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원이 사랑한 도시 - 광주 (2)
“대표님은 원래 연극 연출을 하셨다고요. 그래서 연극 공연으로 종종 주말에는 책방을 닫기도 한다던데, 주로 어떤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일을 하시고 계신지 궁금해요.”
“주말에 하는 공연은 광주의 대촌이라는 지역에서 하는 공연인데요. 그곳의 문화자원을 이용한 공연이에요. 얼쑤라는 전통 타악을 하는 팀과 함께 향악을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향악과 놀자’라는 프로그램이에요. 그 지역이 의병도 일어났고, 고싸움도 마을의 전통으로 남아있어요. 다른 곳은 이런 것들이 마을이 아닌 가문에 귀속이 되어있는데, 이곳은 마을 전체의 것이거든요. 제가 서울에 있을 때는 몰랐던 이런 공동체 의식을 가진 자원들이 조금 더 귀하게 여겨져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 공연 기획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대촌에서 공연과 전시, 체험을 함께 하는 프로그램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어요.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진행을 해보니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시고 좋아해 주셔서 흥미로운 것 같아요.”
점점 더 사회가 개인화되면서 사라져 가는 공동체 자원과 의식들을 조명해 공연과 전시,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녀가 얼마나 광주에 대한 관심이 많은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는 건 하기 힘든 일일 테니.
“광주는 소년의서를 비롯해 많은 작은 책방들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소년의서에서 추구하는 이미지가 광주라는 도시와 많이 닮아있어서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소년의서가 광주라는 도시에서 어떤 책방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사실 지금까지는 책을 판매하는 것 이상의 활동을 하진 않았었어요. 근데 운영을 하다 보니 여러 문제의식들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특히, 삶에 대한 문제 의식요. 갈수록 도시가 자본에 종속되고 개인화되는 부분들이 심화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사회 도시 구조에 대한 공부와 다른 감각으로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지금까진 조용한 편이었다면, 이제는 차근차근 준비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걸 때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걸 때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그녀의 눈빛이 빛났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른 시각으로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면 나도 와서 참여하고 싶다. 이야기를 걸어주는 그 손짓에 기쁘게 응하고 싶기에.
“다른 책방과는 차별화된 소년의서만의 특색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 생각하세요?”
“저희 책방에는 연극 관련 희귀본들이 있어요. 따로 판매하지는 않고 있지만요. 책방에 오시면 다른 데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희귀본들을 만나보실 수 있어요. 연극 외에 5.18 관련 서적도 마찬가지고요.”
다른 곳에서는 접할 수 없는 귀한 5.18 관련 서적을 그녀의 도움으로 보았다. 꽤나 5.18에 관한 자료를 많이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게 아직도 많구나 싶어서 기분이 묘해졌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모든 자료를 살펴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렇기에 다음번 방문의 확실한 구실이 생겨서 좋다.
“소년의서를 운영하며 있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책방을 오픈하려고 준비했는데 블랙리스트 문제가 터져서 서점을 바로 열지 못하고 광화문에서 블랙리스트 관련한 시위로 노숙을 하게 됐던 거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서점 오픈일이 언제라고 명확히 말하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나네요. 또 다른 건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이 서점에 오셨다가 7~80년대 금서로 지정됐던 사회과학 서적들이 이곳에 있어서 놀랐다고, 저한테 이런 책을 가져다 두어도 괜찮냐고 말해주셨던 분이 있어요. 아직도 사람들이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많이 겁을 내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근데 그분이 다다음 날쯤 서점에 다시 오셔서 이곳과 색깔이 맞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금지 희곡선 책들을 가져다주셨어요. 예전엔 금서로 취급받았던 책들이죠. 정말 신기했던 건 제가 그 책을 다른 분에게 판매해서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는데, 같은 책이 다시 저희 책방으로 왔다는 거였어요. 너무 신기했어요.”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만으로 블랙리스트로 지정되어 불이익을 준다는 건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그녀의 목소리에서 블랙리스트 사태 때의 고단함이 느껴져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책방을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이 있었을까.
“대표님이 이제껏 살아오면서 읽은 책 중 정말 행운이라고 느꼈던 책이 있나요?”
“<전태일 평전>과 <오래된 미래> 요. 두 책 다 대학교 1학년 때 읽었는데요. 당시에 전태일에 대한 영화가 개봉했었어요. 영화를 통해서 전태일을 알게 되고, 책도 읽게 되었어요. 전태일이 자신을 희생해서 근로기준법에 대해 항거했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오래된 미래>는 대학 구내서점에서 처음 만났는데요. 그 당시에 오래된 미래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터라, 어떤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어요. 책을 읽고, 나중에 인도 여행을 다녀와서 오래된 미래라는 개념이 어떤 건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자신만의 긴 호흡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것도 생각해보고 갖게 되었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생각들을 안겨준 책이에요. 최근에는 <살아남은 아이>를 꼽을 수 있고요.”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책을 스무 살에 만났다는 것 자체로도 큰 행운인데, 그 책들이 삶에도 영향을 끼쳤으니 이보다 더 반가운 마주침이 있을까. 어쩌면, 저 책들을 만난 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저 책들을 만남으로써 먼 훗날 소년의서가 탄생하는데도 큰 토대가 되었을 테니.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소년의서에 와서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나요?”
“<살아남은 아이>를 제일 먼저 추천하고 싶고요. 광주의 5월에 대한 책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이 책은 광주의 5월을 최초로 기록한 책이거든요. 그 외에는 그 분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분에게 맞는 책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살아남은 아이>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시대의 어둠을 느낄 수 있음과 동시에 소년의서라는 책방의 색깔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 같은 책이다.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저 책들을 만나 좀 더 폭넓게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본다. 문득, 사회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서점은 어떤 서점일까 궁금해졌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서점이란 무엇인가요?”
“서점을 통해서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가장 좋을 것 같고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의 서점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을 넘어서, 함께 모여 사유하는 서점. 그녀처럼 열정적인 책방지기가 점점 더 늘고 있기에 결코 이상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언젠가는 이상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매일 소년의서의 문을 열며 하는 생각이 있으세요?”
“오늘은 책을 사러 오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죠.”
그녀의 대답은 모든 책방지기들의 공통적인 바람이자 내 바람이기도 하다. 책을 사러 책방에 발걸음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터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질문은 마지막 하나만 남았다. 그녀에게 있어 광주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도시일까.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대표님에게 있어서 광주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도시인 가요?”
“광주는 저에게 질문을 던져주는 도시예요. 어릴 때 가스 냄새를 맡고, 길바닥에 놓인 화염병들을 보면서 세상에 대한 걸 배우며 자랐기 때문에 제가 알고 있는 세계가 다가 아닌 그 너머를 궁금하게 했던 곳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광주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도시라고 생각해요.”
미해결 된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도시. 그 말처럼 그녀는 이미 행동하고 있고, 책방으로도 그 행동들을 보여주고 있어서 존경스러웠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나는 소년의서에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이 공간에서 많은 걸 배우고 느꼈으니까. 광주를 닮은 책방, 소년의서. 작지만 단단한 이 책방이 오래도록 광주에서 자리를 지켜나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나는 잔뜩 혈관이 뜨거워진 느낌과 함께 책방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