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ma 서른세 번째 이야기, 007
내가 어릴 때였다. 나의 부모님은 주말마다 TV 앞에 앉아 습관처럼 007 시리즈를 보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007 시리즈를 보는 것에 동참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내 목적은 007 시리즈를 보면서 먹는 오징어에 있었다. 007을 보고 있을 때면, 나는 제임스 본드처럼 살며시 나타나 오징어를 탈취해갔다. 그때 오징어를 잘근잘근 씹으며 보았던 007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 특유의 긴장감 있는 음악과 007 임을 알리는 본드가 총을 쏘는 강렬한 오프닝은 어린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그때부터 007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시리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본드가 타고 다니던 차 애스턴 마틴은 로망이 되었을 정도니, 내가 얼마나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지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으리라. 다른 시리즈들이 다 끝이 난다 하더라도 007만은 영원했으면 좋겠다. 수많은 제임스 본드들과 함께 늙어가는 게 나의 꿈이다. 본드처럼 중후한 중년이 되었을 때 어느 멋진 바에 가서 말하고 싶다.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