔다. 그래, 이번에도 툭툭이를 탈 수는 없다. 튜빙을 두 번이나 했는데 단 한 번도 피니쉬 라인에 닿지 못하면 부끄럽지 않겠는가. 툭툭이에 대한 생각을 뒤로 밀어 두고 사람들을 따라 다시 출발하기 위해 강으로 내려갔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튜브를 잡고 움직이니 무섭지 않게 무사히 피니쉬 라인에 당도할 수 있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



폭우에서의 튜빙이었지만, 혼자가 아니었기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였을까. 무사히 기나긴 코스를 통과해 피니쉬 라인에 닿았다. 감격스러웠다. 툭툭이를 타고 지나던 길을 걸어서 지나간다는 것도 나름의 감동 요소였고. 첫 튜빙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두 번째는 성공했다.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튜빙에 대해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물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무서워하던 나도 해냈으니 당신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혼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한 성취였을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혼자라면 3km 코스를 떠내려가는 게 지루함이 될 수도 있다. 튜빙이야말로 타인과의 교류가 가장 활발해지는 액티비티가 아닐까. 강 위를 둥둥 떠다니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경험은 쉽게 획득하기 어려운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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