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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내가 애정 했던, 장국영

키링 다이어리 30 - 홍콩(Hong Kong)

by 석류

IMG_07611.jpg 홍콩 캘린더 키링.
IMG_07633.jpg 키링의 뒤편이 캘린더 형으로 되어있어 흥미롭다.


사심을 가득 채운 덕질 여행이어서 그럴까. 나름 빡빡하게 돌아다닌다고 돌아다녔지만 가지 못한 곳이 많았다. 어느덧 홍콩에서의 짧은 나날들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가 되었다. 항상 여행 마지막 날은 화창해서 쉽사리 떠나기 힘들게 만든다. 오늘도 그랬다. 맑은 하늘을 보니 더 머물고 싶었다. 아쉬움은 있지만, 마지막 날은 빡빡하게 돌아다니기 싫어서 별다른 계획을 잡지 않았다. 시장이나 또 가볼까 했지만, 매일 밤 돌아다녔던 야시장에서 큰 수확도 없었고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시장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키링을 숙소 주변에서 발견도 했기에 굳이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운이 정말 좋았다. 숙소 주변에서 홍콩의 50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캘린더 키링을 발견한 것은. 그 키링을 처음 본 순간, 딱 느꼈다. 이 키링을 누군가에게 선물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나의 삶의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일 거라고. 그 언젠가 이 키링을 받게 되는 사람은 키링을 보며 자신이 내게 있어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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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160829_134853000_D8EF79AA-6A5D-4376-A29A-6709454A4964.JPG 홍콩역.


최대한 덜 움직이며 여유로이 마지막 날을 보내기로 친구와 약속했기에 미리 얼리 체크인으로 짐들을 보내 놓고, 홍콩역 주변에서 시간들을 흘려보내기로 했다. 우리의 오늘 계획은 저녁에 관람차를 타는 것 외에는 없었다. 관람차를 타며 홍콩의 야경을 한 번 더 느끼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좋을 것 같았다. 관람차는 해가 질 때 탈 테니, 낮에는 뭘 할까 생각하다 홍콩역 근처에 우체국이 있는 걸 떠올리고 엽서라도 살까 싶어서 우체국에 갔다. 기대를 너무 했나 보다. 우체국엔 독특한 엽서가 없었다. 차라리 내가 찍은 사진들을 인화해서 쓰는 게 나을 것 같은 퀄리티의 엽서밖엔 없었다. 그래도 이왕 온 김에 그냥 돌아서 나가기는 아쉬워서 엽서 몇 개를 샀다. 브루스 리와 홍콩 야경, 트램이 새겨진 엽서들을 사들고 나와 홍콩역과 연결된 IFC 몰로 들어섰다. 시간도 많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여유로이 밥이나 먹고 IFC몰이나 돌아다닐 생각으로. 크리스탈 제이드에서 딤섬과 마파두부를 먹고 건물 안에 음반 가게가 보여서 이곳에도 장국영의 음반이 있을까 싶어서 구경을 했다. 규모는 이제껏 갔던 음반 매장 중에 제일 작았지만, 이곳도 장국영의 음반과 왕가위 영화 OST가 있어서 반가웠다. 못 보던 음반들도 있어서 꽤나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지만, 그의 목소리들은 이렇게 홍콩 곳곳에 하나의 발자국처럼 남아 나를 끌어당긴다. 문득 친구의 질문이 떠올랐다.



‘류, 넌 왜 장국영이 좋아?’

‘특유의 눈빛도 좋고, 바라보고 있으면 꼭 남동생 같은 느낌이 들어.’

‘남동생?’

‘응. 뭔가 챙겨주고 싶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나와 닮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그가 살아온 삶의 결들이 나와 겹치는 지점들이 있는 기분이 들어. 사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그냥 그가 좋아. 그가 보여준 많은 연기들 때문에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장국영이라는 사람이 좋아졌어.’



친구의 질문은 이번 여행의 테마 중 하나가 장국영이었기에 빠질 수 없는 궁금증이었으리라.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연기도 연기지만, 사람 그 자체의 장국영이 좋았다. 비록 내가 접한 건 스크린 속에서의 그의 모습들뿐이지만, 그래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은 너무도 아련해서 화면 속임에도 불구하고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으니까.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그의 삶의 궤적들이 스크린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인 것 같다고 하면 오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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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160829_193514787_C18BE6AB-F10E-4D82-ABEA-7EFF33EB1CA3.JPG 해가 진 홍콩의 거리로 다니는 트램.


한창 IFC몰을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나니, 해가 저물었다. 홍콩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심포니 오브 라이트는 열릴 테니, 그 시간에 맞추어 관람차를 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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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160829_194432351_F862658B-39C8-4500-8943-E3697FA3194B.JPG 역시 관람차는 해가 지고 타야 제맛이다. 심포니 오브 라이트 타임에 맞춰타면 최고로 아름답다.


딱 심포니 오브 라이트 타이밍을 맞춰 관람차를 탔다. 관람차에서 바라보는 홍콩의 야경은 이제까지와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지상이 아닌 곳에서 보아서 그런지 오늘따라 더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아름다운 불빛들로 수 놓인 홍콩에서의 마지막 밤. 지독히도 아름다운 밤이 관람차의 움직임과 함께 내 마음속에서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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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160830_065355000_02CDB90D-A379-4387-A5EB-ACD570D43D9B.JPG 장국영의 마지막 장소, 만다린 호텔.
P20160829_233135000_F04653BB-03DB-4934-B29F-290956488653.JPG 마지막 남은 홍콩 달러를 탈탈 털어 홍콩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아직 공항으로 가기엔 시간이 좀 남았다. 오늘의 미션인 관람차도 탔기에 더 이상 할 것도 없었다. 만다린 호텔이 근처에 있었기에 만다린을 보며 노상 맥주나 마시며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IFC몰 안에 있는 시티 슈퍼에서 남은 홍콩 달러를 탈탈 털어 연어와 맥주를 사고, 만다린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만다린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니 감성이 최고조로 끓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장국영의 마지막 장소, 만다린. 그가 너무 아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자 울컥하는 감정이 마음속 밑부분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왔다. 조금은 센치해지려는 찰나, 친구가 말했다.



“류야. 난 이번에 제대로 느꼈어.”

“뭐를?”

“네가 장국영을 참 많이 좋아한다는 걸. 그 애정이 너무 신기하고 대단해.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네가 부러워.”



친구의 말에 쑥스러워졌다. 내가 부럽다는 그 말이 너무 콕콕 와 닿아서. 친구는 내가 부럽다면, 나는 장국영이 부럽다. 단 한 번도 실제로 만나본적도 없고, 동시대라 하기에도 조금은 애매한 시간을 잠시 겹쳤을 뿐인 사람이 이렇게도 그를 그리워하고 애정하고 있으니까. 그 시절, 내가 너무도 애정 했던 장국영. 아니, 지금 이 순간도 너무 애정 하는 나의 장국영. 나도 장국영처럼 오래도록 누군가의 기억 속에 깊이 남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만다린을 한참 동안 눈에 담았다.



*



아마 혼자 왔다면 장국영을 생각하며 많이 슬펐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슬픔보단 즐거움이 가득했던 이번 여행을 친구와 함께 동행할 수 있어 행운이었다. 그때는 차마 쑥스러워하지 못했던 말을 지금이라도 전하고 싶다. 나의 홍콩 여행은 장국영, 왕가위, 그리고 네가 있어서 더 반짝반짝 빛날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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