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닮은 책방, 소년의서

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광주 (1)

by 석류


IMG_1382.JPG 광주극장 옆골목으로 들어가면 소년의서가 나온다.



다른 도시에 발걸음 할 때와 달리 광주로 가는 걸음은 묵직함이 가득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인, 광주.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자 지금도 여러 좋은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는 광주극장의 옆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늘 내가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책방이 나온다. ‘소년의서’.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강하게 나를 사로잡은 이 책방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기대감을 품으며 나는 소년의서의 문을 노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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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1392.JPG 광주를 닮은 책방, 소년의서.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소년의서 책방지기 임인자입니다. 연극을 하고 있구요. 오랫동안 서울 대학로에서 활동을 하다가 광주로 내려오게 되었어요.”

“아, 원래 광주분이 아니셨나요?”

“광주사람이 맞긴 해요. 고등학생 때까지 광주에서 지내다가, 대학을 서울로 가게 돼서 그때부터 쭉 서울에 있다가 2016년 초에 다시 광주로 내려오게 되었어요.”



소년의서 책방지기 임인자 님의 첫인상은 여러 기사 사진들로 보아온 것보다 훨씬 포근했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예술가 특유의 날카로움이 묻어나 있어서,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할 때 혹여나 내가 버벅거리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소년의서의 뜻이 궁금합니다. 책방 이름인 소년의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제가 변방연극제라는 연극제에서 예술감독을 오랫동안 했었어요. 변방연극제를 하면서, 우리 사회의 억압된 존재들을 알게 됐고 그중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사건의 피해 생존자분을 알게 됐어요. 그분이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쓰셨는데요. 이 책을 좀 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들, 해결이 되어야 할 것들에 대한 생각을 담아서 책방 이름도 정해지게 되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은 권리를 가진 존재가 소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소년의서 라는 이름으로 책방 이름이 최종 결정되었어요.”



광주에 인터뷰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참 많은 책방이 있어서, 한 곳을 고르기가 정말 어려웠다. 한창 고민하고 있는데, 소년의서의 이름을 보자마자 고민은 사라졌다. 바로 여기다 싶었다. 이름부터 광주라는 도시의 느낌을 닮은 이 책방으로 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피어올랐다. 내 선택은 옳았다. 소년의서라는 이름처럼, 이름에 담긴 뜻도 광주를 닮았다.



IMG_1405.JPG 과거인 소년, 소녀가 미래에 와서 오늘을 본다는 슬로건이 인상적이다.



“소년의서는 인문사회과학예술서점인데요. 옛날에는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많았지만, 지금은 드물어요. 인문사회과학예술전문서점으로 운영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가 광주에서 성장을 해서 그런지,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민들이 많이 들더라고요. 형제복지원 사건이나, 용산 사태 등등을 보면서 다시 사회적인 부분으로 회귀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시대야말로 사회과학서적을 다시 읽어야 될 때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책방에는 70~80년대 사회과학 서적이 다른 책들보다 많은 편이에요.”



소년의서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인문사회과학예술서점이라는 타이틀이었다. 작은 책방 중에 이런 타이틀을 내걸고 운영되는 곳은 내가 알기로는 소년의서 뿐이다. 책도 잘 안 팔리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책방이 있다니. 책방지기님의 철학이 묻어나는 이 공간에 나는 금세 매료되었다.



IMG_1379.JPG 소년의서 근처에 위치한 광주극장. 오랜시간 좋은 작품들을 상영하며 자리를 지켜온 의미깊은 극장이다.



“소년의서가 위치한 광주 충장로는 광주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동네라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광주극장이 있기도 하고요. 아직 과거인 소년/소녀가 미래에 와서 오늘을 본다는 책방의 슬로건과도 어울리는 동네고요. 충장로에 자리를 잡게 된 계기가 있나요?”

“우선 제가 광주극장을 좋아하는 마음이 강했던 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어요. 이곳 충장로는 금남로 옆이에요. 제가 광주에서 성장을 할 때, 금남로에서 독서실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이 5.18 진상규명에 대한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민주화에 대한 여러 모임들도 많이 이루어진 동네기도 하고요. 그런 모습들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고, 광주 최초의 서점이 광주극장과도 인연이 있기도 했고요. 여러 가지 역사적인 부분을 생각하다 보니 광주극장 옆으로 오는 게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죠.”



광주에 여러 동네가 있는데, 왜 하필 충장로일까 궁금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충장로에 자리를 잡은 건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상영하는 광주극장과 인문사회과학예술서적 책방의 조화라니. 한동네에 이렇게 좋은 공간들이 모여있다니. 이보다 더 매력적일 수 있을까 싶다.



IMG_1394.JPG 서가의 뒤편을 활용해 그림과 글귀를 담아놓은 모습은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책방 앞에서 보니 서가의 뒤편을 이용해 형제복지원에 대한 글과 그림들이 담겨있는 것들이 새겨져 있더라고요. 대표님에게 있어서 형제복지원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랫동안 변방연극제를 하면서, 변방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만나면서 우리 사회가 민주화와 경제발전이라는 거대한 두 가지의 서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큰 대의를 쫒으면서 그 속에 숨겨진 것들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역시도 변방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면서도, 제도 밑에 깔려있던 것들은 보지 못했구나 싶었죠. 그래서 굉장히 큰 자각이 왔어요.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분들을 만나면서, 제도와는 굉장히 거리가 먼 느낌을 받았어요. 저 같은 경우에도 제도 안에서만 쭉 살아왔기 때문에, 밖을 벗어난 적이 없었어요. 제도 밖의 삶은 생각조차도 못했죠. 근데 이 분들 같은 경우에는 형제복지원이 폐쇄된 이후 아예 제도 밖으로 밀려난 케이스예요. 정말 상상밖의 삶이어서 충격적이었고, 이걸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여기서 인상적인 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요. 첫 번째로는 피해 생존자 한종선 님이 있는데, 이 분이 아무리 인권활동가들에게 노크를 해도 다들 들어주지 않고 외면했다고 해요. 공소시효가 지난 옛날 사건이라 손을 내밀 수 있는 곳이 없었던 거죠.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처참하게 느껴졌어요. 두 번째는 겉으로 드러난 것이 다가 아닌, 제가 모르는 게 참 많다는 거였어요. 제가 어느 하나에 빠지면 파고드는 스타일이라, 이 사건에 대해 많이 찾아봤어요. 이분이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을 쓰기 전에 이 분의 아버지와 누나가 정신병원에 갇혀있는데 그게 너무 억울하다며 글을 인터넷에 올린 걸 봤어요. 또 다른 글도 있었는데요. 선거날, 투표를 하기 위해 새벽 4시에 투표장에 갔대요. 어떻게든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장에 갔는데 그것조차도 참 쉽지 않았다는 글을 보고 눈물이 났어요. 저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게 그분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이 슬펐죠. 그래서 밖에 있는 문구를 새긴 거예요. 인간이 짐승이 되긴 쉽지만, 짐승이 다시 인간이 되기는 어렵거든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열심히 찾아보았다. 영상도 살펴보고, 구술집과 자료들도 읽어보면서 나름의 공부를 했다. 원래도 이 사건을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서 매우 충격적이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피해 생존자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삶을 살아나가고 있는데, 가해자와 그 가족들은 아무런 죄책 감 없이 편안한 삶을 산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게 슬프고 화가 났다. 그녀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해결을 위해 직접 발로 뛰며 돕고 있었다. 함께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기도 하고. 한참 동안 형제복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내 주변에 이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라며 알리는 것이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일이었다. 나는 미 해결된 이 사건이 해결되는 그날까지 잊혀지지 않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알리겠노라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이번 질문으로 조금은 무거워진 분위기의 전환을 위해 다음 질문을 던졌다. 소년의서의 큐레이션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IMG_1395.JPG 인권에 대한 책들이 큐레이션 되어있는 매대.



“소년의서에서 가장 초점을 두고 책들을 큐레이션 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5.18이 있어서 그런지 광주를 인권도시라고 많이들 말하시는데요. 인권도시라고 불리는만큼 되게 열린 도시라고 생각들을 하시곤 하는데, 광주는 아직 가부장적인 면이 많은 도시예요. 5.18 같은 경우도 여성들이 앞서서 행동한 측면도 많은데, 그런 서사들이 많이 묻혀있어요. 그렇기에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광주에 대한 책이나, 올해 미투 운동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도 많이 촉발된지라 그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페미니즘에 대한 책도 많이 가져다 두고 있어요. 인권에 관한 책들도 있고, 인문사회 계열도 중심으로 나름의 큐레이션을 하고 있고요.”



인문사회과학예술서점이라는 정체성에 맞는 큐레이션과 묻혀진 여성의 이야기들을 발굴하는 느낌의 큐레이션은 인상적이었다. 책방의 분위기와 하나 되는 큐레이션. 책방 곳곳에서 묻어나는 그녀의 큐레이션은 이곳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SNS를 살펴보니 대인시장에 자주 출장 책방을 하러 나가시더라고요. 책방을 벗어나 책 판매를 하는 건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인시장에서 출장 책방을 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이건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인데요. 책방이 워낙 골목 안쪽에 있다 보니 월세라도 벌려면 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책방이기 때문에 다른 일이 아닌, 책을 팔아서 월세를 만들고 싶더라고요. 대인시장이 토요일마다 야시장이 열리는데요. 공연이 열리는 주 빼고는 항상 나가서 출장 책방을 하고 있어요.”

“그럼 대인시장에 나가시면, 고정적인 자리를 잡고 출장 책방을 하시는 건가요?”

“고정적이진 않고, 조금씩 자리가 달라지긴 해요. 저는 예술가 셀러로 나가고 있는데요. 계속 대인시장을 나가지만 아직도 손님들이 어떤 책들을 좋아하는지 파악하기 힘들어서, 제가 팔고 싶은 책과 판매가 되지 않을까 예상되는 책들을 적절히 믹스해서 가지고 나가는 편이에요. 대중들이 많이 찾는 책을 가지고 간다고 해서 무조건 잘 팔리는 건 아니어서, 계속 큐레이션을 실험하는 단계에 있어요. 그래도 5월 서적, 사회과학 책은 언제나 챙겨가고 있어요. 굳이 판매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 나름의 문화적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기존에 흔히 볼 수 있는 책들과 다르기에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고, 그 책들로 인해 호기심을 가지고 책방으로 직접 방문해주시기도 하고요.”



일시적인 게 아닌 주말마다 책을 선별해서 출장 책방을 한다는 건 정말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 과정 속에서 지칠 수도 있지만, 에너지를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출장 책방을 이어나간다는 사실이 감탄스러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출장 책방으로 인해 소년의서를 알게 되고 방문하게 되면 좋겠다.



“온라인 주문도 받으시던데요. 손님이 고른 3가지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추천 도서를 보내주는 형태더라고요. 이 시스템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손님들이 희망하는 책들의 키워드를 정해주시면, 제가 그 키워드에 맞춰서 책을 보내드리고 있어요. 서점 오픈 초기에는 많이 했는데요. 요즈음은 그렇게 활성화가 되고 있진 않아요. 이걸 하면서 대체적으로 보내드리는 책의 형태는 비슷했는데요. 5월 관련 책과 <살아남은 아이>는 꼭 넣어서 보내드리곤 했어요. 나머지는 키워드에 맞춰 보내드리고요.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직접 찾아서 보는 것도 큰 재미지만,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책들을 발견하는 기쁨도 크기 때문에 많이들 흥미로워하세요. 그런 것 때문에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기도 하고요, 타지에서 구매하시는 분들도 많아서 이 시스템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소년의서의 SNS에 보면 온라인으로 책을 신청할 수 있는 폼이 마련되어있다. 원하는 책을 직접 고르는 형태가 아닌 키워드를 통해서 신청받는다는 게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키워드에 맞춰 책을 보내되, 책방의 정체성과 맞는 5월 서적과 <살아남은 아이>가 꼭 들어간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읽고 싶은 책을 직접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예상치 못한 책을 만나게 되는 것도 큰 기쁨이다. 프랜차이즈 책방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 이것이야말로 동네책방이기에 가능한 즐거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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