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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antasma

이름

Fantasma 스물네 번째 이야기, 이름

by 석류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기억을 더듬어서 네 이름을 찾아냈다. 사실, 기억을 더듬을 필요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네 이름을 한 번도 잊고 살아본 적 없으니까. 잊은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번도 소리 내어 네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 시절의 나에게 있어서 너의 이름은 일종의 자존심과도 같았다. 내 감정에 대한 자존심. 항상 닿을 듯 닿지 않았던 너였기에, 이름을 부르면 결국 닿지 않은 채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릴까 봐 부르지 못한 것도 있었다. 너의 이름을 아껴두기 시작하면서 나는 너를 나 혼자만의 암호로 부르곤 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이름보단 그 단어가 더 익숙한 느낌이 든다. 너의 이름은 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나는 너의 이름을 사랑했다. 너의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너를 떠올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리워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너의 이름을 발음하는 건 낯설다. 그 낯설음은 아직도 내가 너를 그 정도로 소중히 여긴다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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